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가
2022년 7월 21일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뉴욕 JFK 공항으로 떠나는 미국 여정을 시작했다. 오전 10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남편과 나, 두 딸 4식구는 21일 목요일 새벽 6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콜밴에 수화물 8개(단프라 박스 5개, 캐리어 1개, 골프백 2개), 기내용 캐리어 2개, 배낭 2개를 싣고 집을 나섰다. 뭔가 긴장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드디어 미국 2년 살이를 하러 떠나는구나. 잘 있어라 서울아, 한국아!
여행은 왜 항상 공항에서부터 사달이 나는 걸까? 여행에 대한 설렘을 느끼기도 전에 일은 항상 꼬여버린다. 짐은 완벽하게 싼 걸까? 왠지 모를 불안감 속에 수화물을 부치는데 첫 번째 두둥탁이 시작됐다. 3일 전 수화물 23kg을 넘지 않게 무게를 재보며 짐을 싸다가 그만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휴가를 출국 3일 전부터 냈는데 겪고 보니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나는 짐만 싸는 게 아니라 집 정리를 같이 하는 거라 시간이 두 배로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사용하지 않을 것들, 2년 후 아이들이 돌아와 나이에 안 맞거나 필요 없어질 물건들을 버리고 중고마켓에 팔거나 무료 나눔을 하다 보니 최소 1주일이라도 휴가를 잡아놨을 걸 하는 후회를 했다. 남편 없이 혼자 짐 싸는 것도 버거운데 허리 부상까지 당하다니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한의원에 가 진료를 받으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고 근육의 문제라고 했다. 물리치료를 받으며 겨우 통증을 가라앉혔다.
이러다가 짐 싸기는 고사하고 출국조차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한 망상을 뒤로하고 더 이상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핑계 삼아 무게를 신경 쓰지 않고 짐을 쌌다. 시간의 압박도 있었다.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비행기 타기 전까지 짐 싸기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겨우겨우 짐 싸기 미션을 완료했지만 아이들 책을 담아두었던 박스에서 사달이 났다. 무게 초과로 10만 원 비용 추가!!
옷 박스가 가벼워서 나눠 담았다면 안 내도 됐을 돈인데, 아쉬움이 뼈를 때렸다. 남편은 좀 더 완벽하지 못했던 나의 짐 싸기에 대해 구시렁대었지만 그도 그럴 처지는 아니었다. 불과 하루 전 남편은 이번 2주간 미국 여행을 위해 출국 하루 전날부터 휴가를 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회사에 휴가를 낸 날보다 1주일 뒤 날짜에 돌아오는 티켓인 것을 확인하게 됐다. 항공사에 날짜변경을 문의했더니 110만 원의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휴가를 연장할 것인가 아니면 수수료를 내고 티켓을 바꿀 것인가? 일단은 그대로 출발하기로 했다. 현지에서 어떤 돌발상황(코로나 감염)이 생길지 모르니 현지 상황을 봐가며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곧이어 두 번째 두둥탁이 이어졌다. 짐을 부치고 나니 훨씬 홀가분한 기분으로 공항에 온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이제 환전을 할 차례였다. 우리는 모바일로 거래은행에 환전 신청을 완료했고 인천공항점에서 찾기만 하면 됐다. 공항 곳곳에 설치된 맵으로 지점을 확인하고 입국장 안에 있는 지점을 향해 우리는 출국 수속을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은 환전을 받을 수 없다였다. 수속 전 입국장 밖에 있는 지점에서 찾았어야 했다고 했다. 입국장 안 지점에서는 현금을 환전해주는 일만 한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우리는 수중에 고작 350달러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척 당황하면서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 그 넓은 인천공항 내 항공사, 은행 고객센터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문의해본 결과, 입국장 밖으로 나간 후 다시 수속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승객들이 몰리는 성수기여서 최대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그러면 비행기 탑승시각에 맞추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환전을 신청해 둔 돈은 사라지는 게 아니고 내 통장에 그대로 있는 것이니 나중에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환전은 포기하고 만약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미국에 살고 계신 남편의 형인 아주버님께 돈을 빌리기로 했다. 미국에서 집도 형님네 근처로 얻을 계획인 만큼 그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차도 일단은 형님네 차고에 묵혀두고 있는 차를 빌리기로 하고 집도 아파트를 얻을 생각이라 큰돈이 나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를 빌리면 신용이 없는 외국인은 1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조카들 용돈도 주고 하려던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지만 당시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긴장을 좀 내려놨다. 이제야 한숨 돌리고 차분히 비행기 탑승 시각을 기다렸다. 원래는 시간이 남으면 공항에서 아침식사도 할 생각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기내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 아쉬움과 후련함 등이 교차하는 공항에서의 시간을 상상했는데 결국은 정신없음이었다. 팬데믹 이후 거의 3년 만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이렇게 많은 짐과 준비를 하고 떠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