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Aloud
시간이 많이 흘러 어린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생전 처음인 육아와 함께 살림, 독서, 간간이 내 일(번역)을 좌충우돌 꾸려나가다 보니 그 나름대로 나만의 틀이 잡히고 있었다.
한글 소설 또는 한글로 번역된 장편 소설을 짬짬이 꾸준히 읽으면서 잠깐 문학번역 공부를 한 것을 계기로 단편 소설도 내 독서 목록에 다시 한 자리를 차지했다. 단편을 위주로 수업이 이루어졌던 것이 내가 단편 소설을 가까이하게 된 이유다. 장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야기 전개 호흡이 덜 가쁘다. 사실적이기보다는 암시적이고 극적이기보다는 완만하고 때론 밋밋하기도 하다. 그래서 감정을 평온하게 다스리면서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더랬다.
한글 단편 소설은 눈으로 읽었고 영어 단편은 소리 내거나 입으로 중얼거리며 읽었다. 영어에는 억양(intonation)이 있어서 높낮이를 따라 읽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내가 영어 소리 내어 읽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을 것이다.
영어글을 본격적으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 때는 앞서 말했듯 육아로 인한 일상과 내면의 변화를 다스리기 위해서 우연이면서도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우연히 시작했는데 이제는 하루도 거를 수 없는 확고한 루틴으로 자리매김했다. 오전 11시, 나를 잃지 않고 단단하게 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리츄얼에 영어 소리 내어 읽기는 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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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페이지 내외의 글 하나를 일주일에 걸쳐 읽는다.
1.
첫째 날, 새로운 글을 만나면 두 번 눈으로 읽는다.
처음은 통독한다. 어떤 이야기인지 살펴보는 거다. 이어서 눈에 힘을 주고 찬찬히 읽어나간다. 그러면서 이야기 흐름을 머릿속에 그린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이며 무음으로 읽고 있다. 모르는 단어와 낯선 표현의 수에 비례하여 머릿속 그림에 빈 공간이 늘어난다. 거의 드물지만 일사천리로 읽기가 흘러갈 때는 형언하기 어려운 쾌감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도 괜찮다. 검색할 것이 많아 수고로울 테지만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묘미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늘 할 만하다. 무엇보다 허공을 가르며 논리적인 리듬을 만들어내며 읽는 즐거움이 있기에 늘 Okay!
2.
둘째 날, 소리 내어 읽기를 본격적으로 한다. 색펜과 형광펜 각 한 자루씩 필요하다. 1차 눈으로 읽을 때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모르거나 처음 보는 단어와 표현에 색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 섹션이 구분되어 있으면 그것대로, 아니면 내용이 달라지는 단락별로 밑줄을 긋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형광펜으로 덧칠한다. 색칠을 마치며 읽은 책 페이지들은 내가 익혀야 할 것들이 도드라져 이제야 이 이야기가 내 것이 되겠구나 하는 정겨움이 생긴다. 두 번째로 소리 내어 정독한다. 조금 더 영어가 입에 착착 붙는다.
3.
셋째 날, 어제 칠해놓은 단어와 표현들을 검색한다. 손바닥 크기의 스프링 수첩에 찾은 단어와 표현들의 뜻과 정보를 정리한다. 가장 귀찮은 단계다. 하지만 건너뛰면 글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으니까 그냥 한다. 이 때는 귀찮음을 메울 방편으로 음악을 튼다. 한결 낫다. 수첩에도 책과 같이 색펜과 형광펜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Phew! 끝났다. 정리한 내용을 훑고 이야기를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어제보다 이야기가 더 친숙하다.
4.
넷째 날, 정리한 수첩의 단어와 표현을 보고 또 본다. 읽고 또 읽는다. 눈을 감고 외우고 외운다. 이 단계에서는 집안일을 하면서 하기도 한다. 위에서부터 보기도 했다가 아래서부터 읽기도 한다. 형광펜을 친 것들은 더 유심히 익힌다. 언제든 말로다 글로다 써먹고 싶기 때문이다. 충분히 익혔다고 느껴지면 이야기를 다시 소리 내어 읽는다. 뿌연 시야가 투명해지는 것 같다고 할까! 기분이 업된다. 무언가를 알아갈 때의 뿌듯함, 내 것으로 흡수되는 짜릿함을 만끽한다.
5.
다섯째 날,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든 과정을 마친 오늘은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과 마음으로 눈으로 정독한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의 유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독한 후 매끄럽지 못하고 걸렸던 부분들을 수첩을 보며 재차 본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다시 소리 내어 읽는다. 글을 읽는다는 단순한 느낌과는 좀 다른 나만의 소리를 내는 기분이 들 때 한 주간 제대로 했구나 하는 충만함이 든다. 작가가 글을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이거였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 마음에 꽉 들어찬다. 이 맛에 읽는 거지!
읽기 루틴을 만족스럽게 하기 위해 나는 부단히 애쓴다. 읽기 루틴 애피타이저로 신문 읽기를 하고, 메인으로 영어글 소리 내어 읽기에 집중한 후 가벼운 마음으로 다양한 분야의 한글책을 읽는 것으로 꽉 차게 루틴을 완성한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투명해지며 많은 것이 확실하게 보이는 그 상태를 오늘도 만나는 것에 안도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는다. 이렇게 나는 나를 지키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진지하다. 하루하루 아침 루틴 완성으로 오후 시간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