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ice U Dec 17. 2022

미국 내 혼자 여행(2)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

예정에도 없는 1박 2일 여행이 돼버린 미드웨스트대학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여정은 43세 인생 처음 겪는 일들로 가득한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난 그냥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상황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세인트루이스 공항은 악천후로 항공권이 취소됐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비가 그치고 날이 개어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와준 사람은 같은 대학 방문연구원인 권 씨의 아내였다. 전날 친절하게 세이트루이스의 날씨를 알려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거주지 제한이 없는 미드웨스트대학은 미국 전역 어느 곳에 살아도 되는데 이들은 학교 근처로 터를 잡아 살고 있었다. 일면식은커녕 미국 와서 처음 서로 연락처만 주고받은 사이 치고는 공항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게 바로 미국(아시아권이 아닌 해외)이어서 가능했으리라. 도로가 젖어 있어서 비가 왔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차해 놓은 차에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로 나를 안내해 우리는 셋이 같이 미드웨스트대학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대학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우리는 어색한 인사도 잠시 미국 방문연구원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주변 풍경을 쳐다볼 겨를도 없이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홈페이지에서 봤던 사진 그대로 미국 중부의 시골에 위치해 있었다. 단층 건물 몇 개밖에 없어 대학이라고 하기에 좀 작은 규모였다. 아내 이 씨는 내가 학교 기숙사에서 머룰 것이라고 하자 바로 저녁식사를 걱정했다.


"주변에 식당은커녕 상점이 없어요. 차를 타고 나와야 하는데 차도 없으시고... 초면에 많이 부담되실 거라는 거 알지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하루 주무실래요?"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었다.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다니 한국에서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도움이었다. 일단 접수! 학교에 가서 상황을 듣고 결정해도 된다는 선택지도 받았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신세 지는 처지에 선택지가 있다니!!


우여곡절 끝에 오게 된 오리엔테이션은 굳이 학교를 오지 않아도 될 법한 설명들이었다. (권 씨의 설명으로는 예전엔 화상으로도 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방문 오리엔테이션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의 비자 활성화(Activate)가 되고 미국에 있는 동안 주의사항, 수업과 리포트 제출 방법 등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숙사 이용! 역시나 들었던 대로 식사에 대한 아무 대책 없이 잠만 잘 수 있는 곳이었다. 우버를 이용해 식사를 해결하고 오라는 배려 없는 대안을 들으며 그분들에게 신세를 지겠다고 맘을 굳혔다. 


사실 나는 웬만하면 기숙사를 이용하려 했다. 지금 내 몸은 만신창이였다. 시차 적응이 덜 된 몸으로 새벽 3시 반에 기상, 저녁 5시가 될 때까지 베이글과 커피가 먹은 것의 전부였으니 너무 피곤해 어디든 침대만 있으면 쓰러져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식사를 할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선택의 여지를 만들지 못했다. 


권 씨의 집은 학교에서 멀지 않았다. 오던 길에 설명 들었던 대로 방 4개 화장실 3개의 2층 단독주택(Single House)이었다. 신축이라 그런지 너무나 깔끔했고 살림살이가 한국 집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 않게 잘 갖춰져 있었다. 그곳에는 나를 반겨주는 특별한 이들이 있었다. 그 집 아들(10세)과 딸(6세)이었다. 아들은 클럽야구부 출신답게 야구에 푹 빠져 있었다. 집에서 MLB를 보고 있었는데 야구경기나 선수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입담도 제법 있어 재미있게 여러 가지를 설명해 주며 나를 어색하지 않게 배려해 주었다. 


그리고 이 집의 애교쟁이 딸은 옆집에 놀러 갔다가 돌아와 가장 마지막에 나를 반겨준 친구다. 깡 마른 체구에 윤기 있는 생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말투나 행동이 버릇없지 않으면서 사람을 녹이는 애교와 웃음의 필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겨우 1년여 있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친구들, 아니 이 가족은 미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너무나 천진하고 자유롭고 어른들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보살피며 생활의 여유를 즐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저녁 식사는 메인 요리 오징어 제육볶음과 상추(정확히는 로메인이라고 했다)에, 새우 조갯살 된장국과 김치, 스팸, 멸치볶음. 특별히 더 차리지 못하고 먹던 대로 내놓았다는 말이 더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고 건강한 식단이었다. 특별히 요리를 주도하던 남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와서 요리와 운전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아이들과 여행을 다닌다는 그들에게서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한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얻은 생기와 포용력이 느껴졌다. 


내가 꿈꾸던 미국 생활이 바로 이건데! 이런 이상형의 가족을 만나다니 이 무슨 인연의 끈이란 말인가!! 맥주 한 캔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샤워를 하자 내 체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손님방으로 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밤사이 거짓말처럼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그랬다더니 왜 비행기가 취소됐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꿀잠을 잤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항공권 취소 소식이었다. 가는 비행기, 오는 비행기가 모두 취소라니!! 이거 벼락 맞을 확률 아닌가. 하지만 이제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오늘 안에 필라델피아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고 어제의 경험으로 노하우도 있는지라 문자 메시지에 많이 당황되진 않았다. 날씨 얘기를 하듯 아무렇지 않게 항공권 취소 소식을 전하며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은 빵과 우유, 커피, 과일이었다. 한국 우유 맛과 비슷한 제품도 알게 됐다.(미국 우유는 대부분 제품이 좀 더 싱겁고 밍밍했다)  아침까지 든든하게 챙겨 먹고 일찍 공항으로 나섰다.


아이들, 결혼, 미국 생활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타임라인이 얼추 비슷한 가족이었다. 알고 보니 권 씨의 아내는 나와 동갑이었다. 1978년생, 워킹맘, 두 아이의 엄마. 우린 이 세 가지 타이틀을 가지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워도 모자랄 것 같은 케미를 발산했다. (한국 아줌마의 친화력이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항공권 취소로 이어진 특별한 가족과의 만남! 당일 일정으로 단순히 픽업 서비스만 받고 헤어졌다면 이렇게까지 서로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왕복 픽업 서비스비로 100달러를 지불하기로 돼 있었는데 이분들은 내 돈을 정중히 거절했다. 파트타임으로 이 일을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낯선 곳에 와 있는 한국인(J1)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자원한 것이란다.


이런 큰 환대는 내 인생 처음 받아보는 것이라 진짜 진짜 고마움이 마음에 사무쳤다. 그리고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이 닫혀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나도 이분들처럼 누군가에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작가의 이전글 미국 내 혼자 여행(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