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글쓰기
꽤 오랫동안 머뭇머뭇 탐색만 하다가 결국은 블로그를 시작했다. 11년 전 아이가 유치원 졸업반에 다니던 2014년 초겨울 취학통지서를 받은 직후다. 24시간 엄마 품을 떠나 유치원에 다닌 지도 3년이 되어가는데 반장 아주머님이 방문하여 전달해 준 취학통지서는 중요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일깨워주었다: 아이는 초등학생, 나는 학부모가 된다는 것. 성큼 도착한 그 서류는 아이와 내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것을 수령하고 나서 여러 날 어떤 생각에 골똘했었다. 출산 이후 기록해 온 육아일지 내지는 일기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기록의 종류와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날마다 아이의 성장 기록과 육아 내용을 수기하던 것을 축소하고, 블로그를 하기로 결정했다. 일상과 내 생각을 공개하는 글을 쓰는 변화를 선택했다. 더 넓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기로 했다.
블로그 플랫폼은 신세계였다. 개설과 운영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사진과 영상을 넣어 입체적인 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고 또 디자인도 취향껏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소통이 가능한 점이 가장 신기했다. 글로서 시간, 공간의 제약 없이 생각을 나눌 수 있다니 당시 내게는 대명천지가 열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포스팅은 초보 블로거에게 노동 집약적 활동이었다. 글 한편을 완성해서 올리기까지 매 순간 고려할 게 있었고 정리하고 다듬기를 꽤 여러 번 해야 하는 time-consumer였다. 그리고 가장 핵심이 되는 글감을 찾는 일이 늘 고민스러웠다. 이전의 떠오르는 대로 여과 없이 곧바로 기록하고 써 내려갈 때의 후련함을 한참 후로 미루어야 해서 조갈이 났다. 글 하나를 완성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최적화를 도모해야 하는 이유는 내적인 이야기를 이름을 내걸고 공개하는 플랫폼에 탑승하기 위한 요금 같은 것이었다. 그런 불편과 대가에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은 왠지 플랫폼에서 도중하차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slow blogger다. 손으로 적을 때와 영 딴판이었다. 걸을 때마다 돌부리에 걸리는 것처럼 주춤거리고 머뭇거렸다. "내가 이렇게 생각이 부족하고 확신이 없는 결정장애가 있었나?" 자문했다. 글 쓰는 거라면 내심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게 자만이었던 걸까? 처음부터 엄청 거창한 걸 쓰리라 허풍을 떨었나? 마음만 먹으면 술술 쓰일 거라 쉽게 생각했나? 쏟아지는 물음표들로 숱한 밤을 뒤척였다. 일기, 리포트와 보고서를 꽤나 써 봤지만 이 장르의 글쓰기는 생태가 다르다는 걸 첫 포스팅을 하러 노트북 앞에 장시간 앉아있던 날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을 다독였다: 천천히 가보자. 다른 블로거분들의 포스팅 읽으며 스스로 배워보자. 그리고 2014년 12월 어설픈 첫 포스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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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주부, 아내, 엄마인 블로거님들의 글을 찾아 읽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블로그 세상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은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창의적인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에서 흥미롭고 유익한 글감을 발굴해서 참신한 구성으로 포스팅을 유지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피부로 느꼈다.
밋밋한 일상으로부터 식지 않는 열정과 뜨거운 노력으로 길어 올려 완성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블로그 닉네임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블로그 세상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slow learner였다. 한편 이미 알아버린 온라인 글쓰기의 매력을 내 글에 적용하려는 의지와 노력도 느리지만 계속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나는 하루를 더 꽉 차게 살려고 노력했다. 더불어 책 읽기에도 더 열중했다. 포스팅을 위해서 그렇게 하게 된 것도 있다. 활발한 블로거는 못 되어도 활기찬 생활인은 분명했다. 그리고 요리나 청소 등 집안일을 할 때나 외출해서 길을 걸을 때, 차로 이동할 때, 지하철에서 어떤 소재로 글을 쓸까 궁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은 늘 분주했고 심심하지 않았다. 나태함이 기웃거리지 못하게 팽팽하게 끌어당기는 적당한 긴장감을 즐겼다.
자연스럽게 모종의 싹이 마음에 움텄다. 사실과 감정, 생각을 단편적으로 기록하는 습관에서 한 걸음 내디뎌 그 재료들을 엮어 메시지가 있는 이야기를 지어볼까? 글 짓는 일상을 살아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