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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U May 06. 2023

미국에서 주간지 기자가 되다

20대 때 꿈을, 40대 중반에 실현하게 될 줄이야

미국에 오자마자 일하게 될 뻔했던 필라델피아 한인언론사가 있다. 아직 미국 생활에 적응도 하기 전에 너무 성급하게 지원했던 것도 있고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여러 이견을 좁히지 못해 끝내 결렬됐었다.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풀타임보다는 파트타임이면서 재택근무를 원했는데 그런 조건을 만족시킬 만한 한인언론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방향을 돌려 내 경력과는 무관하지만 영어를 사용해 보다 미국사회를 알 수 있는 파트타임을 찾았고(당연히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에만 일하는) 학교 카페테리아 일을 얻게 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8개월여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전에 지원했던 그 한인언론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갑자기 사람이 나가게 돼 급하게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혹시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당시의 조건에 더 많이 맞춰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두 달 후면 여름방학이라 학교 카페테리아 일을 약 3개월간 쉬어야 하는데 타이밍 좋게 연락이 온 것이다. 보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사실 조금 걱정이 됐다. 한국에서 나는 교열기자였지 취재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특히나 첫 인터뷰로 민주당 필라델피아 시장 후보를 취재해야 해서 영어 인터뷰에 대한 부담이 컸다. 그나마 한인 2세대인 사장님이 동행해서 인터뷰를 주재한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었던 점은 민주당 후보가 묻지도 않은 사항에 대해 청산유수로 자신의 정책, 경험 등을 쭉 이야기해준 것이다. 안 좋았던 것은 이야기의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는 점이다. 녹음기로 녹취는 했지만 정확한 번역이 가능할지 너무나 불안했다. 첫 인터뷰이고 또 미국인이다 보니 어려움이 두 배로 가중됐다. 월요일에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목요일에 발간해야 하니 시간의 압박도 한몫했다. 나는 열심히 번역기를 돌리고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참조하면서 커버스토리(메인 기사)를 완성해 냈다. 4일 밤낮으로 일한 결과, 내 이름 석자가 달린 기사를 드디어 찍어내게 됐다. 물론 한국에서 신문사에 근무할 때도 몇 번 인터뷰 혹은 여행 기사를 쓴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비중이 큰 기사를 다룬 적은 처음이고, 무엇보다 여긴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지 않은가? 그 뿌듯함은 정말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 교열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취재기자가 되고 싶어 했었다. 아무리 기사를 정성스럽게 다듬고 고쳐도 그 기사는 내 기사가 아니다. 그렇게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다 보니 교열기자의 한계를 느끼게 됐고 활동적인 내 성격에도 취재 쪽이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교열기자는 성취감은 덜하지만 스트레스가 없고 근무시간도 일정해 워킹맘에게는 이만한 포지션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꿈은 세월에 잊혀갔고 더 이상 취재기자에 대한 열망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의도치 않게 미국에 와서 취재기자가 될 줄이야. 그것도 40대 중반에. 정말 이렇게 드라마틱한 인생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니!! 미국에 와서는 하나하나 도전해 나아가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크게 욕심내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다니 너무나 얼떨떨할 뿐이다.


지금까지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ESL 수업부터 시작해 카페테리아 일을 거쳐 주간지 기자가 되었다. ESL 작문 시간에 적었던 드림잡(Dream Job)을 이룬 것이다. 40대 중반에도 이런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고 새로운 인생이 가능한 거였구나. 여기는 기회의 나라, 미국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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