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경험담#9
저는 30대 중반 아재입니다. 제가 20대이던 대학교 재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주제로 소소한 깨달음을 적었던 글입니다. 오래 전 개인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2010년 SK주유소에서 8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비록 대학교 4학년이지만, 2010년도엔 다른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 왔다.
쉽지 않았다. 1학기 학점은 바닥을 쳤고, 나도 드디어 쌍권총(F학점)을 갖게 되었다. 남들은 학업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잘도 잡던데 나는 예외였다. 성적이 나오고 나서 그놈의 쌍권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주윤발도 부럽지 않은 쌍권총을 차고 있으니, 혹독한 세상과 싸울 준비는 된 것이라 위로했다.
▲ 우리 주유소 4번 주유기.
이런 잡생각에 빠져 있을 때쯤, 휘발유차 한 대가 들어왔다. 어김없이 4번 주유기의 주유총을 집어 들었다. 4번 주유기는 내게는 좀 특별한 녀석이었다. 평소 우리 주유소에 있는 1번에서 12번까지의 주유기 중 가장 情이 갔다. 4번 주유기에게서 나와의 공통점을 몇 개 발견했기 때문이다.
첫째, 바로 숫자'4'다. 이 녀석은 4번, 나는 4학년.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공통점 하나로 이 녀석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주유기가 한 숨을 푹푹 쉬는 소리가 들린다. 한 8개월 동안 일해보면 주유기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무겁고 부담이 되는 숫자 '4'를 짊어지고 가는 신세가 꼭 나를 닮았다.
둘째, 4번 주유기는 우리 주유소에서 제일 바빴다. 대학교 4학년인 된 내가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듯이 말이다. 아무래도 휘발유를 담당하고 있고, 좋은 위치에 있어서 차들 대부분이 이 주유기 앞에 정차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녀석은 하루에도 수백 번 기름탱크에서 휘발유를 뽑아 올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떠나는 수백 대의 자동차와 사람들을 배웅했다.
셋째, 4번 주유기는 나름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 4학년들처럼 말이다.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옆에 있는 5번 주유기는 놀고 있을 때가 많았다. 태어난 배경(?)이 다르니 어쩔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웽웽'밖에 없다. 가만히 들어보면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뜨거운 여름 땡볕 아래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을 하는 녀석이 대견했다.
가끔씩 4번 주유기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이것은 이 녀석과 8개월 동안 함께 지나다 보면 안다. 녀석은 나와 공통점도 있을뿐더러 힘겨운 신기를 혼자서 잘 견뎌내고 있다. 녀석은 내게 이렇게 속삭인다.
"기욱아, 청춘은 휘발유와 같다. 휘발유가 자동차를 움직이듯이, 30대, 40대, 50대의 삶을 힘차게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건 바로 너의 청춘이다. 너의 청춘을 뜨겁고 역동적으로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