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읽고, 듣고 그리고 쓰기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해 사람의 뇌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더불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한다. 낯선 곳, 낯선 나라, 낯선 문화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된다. 낯선 언어를 접할 때 역시 그렇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영어를 배웠다. 한자 말고 처음 접한 외국어였다. "나는 중학교 여학생이다."라는 말이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 영어로 표현된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영어를 익히는 것에 푹 빠졌다.
영어 선생님이자 담임 선생님께서 엄하지만 신선한 자극을 자주 주셨던 영향력 있는 분이셨던 것도 영어 시간을 기다리게 만든 주요 공신이다. 26개의 알파벳을 조합하여 만들어지는 영어 단어와 그 단어들이 모여 의미를 전달하는 문장들이 표현하는 어감에 매료되었다.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들리는 원어민의 발음은 환상적으로 들렸다. 주저 없이 중학교 1학년 초반 영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지면 어떨까 막연한 꿈을 심었다.
소설 읽기 좋아하고 영어 과목 좋아하니까 영문학과 또는 관련 학과로 대학 진학을 하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하지만 삶은 예정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을 때가 다반사이지 않던가. 책 읽기 좋아하는 절반의 특성을 고려하여 문헌정보학을 택했다.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책이라는 그릇에 담긴 이야기, 그중에서도 영어로 된 이야기가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책이 하드웨어라면 영어로 된 글은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맞다! 단단한 그릇 안에 어떤 모양 어떤 성질이든 인간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 좋았다. 석사 과정 때 갑자기 많이 읽어야 했던 도톰한 전공 영어 원서 속의 딱딱한 내용도 군더더기 없이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는 영어 문장들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간명하고 논리적인 문장 표현의 진수를 실컷 맛보았다. 전공 원서를 보는 것은 힘들면서도 해내는 성취감에 무게를 둔다면, 마음 한편에는 소설 또는 영어 소설에 대한 갈증이 늘 잠복해 있었다. 자연히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일에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내 현실에 발현되었다. 자나 깨나 영어글을 잘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더니 영어 번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소설 또는 문학 관련 번역은 아니었고, 전공과목을 공부하며 짬짬이 번역을 하는 생활이 습관이 되었다. 좋아하는 취미가 돈이 오가는 일로 바뀌니 온통 재미였던 것이 걱정과 압박감으로 일부 탈바꿈했다. 시간에 쫓기고 몸이 고단했다. 오가는 버스, 지하철 안에서도 머릿속은 온통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몸의 피로는 호기심과 재미에 굴복했다.
졸업을 하고 전공 관련 분야의 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때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다시 현실로 나타났다. 국제협력 부서의 일을 해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연구소 주요 분야 프로젝트에 대한 세계 각국의 유엔(UN) 보고서를 번역했다.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번역 결과물을 검토하셨던 팀장님으로부터 깔끔한 번역이라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내 실력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를 의미했으므로 그 일에 대한 나의 애정과 노력을 신뢰하게 되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결혼 후 출산에 대한 우여곡절을 겪기 전까지는 연구소 일과 개인적인 읽기와 필사, 번역을 꾸준히 병행했다. 나의 경우, 필사를 하는 방법으로 손으로 쓰기보다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을 선호했다. 좋아하는 글자체를 키보드 자판을 치며 하얀 화면에 까만 알파벳들이 채워질 때의 촉감이 짜릿했다. 번역의 경우 달라진 점은 영한 번역으로부터 한영 번역으로 관심 범위가 커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영 번역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나라 단편 소설을 영어로 바꾸는 것에 관심이 갔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소설들이 영어를 선두로 일본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로 번역되어 해외 출판사를 통해 발간되기 시작한 그즈음 문학계의 흐름이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좋아하는 단편 소설을 틈이 날 때 영어로 번역해 보기 시작했다. 기 출판된 영어 소설을 노트북으로 필사할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영한 번역 소설을 필사할 때는 작가가 선택한 단어, 표현, 문장 구성을 세심하게 파악하며 자판을 두드린다; 반면에 역으로 한글 소설을 영어로 옮길 때는 우선 작가가 전달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런 다음, 이야기의 분위기와 스타일에 어울리는 단어를 생각하고 표현을 만들고 문장 구조를 다듬어나간다.
거의 매일 조금씩 더디게 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서 부담도 스트레스도 없이 한 문장 한 문장 했다. 읽기, 필사에 비해 양적으로는 견줄 바 없이 빈약했지만 신경 쓰고 익혀야 할 게 많아 체력 소모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성취감이 컸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바느질을 하듯 세심하게 문장들을 엮어나갔다.
시간이 흘러갔다.
그사이 결혼하고, 일하면서 저녁에는 문학번역 수업을 듣고, 출산을 하고, 그리고 어설프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를 무얼 믿고 내게 왔나 싶게 맑고 밝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쪼그만 손발을 허공을 향해 버둥대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여러 생각에 잠겨있는 나.
엄마로 거듭나라고 펼쳐진 인생의 새로운 장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이 길을 잘 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조약돌을 집어 발아래 흐르는 강가에 물수제비를 뜬다. 곧잘 던졌는지 물 위를 담방담방 튀기며 간다. 일정한 간격으로 제법 멀리 물 위를 가르며 간다.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영어 소리 내어 읽기는 물수제비 조약돌 같았다. 아기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며 나 자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어 어느 날 조약돌 하나를 집어던졌다. 운 좋게도 조약돌은 강물에 툭 떨어지거나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로 매일 물수제비를 뜨기 위해 조약돌을 던졌다. 그렇게 매일 영어 소설을 아기가 자는 동안 소리 내어 읽었다. 그 물수제비 뜨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선명한 모닝 리츄얼로 나는 인생의 변화와 성장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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