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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글 Jul 17. 2020

이 길이 맞을까

무턱대고 퇴사해도 괜찮아

"저는 그럴 때마다 자리를 피해요. OO님도 잘 피해 보세요"
"OO님 말이나 행동으로 싫은 티를 내보세요"
"힘내요. 어려운 일 있으면 얘기해요. 응원할게요"


이런 비슷한 말들이었다. 흔들리며 버티고 서 있던 내가 와르르 무너졌던 순간이었다.

나와 함께 일 했던 분들은 모두 다정하고 힘이 되는 귀한 분들이셨다. 불안에 떨고 있는 내게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로 함께 해주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약하고 겁이 많아서 위로와 격려를 방관자의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그때 나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으로 자라왔던 내게 타인의 호의를 거절하는 일과 타인에게 불쾌함을 표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나는 기독교인이니까 인내하며 끝까지 버텨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컸다. 먼저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인 줄 모르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나를 원망하며 그런 나를 미워하게 만든 남을 원망했다.


내가 잘하면 된다. 내가 잘 대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문제가 있다. 나는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모두가 내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다가오는 그분의 행동과 시선, 나를 무너지게 하는 말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유일하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이들은 가족들 뿐이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내게 큰 힘이 되지 못했다. 나는 매일 밤 울며 잠들었고, 회사에 가는 매일 아침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길을 걸었다.


지칠 때로 지쳐 있던 내게 불쾌한 시선은 여전히 따라다녔고, 그분의 농담(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언행)에 나는 충동적으로 퇴사를 말씀드렸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동생의 학원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경제적 부담감과 1년도 채우지 못한 나의 경력을 떠올리며 그동안 무던히도 참아왔었다. 죽음 앞에서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고서야 내게 가장 중요하고 무섭게 여겨졌던 회사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언니 나 퇴사해도 괜찮을까...? 너무 도망치는 것 같아."

"도망쳐도 괜찮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기도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돼."

"만약에 그게 하나님 뜻이 아니면 어떡해?"

"하나님은 길을 정해놓고 네가 잘 가는지 안 가는지 지켜보는 분이 아니야. 죄짓는 일이 아닌 선에서 기도하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면,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야"


나는 회사와 살던 집을 떠나 본가로 내려왔다.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분이 해고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도감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지. 퇴사 후 3개월 정도는 집 밖으로 잘 나가지 못했다. 그 사람과 내게 행동을 바꿔보라고 말했던 사람들에게서 나는 벗어날 수 없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전에 이어져왔던 소중한 관계는 깨졌고, 마음은 무너졌고 활력도 잃게 되었다. 내 삶을 도저히 이끌어갈 힘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더욱 무기력해졌다.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을 받으면 스스로를 환자로 생각해서 더 우울해지기만 할까 봐 조금 고민했었지만, 좋은 점이 더 많을 거라고 믿었다. 7번의 상담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우울했고, 나를 무너뜨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듯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돌아보며 내 마음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우울한 감정을 글로 풀어냈다. 그저 마음을 글로 토해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그러나 부끄럽고 어두운 내 마음이 글로서 남는 일이 부끄러웠다.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만 살다가 그늘이 드리운 마음으로 사는 일은 너무도 어색하고 불편했다.


내가 만약 회사를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괜찮지 않았을까. 지금쯤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건가. 지나온 걸음이 부끄럽고 허망하다. 이런 생각들에 빠져 살던 나는 우연히 한홍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야곱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가로챈 사람, 형을 배신하고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사랑하셨다. 야곱이 사랑할만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야곱을 사랑하기로 약속하셨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도우신다고 약속하셨다. 나를 위로하실 뿐만 아니라 나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다. 친히 이 땅에 내려오셔서 나의 아픔보다 더한 아픔을 겪으셨다. 나를 이해하시려고, 나를 도우시려고.


문제나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한 아이가 무서운 형들이 가득한 골목을 지날 때에, 그의 뒤로 든든한 삼촌이 함께 한다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아이는 더 이상 그 골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지금 나의 상황이 바뀌기를 원하는 기도 대신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내가 잘 붙어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니까.



잊히지 않는 과거에 묶여 살았던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싫다고 말 좀 못하면 어때, 그래서 퇴사한 것도 뭐 어때, 도망친 것 같으면 어때, 평생 잊히지 않는대도 어때.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약속하는 분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내가 그 사실을 잊고 살았다고 해서 그분이 나를 놓는 것도 아닌데.


다 아는 이야기가 새롭고 다정하게 내 마음으로 찾아온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기도하며 버텨왔던 나였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마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내 삶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저 그분 안에서 흘러갈 수만 있다면 나는 다 괜찮겠다. 그렇게 다시 취직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도, 어서 우울감을 없애야 한다는 조급함도 모두 잠잠히 흘러갈 수 있었다.


겨우내 나의 겨울은 서서히 풀려 봄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과 떠나지 않는 조급한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해도 아무렴 괜찮을 거라 믿음의 고백을 전했다. 순간마다 나를 쓰다듬어주시는 그분의 마음이 너무도 따스해서 나는 더 이상 두꺼운 외투를 챙기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 이미 도래한 봄에 나도 흠뻑 젖어볼까,





마음이 다 낫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마음이 이미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기쁨의 삶을 걸어가면

어느새 나는 정말 기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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