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상황이 없다면 여행이 아니다.
미국 동부에 살고 있고 동부 지역만 여행을 다니다 보니 미국 서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사계절 내내 포근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우는 캘리포니아 드림 말이다. 꼬박 거의 1년 전부터 서부여행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몇 군데를, 언제 며칠간, 누구와 가느냐를 정하느라 본격적인 여행 계획은 6개월 전쯤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 특히 여름방학 때의 요세미티나 그랜드캐년 내의 숙소는 예약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최소 6개월 전에는 알아봐야 그나마 대체 숙소라도 괜찮은 가격에 머물 수 있다.
2023년 7월 6일부터 21일까지 15박 16일 동안 우리 가족 4명(나, 남편, 쌍둥이 딸)과 큰 아주버님네 가족 2명(아주버님, 둘째 아들) 이렇게 6명이서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요세미티,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짰다. 처음에는 서부여행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으나 나중에는 1년 만에 만나게 될 남편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여행이 됐다.
처음 LA공항에서 남편을 봤을 땐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반가움과 어색함으로 진짜 매일 영상통화하던 사람이 맞는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들뜬 기분도 잠시, 첫 숙소인 LA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주버님께 숙소 예약을 맡겼었는데 그만 엄청난 실수를 하신 것이다. 검색어에 분명 방 3개와 화장실 2개를 넣어 검색된 숙소 중 하나를 예약하셨다는데 우리에게 안내된 곳은 스튜디오(원룸)에 화장실도 달랑 1개뿐인 곳이었다. 확인해 보니 계약서에 분명 스튜디오라 적혀 있어서 다른 반박도 불가했다. 다른 숙소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이미 1박 치를 예약금으로 결제한 상태여서 우린 어떻게든 버티고 다음 숙소로 가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LA에 도착한 첫날 저녁 늦게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6명이서 화장실 한 개로 샤워를 하느라 새벽 1시에나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돌발상황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첫 관광지로 게티센터를 갔는데 지하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면서 그만 렌터카 뒷면 유리를 깨 먹은 것이다. 자세히 보니 벽면 위쪽이 튀어나와 있어 후면주차 주의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 일로 아주버님은 미술관 구경은 고사하고 렌터카 업체와 보험사 등 여기저기로 전화를 걸어 사고처리 및 차량 교환 문제를 처리해야만 했다.
다행히 같은 모델의 차량이 렌터카 회사에 재고가 있어서 바로 교환이 가능했다. 오후에는 코리아타운, 할리우드 사인 관광지, 그리피스 천문대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하루씩 유니버설 스튜디오, 디즈니랜드를 다녀오니 4박 5일이 훌쩍 지나가고 다음 목적지인 샌프란시코로 떠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숙소는 생각보다 더 훌륭했고 LA숙소와 대비되다 보니 정말 편안하고 안락했다.(쌍둥이 딸은 이 숙소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여행이 젤 좋았단다) 가구나 침구 소품도 모던하고 깔끔했고 특히 부엌에 온갖 조리도구는 물론 전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각종 소스와 양념류들이 있어서 너무나 풍족하게 요리도 해 먹고 내 집 같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골든게이트브리지(금문교)를 건너다볼 수 있는 뷰 스폿, 알카트라즈 교도소가 있는 섬을 둘러보는 크루즈 투어, 피어 39,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 다운타운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트램)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는 등 3박 4일 샌프란시코 여행을 마치고 다음 장소인 요세미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