엄마와의 여행은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으로 기억될까
미국에서 처음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와 아이들만의 첫 번째 여행이다. 워싱턴 DC와 메릴랜드를 다녀오는 여정이다. DC에서는 같은 시기에 미국 연수를 온 박 집사님 부부를 만나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메릴랜드에서는 미국으로 시집와 정착한 대학교 동창 친구의 신혼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어떤 여행지를 갈 때 만날 수 있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는 건 너무나 행복한 옵션이다. 특히나 이렇게 낯선 곳에 와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미국 내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에 도전하는 나는 살짝 긴장이 됐다. 보조해 주는 어른 없이 나 혼자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과연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약간의 부담감을 안고 떨리는 도전은 시작됐다. 구글맵을 통해 미리 경로를 탐색해 보니 거의 직선으로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거라 전혀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다 보니 졸지 않고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화창한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4월 초, 나와 아이들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미국에는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도로 중간중간에 주유소나 음식점(패스트푸드) 간판이 보이면 도로 옆 마을로 빠져 그 마을 주유소나 음식점을 이용하는 거다. 그리고 한국처럼 콘크리트 철벽이 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위의 예쁜 자연경관을 보며 운전하니 피곤함이나 답답함이 훨씬 덜했다. 고속도로는 그렇게 문제없이 잘 통과했는데 문제는 DC시내였다. 도로가 바둑판처럼 정렬된 것이 아니라 교차로, 샛길 등 여러 방향의 도로가 나 있어 한 번에 정확하게 안내하는 대로 진입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한번 출구를 놓쳐 우회로를 통하니 도심 교통체증에 더해 30여분을 더 허비했다.
약속시간 30여분을 넘겨 겨우 박 집사님 부부를 만나기로 한 식당에 도착했다. 이런 상황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는 집사님 부부가 너무나 고마웠다. 맛있는 식사를 끝내고 호텔 체크인을 했다. 아이들은 호텔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우리는 미술관 일정을 내일로 미루고 호텔에서 느긋하게 수영을 즐기다 동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호텔조식을 여유 있게 마치고 체크아웃까지 해서 국립미술관(National gallay of art)으로 향했다. 워싱턴 DC는 박물관, 미술관 무료입장뿐만 아니라 일요일 도로주차가 무료다. 도로가 빈자리에 주차를 하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미술작품 감상에 나섰다. 한국어 안내도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어느덧 시간은 정오가 되었다. 점심약속이 돼 있어 서둘러 메릴랜드로 떠나야 했다. 도로가 곳곳에 아이스크림 트럭이 세워져 있어 아이들을 유혹했다. 망고버블티와 초코아이스크림을 골랐는데 18달러란다!! 가격이 안 써져 있었지만 이 정도로 사악할 줄이야.
메릴랜드의 주도는 아나폴리스다. 친구는 처음 방문하는 나를 위해 다운타운 구경도 시켜줬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음식점 등이 어우러져 서울 삼청동을 떠올리게 했다. 항구 도시라 바다내음도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정박돼 있는 럭셔리 요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친구 부부의 극진한 대접을 뒤로하고 해가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혼자 또 3~4시간을 달려야 한다. 저무는 석양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피곤함보다 뿌듯함,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무사히 아이들을 데리고 1박 2일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고 친구, 지인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된 것 같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엄마와의 여행이 있는데 그보다 우리 딸들과의 여행을 먼저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미국에서. 미국에 와서 느꼈던 두려움, 좌절감, 소외감의 크기는 작아지고 그 자리를 자신감, 도전정신, 성취감 등이 차지해 가고 있다. 훗날 미국에서의 나는 우리 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