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만난 남편과 함께한 한여름밤의 꿈같은 여행
미국 서부여행의 세 번째 목적지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6개월 전이었어도 공원 내 숙소는 이미 예약이 거의 찬 상태여서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불가했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데길래라는 생각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보게 된 그림 같은 풍광 사진들로 나의 기대치는 이미 너무 높아져 있었다. 그런 데다가 하필 날씨까지 운무가 끼어 먼 풍경까지 선명히 내다보이지가 않았다. 한여름의 기온은 또 어떠한가? 아무리 눈부신 경치가 있어도 에어컨이 있는 차에서 나와 트레킹 하고 싶은 의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먹거리도 문제였다. 인터넷도 안 터지는 산속에 위치해 있다 보니 음식점도 변변치 않고 작은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마저 종류도 몇 안되는데 비싸기까지 했다. 밤에도 별들로 가득한 낭만적인 한여름 밤의 요세미티를 기대했는데 숙소에 수영장마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한낮의 지열이 아직 식지 않아 후끈한 밤이 계속됐다. 2박 3일의 요세미티 여행은 기대 이하였다.
다음 여행지 라스베이거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멋진 호텔들로 즐비한 불야성 라스베이거스를 기대했지만 한낮엔 5분 이상 거리를 걷지 못할 정도의 살인적인 더위에 밤에도 식지 않는 열기 그리고 서울의 불빛이 너무 화려했던 탓일까?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는 생각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벨라지오호텔 분수쇼는 너무나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쇼핑과 카지노에 별 관심이 없다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하필이면 월요일에 묵게 돼 유명한 공연들이 쉬는 날이었고 3대 뷔페 예약도 이미 다 차 있어 근처 가성비 뷔페로 대체해 아쉬움을 달랬다.
어느덧 이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인 그랜드캐년에 도착했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결과론적으로 그랜드캐년은 말 그대로 여행의 대미를 장식해 주었다. 공원 내 위치한 숙소인 랏지는 오래됐지만 무척 깔끔하고 아늑했다. 장대한 캐년의 스케일뿐만 아니라 편의시설, 무료 셔틀버스까지 역시 최고 국립공원다운 면모가 느껴졌다. 가장 신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앤텔롭캐년까지 보고 왔는데 원주민 자치구역이어서 나바호 부족이 운영하는 가이드를 따라서만 관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관광업체 선정 미스로 사막 한가운데의 흙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이동차량이 있는 곳까지 그늘이 1도 없는 거리를 땡볕에서 10~15분 정도 걸어서 이동하다 보니 빛의 굴곡에 따라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던 앤텔롭캐년보다 고생한 게 더 기억에 남았다.
15박 16일 대장정의 미국 서부여행을 마무리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리조나 피닉스 공항에 도착했다. 남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상 유례없는 폭염으로 너무 힘든 여행이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여행 후반부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반면 남편과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하루하루가 너무 아쉬운 모순 같은 나날들이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피닉스 공항에 도착했다. 남편의 LA행(LA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탐) 비행기 시간보다 우리의 필라델피아행 비행기 시간이 먼저여서 우리가 먼저 떠나야 했다. 남편과 작별 포옹을 한 뒤 쌍둥이 딸 중 한 명은 끝내 눈물을 흘렸고 난 남편이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뒤를 돌아다보며 보딩 브리지로 이동했다. 4시간여의 비행후 필라델피아 공항에 내려서는 제법 선선한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었음에 감사했다. 그러면서 기분 좋은 꿈에서 깬 것처럼 1년 만에 만난 남편과 함께한 미국 서부여행은 한여름밤의 꿈같이 아득히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