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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글 Oct 28. 2020

죽음은 끝일까?

하늘의 부름을 받아 돌아가는 길

소천 召天

그분이 떠나셨다. 오래 병을 앓으셨고, 그래서 오래 교회에서 뵙지 못했던 그분이. 나와 많이 가까운 분도 아니셨고, 살갑기보다 근엄하셔서 다가가기도 어려운 분이셨다. 그렇다고 그분 때문에 힘들었거나 곤란했던 적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 하더래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뵙질 못했다. 그분은 우리 교회를 든든하게 묵묵하게 지지해주셨던 큰아빠 같은 장로님이셨다.

오래 교회에서 뵙지 못했기 때문일까, 별세 소식을 들었던 목요일에는 잘 실감이 나질 않았다.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계속 병으로 누워계실 것만 같았다. 나의 마지막 기억처럼 변함없이 내 인생에서 계속 살아계실 것만 같았다.

아빠가 장로님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는 말을 하셨다. 언니가 울었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커다란 눈물방울을 손으로 계속 훔쳤다. 나는 실감도 안 나고 눈물도 안 난다며 언니 앞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있었다. 그러다 이내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이제야 장로님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강력한 확신과 감정이 몰아쳤다. 언니와 함께 나도 조금 울었다.


그분은 이 땅이 이제 없으시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까지 내 삶에 함께 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음은 슬픔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는 생각을 기록하고 싶다.


죽음은 슬픔도 아니고 끝도 아니야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걱정할 때가 많았지만, 사실 진짜 무서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단 한 번뿐인 삶, 어떤 식으로든 남들에게 영향을 주는 삶,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삶. 나는 그러한 삶을 정신없이 살아왔었고, 문득 방향을 점검했을 때면 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길은 내 발이 이끄는 곳이었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은 험난하고 꺼려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길은 죽음으로 통하는 길이다. 죽어가고 있는 나는 지금 보다 더 내가 소원하는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웅재-소원'의 찬양처럼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는 길을 앞서 걷고 싶다. 죽음을 피하려 애쓰지 않고,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뒤쫓으려 하지 않는 걸음. 오직 내가 정한 길, 내 마음에 합한 길, 내가 사랑하는 길을 걷는 것을 꿈꾼다.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날에 찾아올 삶의 끝이 하나도 안타깝지 않도록, 나는 더 낮아지고 더 밝아지고 싶다.




장로님께서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며 말씀을 읽으셨다고 하셨다. 두려움이 아닌 빛으로 영원했을 그 삶은 결코 끝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죽음을 향해 걷고 있었던가?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영원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믿음에 뿌리내린 걸음만이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할 것이다.


죄로 얼룩진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당신의 설계가 참으로 다정하다. 나는 살아도 은혜고 죽어도 은혜라 고백하며, 언제나 당신의 은혜 속에서 당신과 동행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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