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경험담#1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제가 20대 대학교 재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주제로 쓴 글입니다. 소소한 깨달음을 적었습니다. 오래 전 개인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인력사무실에 처음 간 날, 뻘쭘함과 긴장감 사이
수년 전 용돈 좀 벌겠다며 친구녀석과 인력사무실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친구녀석은 어깨가 좀 벌어지고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나는 어깨가 좁았고 마른 체형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헤이아치를 닮은 사장님이 선풍기 바람을 쐬며 돈을 세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저씨들이 TV를 보며 그 날 일당을 받기위해 대기하고 계셨다.
"저기요..일좀 하러 왔는데요.."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돈에 집중하고 있는 사장님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은 친구와 나를 위 아래로 훑어 보더니 이내 친구쪽으로 눈길을 더 많이 주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친구는 체격이 좋아서 힘 좀 쓰게 생겼고, 나는 비실비실하게 생겼기 때문에. 흑흑. 사장님은 좀 기다리라며 저쪽에 앉아있으라고 하셨다. 한 15분이 흘렀을까. 사장님이 돈을 나누어준 뒤 우리쪽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사장 : "둘이 일하게?"
친구 : "네.."
사장 : "막노동 해본 적 있어?"
친구: "아니요. 처음인데요."
그리고 무서운 눈빛으로 내 쪽을 바라보시더니 하는 말.
사장 : "할 수 있겠어?(못 미더운듯이)"
나 : "네! 할 수 있어요.(에라..모르겠다..눈에 힘을 주면서.)"
내 몸뚱아리를 보고는 왠지 달갑지 않으셨나보다. 어렸을 땐 나름 육상선수로도 지내고 운동을 했었는데..쩝. 친구를 훑어본 뒤엔 제법 쓸만하겠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되었건 사장님은 내일 아침 일찍 나오라고하셨다. 한 번 써 보고 결정해보겠다는 뉘앙스였다.
그 다음 날 일찍 고속도로 가드레일 교체현장에 투입
친구와 나는 다음날 일찍 자전거를 타고 인력사무실에 도착했다. 봉고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우리는 다른 아저씨들과 낑겨서 현장으로 이동했다. 어디론가 연행되는 느낌이었다. 도착한 곳은 고속도로 근처. 가드레일 교체작업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친구와 나는 초짜 막노동꾼이니 그냥 시키는 대로 짐만 날랐다.
그런데 고속도로에 설치된 은색 가드레일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속된 말로 좆나게 무거웠다. 친구와 나는 낑낑대며 철거한 가드레일을 한 쪽으로 옮겼다. 햇볕은 쨍쨍했고, 아저씨들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볼트를 풀면서 가드레일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재설치했다. 우리는 해체한 가드레일을 한쪽으로 날랐다. 완전 쇳덩이였다. 몇 개를 나르다보니 벌써부터 손목이 부르르 떨렸다. 친구는 기본적으로 나보다 일을 더 잘했다.
'내가 이렇게 힘이 없었나..졸라 힘들구나..'
막노동 일을 할 때는 요령있게 하라는 주변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다. 무턱대고 힘을 쓰지 말란 이야기였지만, 그 당시 내가 알턱이 있나. 어쨌건 시키는데로 일을 했다. 뭐가 뭔지 모르기때문에 오버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점심 밥 시간만 기다렸다. 시원한 물을 들이키고 싶었다.
한 아저씨 : "학생들..점심 먹고 혀"
친구, 나 : "오호,,아싸."
땀 흘리고 난 뒤의 냉면 한 그릇, 졸라 맛있네
친구와 나는 간이 막사같은데에 들어가 잠깐 뻗었다.
친구, 나 : "아이구..죽겄다..아이고."
일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죽는 타령이었다. 곧 식사가 오자 벌떡 일어났다. 냉면을 시켜주셨다. 얼른 비닐을 벗겨내서 면발을 후적후적 먹는데, 아주 그 맛이 죽여줬다. 그러고는 시원하게 국물을 들이켰다. 목젖을 지나 식도에 쏴~하고 퍼지는 개운함. 땀흘리고 먹는 음식 맛은 세상에서 가장 좋지 않던가. 후루룩. 쩝쩝. 김치 한 입. 후루룩. 쩝쩝. 김치 한 입.
저 쪽에서 아저씨들도 국물을 맛나게 들이키고 계셨다. 어떤 분은 벌써 밥을 다먹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무셨다. 담배연기를 훅 내뱉는데 세상 다 가졌다는 표정이셨다. 친구와 나는 그릇 바닥의 면발까지 긁어 먹었다. 밥 공기 남은 게 있어서 그것도 친구랑 나눠 먹었다. 일하고 난 뒤의 냉면 한 그릇은 졸라~~너무~~완전 맛있었다.
친구와 나는 이 날 오후에도 가드레일을 떼어내고 날랐다. 역시나 졸라 무거웠다. 해가 저물기 전에 일은 끝났다. 다시 봉고차를 타고 인력사무실로 돌아왔다. 헤이아치 사장님이 일당을 쥐어 주시는데 흰 봉투가 뜨끈뜨근하게 느껴졌다. 돈 벌기 참 쉽지 않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삭신이 쑤시니 몸을 잘 못가누겠더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삭신이 쑤시고 손가락이 저렸다. 겨우 인력사무실에 다시 나갔지만 그 날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없었다. 그 날은 막노동판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필요한 날이었나 보다. 간택(?) 받지 못한 몇 몇 아저씨들과 우리는 잠깐 더 기다렸다. 갑작스레 일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바둑을 두는 아저씨,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아저씨, 그저 텔레비젼을 보는 아저씨. 기다리는 풍경이 다양했다.
한 아저씨 : "일좀 줘. 하루라도 더 일해야는디.."
그 날 친구와 나는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왔다. 오후가 되자 헤이아치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장 : '내일 양계장 막사 닭똥 치우기 일있는데 할 수 있어?'
나 : (순간 머뭇 머뭇....)제가 내일은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
사장 : 그려 알았어..
친구는 몇 일동안 더 일했고, 나는 다른 사정때문에 인력사무실에 나가지 못했다. 한 편으로는 나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한 번 해보고는 힘이 덜 들어가는 다른 알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이처럼 참 간사하다. 택배알바(알바생들사이에서 힘든 알바로 소문이 자자한 )를 하다가 몰래 도망나왔다는 어느 알바생의 후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잠깐의 막노동 경험이었음에도 느낀 바가 많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구나. 막노동 일을하며 수능 공부를 하고 서울대에 들어간 장승수씨의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괜히 나온 게 아니었구나. 평소에 운동좀 하며 힘을 길러야겠구나.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쳤다. 사서 고생 안하려면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살짝 이해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