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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U Dec 17. 2022

미국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기쁨

난 동네 무료 ESL 수업을 통해 한국인 친구를 만나게 됐다. 히스패닉 수강생이 80~90%인 수업에 한국인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세 번째 수업을 받은 후 그녀에게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사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줌으로 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정보를 주고받기가 어려웠다. 개인 간 채팅을 금지해 놨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보낸 단체메일에서 내 메일주소를 추정해 내는 센스를 발휘해 어렵게 나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이름 스펠링으로 메일을 만들지 않아 구별이 좀 힘듦)


나는 낯선 사람에게 연락한다는 불편함이나 떨림보다는 같은 동네에 사는 한국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반가워 이메일에 적혀 있는 연락처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또 다른 한국 친구를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괜찮으면 같이 만나자고 했다. 미국 땅에서 처음 만난 세 여자는 마치 고등학교 동창을 다시 만난 듯 폭풍 수다를 떨었다. 점심도 거른 채 3~4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아이들 픽업 시간이 돼서야 커피숍을 나섰다.


미국에서 만난 한국사람이라는 대전제 아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정말 신기했던 건 첫째 아이의 나이가 모두 동갑(초등 3학년)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다른 상황에 놓인 점은 다양한 정보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한 집은 남편이 주재원으로 미국 온 지 1년 된 딸 셋 맘.(한국에서 교사) 다른 한 집은 군인인 남편의 석사 학위 이수를 위해 미국에 온 지 거의 2년이 되어 석 달 뒤쯤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아들 1, 딸 1 맘.(한국에서 가정주부) 


첫째 아이가 같은 나이였지만 셋 다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중 딸셋맘의 아이는 우리 아이와 같은 학군을 다니고 있어서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았다. 미국에서는 학군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모든 행사와 학교 일정을 학군 단위로 정하기 때문에 꼭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는 모임 등이 많았다. 


미국에 갓 도착한 나로서는 선배 맘들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조언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느낌이었다. 또한 남편도 없어서 더욱더 외로운 나의 미국 생활에 그들과의 소통은 굉장한 위로와 휴식처가 돼 줬다.  그들과 만남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2년 후 한국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또 다른 대전제가 우리를 강한 유대감으로 뭉치게 해주는 또 다른 요소임을 알게 됐다.


가장 마지막에 미국에 온 내가 2년 후 한국에 돌아간 후 우리는 각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을 통해서 내가 느낀 점은 내가 남편 없이 아이들과 같이 미국에 온 것이 결코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가족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만큼 아쉽고 안타깝고 서러운 것이 또 있겠냐만은 나는 가족의 서포터(아내, 엄마)의 입장에서 벗어나 보다 더 주체적으로 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다. 


방문연구원으로 미국에 온 2년 동안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도전인 동시에 나라는 한 개인의 휴식 겸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인생의 절반 정도 다다른 시점(45세)에서 나 개인을 성숙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 그런 기회를 마련해 준 남편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남편이 없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점은 단점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 점 때문에 더 절실히 영어 공부에 매진했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알아보게 됐다. 더 적극적으로 미국 사회 일원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갔다. 한국에서는 이제 직장에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노후를 슬슬 준비해야 하는 나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여기서는 무엇이든 도전하기에 늦지 않았다고 느낀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돌아와서 저녁하고 애들 숙제 봐주고 잠자기 바빴던 다람쥐 쳇바퀴 같았던 삶에서 벗어나 아침에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떠지고,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맑은 공기와 녹음이 우거진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지금 당장 도전하라. 우리 인생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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