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더이다
미국에 발을 디딘 후 제일 먼저 신경 쓴 일은 집을 구하는 일과 SSN(Social Security Number) 신청이다. 전자는 말이 필요 없는 일이고 후자는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같은 개념으로 이게 있어야 여러 가지 행정절차가 간편해지고 심지어 이게 없으면 신청조차 불가한 것도 있다.
사실 집 구하기는 미국에 오기 전부터 알아봤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모든 정보와 계약이 인터넷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영어 회화가 약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문서로 주고받는 게 더 안전하고 편할 수 있다. 나의 조건은 아주버님네 집과 가깝고 아파트여야 하고 마트와 골프장이 가깝고 월세 2000달러 이하인 집. 나중에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됐다. 방이 2개 이상일 것. 펜실베이니아주 주거 법에 의거, 방 하나에 2명을 초과해서 잘 수 없다고 한다. 아주버님 집은 단독주택가에 있어 주위에 아파트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리뷰가 좋은 아파트를 1순위로 찜했다.
나는 미국 방문연구원을 준비하면서 일단 내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보자는 결의에 차 있었다. 모든 일은 부딪쳐 보면서 배우는 거라고. 하지만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아파트 신청을 했는데 결과는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사실 나는 아파트 입주 자격을 심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외국인이라 신용도가 제로(0)이고 미국에서의 수입이 없는 내가 떨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입주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통장 잔고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혹은 1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낸다고 해도 통과되지 않았다. 싱글하우스의 경우는 개인이 집주인이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아파트 집주인은 법인회사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다. 통장 잔고보다는 현재 일정한 수입이 꾸준히 통장에 들어오는지가 중요했다. 거기다 남편은 한국에 남고 나만 아이들과 같이 가는 거라 내 소득증명만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소득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보통 월세의 3배인데 환율도 최악으로 오르던 때여서 달러로 환산했을 때 감소폭도 컸다)
제일 살고 싶던 집에서 떨어지고 나의 사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제일 첫 관문인 집 구하는 데서 이렇게 막히는 데 과연 2년 살이 잘하고 돌아올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 많이 됐다. 그렇다고 이미 비자도 받고 휴직도 신청한 마당에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한 끝에 한인 리얼터(중개인)를 이용하기로 했다. 리얼터 수수료는 보통 한 달치 렌트비라고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주버님이 소개해 준 제니퍼라는 여자 한인 리얼터는 자기도 쌍둥이 엄마라며 나에게 조건 없이 집 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메일로 그 구절을 읽으면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제니퍼는 내가 찜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직접 찾아가서 나의 조건을 상세히 설명했고 현재 직장에서 미국에 보내준다는 보증서류만 준비하면 된다는 말을 전해줬다. 난 천군만마를 얻은 듯 너무 안심이 됐다. 기간에 맞춰 바로 입주할 수 있는 호실이 없어서 입국 후에 나머지 절차를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해서 찾아갔을 때는 또 다른 소리를 했다. 나에게는 미국 내 수입원이 없으니 개런터(보증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개런터가 연봉을 입증했을 때 입주가 가능하단다.(개런터의 월급은 월세의 5배를 넘어야 한다) 다행히 아주버님이 나의 개런터가 돼 주셨고 무사히 계약을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비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파트 입주 5일 전 나는 입주 날짜를 미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잘 모르는 외국인이라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우를 해도 괜찮다는 건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유는 전 세입자가 퇴거를 늦게 하는 바람에 수리에 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계약 날짜보다 5일이 늦어진 보상으로 5일 치 월세를 안 내기로 하고 다시 계약서를 작성했다.
드디어 노심초사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주 날이 왔고 다행히 아파트는 깨끗하게 수리가 돼 있어서 너무나 쾌적하고 깔끔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집인데 들어와 살면서 집을 참 잘 얻었다는 생각을 했다. 공원과 마트가 가깝고 조용하고 깔끔했다. 다만 집세가 비쌀 뿐. 결론은 미국에서 백수가 아파트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