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글 Aug 09. 2020

나는 나로 존재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된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나는 어릴 때부터 선택하는 일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아이였을 때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타인의 지혜로 세상을 살아왔으며, 성인이 되고 나서도 타인의 선택에 의존하는 습관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나로 살았지만 아직도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상황에 따라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한때 나의 부러움의 대상은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것을 제시했을 때 그 만의 대답이 예측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는 고민이 없어 보였다. 있다고 한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연하게 답을 찾아나가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언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아직 앞날에 확신이 없는 나에 비해 언니는 선택에 있어 확신을 가지며 흔들리지 않고 제 길을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언니를 의지하며 중대한 선택의 순간마다 언니를 찾았다. 언니가 골라준 선택지는 늘 내 마음에 흡족했고 그 결과는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언니가 항상 내 말에만 귀 기울이며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럴 때 '언니였다면 이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성인이 되고서도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결정 앞에서 언제나 주저했다. 스스로 고른 선택을 받아들일 용기와 실패를 의연히 맞을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나를 의견 없는 사람이라 여기는 일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위였다. 주저하며 선택을 두려워하는 내가 너무도 답답했으며 매 순간 변화를 갈망했다.


나를 알아가는 길

책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는 나를 아는 방법이 나온다. 바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다. 내게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와 제안을 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며, 나에 대해 끊임없이 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엄마 나는 어떤 사람이야?”

“너는 마음이 따뜻하고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고 글로써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야"     


나에 대해 듣게 될수록 가슴이 벅차오르고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얻어내며 혼자서도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기를 연습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이해한다고 해서 평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오랜 시간 나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지만 답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염려하는 삶에 거했다. 세상을 배제하고 독립적으로 나를 찾았던 노력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에 의존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에게는 나만의 정체성이 없는 것일까?’ 슬퍼하던 나를 가엾게 여겼던지 언니가 날 안아주며 말했다.


네가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누군가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 의견을 받아들인 것은 네 선택이니까.   


그 말에 막혀있던 고민의 댐이 한순간 무너지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좋든 싫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타인의 말을 잘 수용하는 것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이해하며 나는 더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법을 알게 된 나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    


나는 부모님의 딸이며, 사회의 일원이며, 관계 속에서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사람이다. 사람들마다 나를 다르게 인식하는 이유는 내게 심겨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의 색깔로 표현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위안했으며, 더욱 많은 색을 품을 수 있는 존재임에 감사했다.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나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대한 위로이며, 다양한 생각을 품어도 된다는 사실에 대한 예찬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니?'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할 말이 없어서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많아서 마음이 설렌다.    


이제껏 나를 제 마음대로 정의하는 누군가의 말에 휩쓸리며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그러한 문장을 너무 크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날마다 생각과 태도가 바뀌는 나를 하나의 특성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너무 편협한 발상이니까. 나를 판단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 받은 경험으로 그들을 밀어내려 했던 적도 있었지만, 사랑을 받는 주체도 사람이기에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로 존재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될 수 있었다.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껴안고서 나는 오늘도 나답게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사하는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