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엠버

글을 짓는 시간

by 제퍼

그거다, 거기다 말로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몸과 마음은 이미 거기, 그것을 향하고 있다면 그건 운명의 지도가 작동하는 것일 거라는 증명할 수 없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짧지 않은 인생길을 걸으면서 체득한 지혜들 중 하나다.


그것은 대체로 '나도 모르게'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나도 모르게 이것을 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그것을 갖게 되었어."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왔어." 차분히 치밀하게 알아보기 전에 가슴속에서 요동하는 뜨듯한 덩이들이 그냥 어서 하라고 재촉한다. 마음이 시킨다.


고무줄을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읽기에서도 들었다. 그것을 하는데 매우 편안하고 능숙해진 것을 느꼈다. 적극적인 읽기를 통해 무언가 내면에서 농익는 느낌이 들었다. 수각에 물이 차면 둥그런 가장자리로 조용히 물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내 안에서도 무언가 가득 차서 쏟아져 나오려는 기미가 감지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꾸준히 읽어온 수많은 인생과 세상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입체적인 그림으로 차곡차곡 쌓여 시간의 크기만큼 숙성되고 있었던 걸까! 내 안에 고여 있는 그림들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쓰는 이의 시각으로 읽고 생각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글 읽기는 내 안에서 꺼지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잉걸불(Ember) 불꽃 하나가 타닥타닥 타오르게 했다. "너의 이야기를 엮어 글을 지어보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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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내놓을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을 정하니까 내 삶을 가만히 더듬고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뛰는 오전 11시와 좀 다르게 조금 더 고요하고 차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많이 걷고 커피와 차를 자주 마셨다. 떠오르고, 떠올릴 틈을 스스로를 위해 마련하였다. 그 틈들 중에 미라클 모닝도 시도했다. 요즘 성공이나 자기 성찰을 위해 부지런한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미라클 모닝시간, 새벽 4시 30분이 가장 영적으로 맑고 고요한 시간이라고 들었다.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면 되었다. 미라클 모닝 루틴 시작의 디폴트인 따뜻한 커피 또는 차 한 잔 마시기로 나도 얼마동안 'Miracle Morning Person'이었다.


그 고요한 시간을 지나면서 문득문득 아주 익숙한 과거의 어떤 때로 돌아간 순간들을 만났다. 데자뷔!


여고생 때, 대학교와 대학원 과정 때, 연구소 다닐 때, 새로운 하루를 만나 꿈을 키우고 나답게 흥겹게 노력하여 최대한 후회 없는 하루를 만드는 것이 뿌듯하여 앓아누울 때 말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스름한 새벽에 가방을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던 젊은 날의 나를 다시 만났다. 퐁-퐁-퐁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청량하고 푸릇푸릇한 추억이 해후의 손짓을 했다.


""반가워. 이제야 만나네. 여기까지 오는데 오래 걸렸어. 나는 내내 여기서 널 기다렸어. 내가 들고 있는 바통을 너한테 건네주려고. 자, 이거 받아. 그리고 이제부터 너의 이어달리기를 해봐. 너의 노력과 우주로부터의 행운이 동행하길 빌께.""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부드럽게 독백을 한 후 과거의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대사를 곱씹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새로운 길로 달려갈 준비됐니?"


옳은 선택을 하면 감정이 말한다. 그지없이 평온한 가운데 마음속에 힘이 생긴다. 낯설고 새로운 길을 갈 때는 두려움과 용기의 수레바퀴가 등속도로 움직인다. 마음속에 둥지 튼 선택에 대한 믿음을 밑천 삼아 두려움이 확신과 자신감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묵묵히 가보는 거다.


나를 찾는 또 다른 리츄얼, 글 짓는 시간이 지금의 나를 더 나은 나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