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도하는 'My Way'

나의 걸음이 곧 나를 비추는 등불

by 제퍼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캄캄한 터널 깊숙한 곳에 내가 있다. 어느 쪽으로 발을 내디뎌야 출구로 갈 수 있는지, 출구를 찾을 수는 있을까 두려움에 온몸이 오싹 쪼그라든다. 두 눈을 감는다. 사위가 적막한 가운데 멀리서 작은 소리들이 간간이 들려온다. 위협의 신호일까 바짝 긴장하다가, 문득 터널 밖 환한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가슴이 환해지기도 한다. 희미하지만 가느다란 빛줄기를 향해 마치 광합성을 위해 몸을 기울이고 뻗는 나무들처럼 귀가 소리의 근원지로 뻗는다. 그때 섬광이 순간 눈꺼풀 위를 스친다. 어느 쪽에서 비추었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본능적으로 가늠되는 방향으로 몸을 휙 돌린다.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일어난다. 발목 주위에 서늘한 간지러움이 인다. 한 발자국을 내딛자 가는 바람이 등을 민다. 앞으로 가면 된다는 무언의 손길이다. 자석에 이끌리듯 어둠 속을 걷는다. 머뭇머뭇 허둥지둥 걸음들이 어두운 터널에 길을 열어간다. 그 걸음들이 나를 저 환한 세상으로 들어가게 인도하는 등불이 되면 좋겠다고 가슴에 새긴다.


품에 안겨 열심히 분유를 먹고, 아기 욕조에 누워 시원하다고 앙증맞은 팔다리를 쭉쭉 뻗고, 기저귀가 불편하다고 찡찡대고, 내 무릎에 앉혀 눈을 마주치면 방긋방긋 웃고, 재워서 고이 누이면 쌔근쌔근 잘도 자는 아기를 보며 나의 한쪽 마음은 신비로움과 감사로 가득하고, 또 다른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한쪽 마음은 아기를 향하고 있었고, 또 다른 마음은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존재 하나에 두 마음이 공존하는 혼란의 상태. 그 또 다른 마음은 터널 안에 갇힌 바로 그 존재다.


상반되는 두 마음으로 들끓는 심정을 눈을 감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니 두 마음 다 이유와 사정이 있었다. 두려워 움츠러들 이유도 없고 무력감에 황망할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그냥 그대로 있으면 지금처럼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 걸, 힘겹게라도 작게라도 자력으로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Just do it. 주저 없이 그냥 해보았다. No problem.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래서 Keep going. 계속했다. 이후로 16년이 지났다.


아침에 눈떠서 하루의 일과를 생각할 때 기다려져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루틴이 있다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동이 트기 직전 회색빛 어둠이 아직 내려앉아 있는 머리맡에서 낭랑하게 울려대는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킨다. 올해 17세 소년이 된 아들의 이른 아침 루틴을 돕기 위해서다. 해가 환하게 뜨기 전 조조할인이 되는 시간에 버스를 타고 언덕 위 새벽어둠에 싸여있는 학교에 도착하여 고요한 교실에서 두런두런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아들은 16년 전 나의 모닝 리츄얼 시작의 trigger다. 요즘 그에게는 이른 아침 고요한 교실에서 혼자 하는 공부가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루틴인 셈이다.


아들과 남편이 연이어 낮 동안의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가고 나면 가볍게 아침 식사를 하고 주부로서의 미션을 시작한다. 매일 할 일, 주 단위, 월 단위로 할 일, 그리고 계절별로 할 일을 다이어리에 구체적으로 메모해놓고 한다. 가끔 계획에 없던 일이나 갑작스러운 일 처리도 포함해서 두 시간 동안은 집안일을 한다. 대부분 손발이 수고하여 가지런함을 만드는 일들인데 이것도 재미있다. 내 손끝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정갈함은 깨끗한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무렵, 이제부터 나의 모닝 리츄얼이 시작된다. 바지런한 나의 움직임으로 어제 하루의 너저분한 자취들이 제자리를 찾아 가지런하게 정돈된 집안을 소유하는 상쾌함이란! 나를 매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노동주에 대한 갈증 해소와 의식을 치르기 위한 미사주 격인 커피를 만든다. 이것은 모닝 리츄얼을 본격 시작한다는 신호탄이다. 커피에 이어 오늘 읽을 책 두 권, 볼펜 한 자루, 형광펜 한 개, 수첩과 노트, 뉴스 및 검색을 위한 휴대폰을 나름의 최적의 위치에 반듯하게 놓는다.


책 한 권은 무조건 영어 소설이고 다른 한 권은 한글 책인데 주제는 주로 소설, 에세이, 입시 및 교육 관련, 요리 및 살림, 인테리어 관련, 자기 계발서, 경제 또는 투자 관련 중 하나로 분야가 다양하다. 볼펜은 주로 검은색, 형광펜은 주황, 노랑, 연두, 파란색 순으로 선호한다. 영어 단어와 기막히게 멋지다고 느끼는 표현과 문장들을 적는 손바닥 크기의 수첩과 한글책에서 얻는 정보와 팁을 정리하는 A4 사이즈 스프링 노트, 그리고 영어 단어 검색과 매일경제 신문 보기를 위한 휴대폰이 나의 모닝 리츄얼을 위한 준비물이다.


가장 먼저 신문 기사를 본다. 휴대폰에서 매일경제 신문보기를 열어 A1페이지부터 C10까지 제목을 스크롤다운하며 관심 있는 기사를 꼼꼼히 읽는다. 그중 경제 기사 세 편을 노트에 정리한다. 귀찮을 땐 제목과 출처라도 적어둔다.


다음으로 리츄얼의 메인인 영어 소설을 읽는다. 하루의 분량을 정하고(20 페이지 내외, 단편 하나 정도) 의미를 생각하며 소리 내어 읽는다. 문장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 따라 조금 천천히 또박또박 또는 빠르게 흐르듯이 읽는다. 리듬이 생긴다. 이게 아주 즐겁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같다. 신난다. 그 순간 내가 진정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면 억측이고 과장일까!


절정을 향해 치달았던 사건이 결말에 이르는 것처럼 이제 소리 내 읽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글 서적을 읽는다. 차분하게 눈으로 읽으며 뜨거웠던 열기를 식히고 냉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 오후 1시이거나 조금 지났다. 나를 잃어버린 것처럼 훌쩍 두 시간이 갔다.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해 보았다면 통째로 묶여 지나간 두 시간의 희열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와 내면이 비워지는 동시에 채워진 느낌. 나를 다시 찾은 다행스러움. 하루의 나머지 절반을 나답게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오늘도 난 성공적으로 만들고 얻었다.


두려움과 불안이 급습하여 그것들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이 궁리 저 궁리 생각을 짜내면 짜낼수록 더더욱 미궁 속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무 하나하나에 집착하다 보니 숲의 어디쯤에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 길을 잃고 만다. 이런 종류의 경험을 몇 번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나무나 숲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자신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을. 나무와 숲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상황을 정리해서 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나의 작은 시도가 없으면 언제까지고 나는 그 한가운데서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자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그랬더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좁은 출구가 보였다.


결국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Myself, 나였다. 내가 걸음을 떼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없다. 스스로가 등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우쳤다. 작은 한 걸음이 길을 내고 그 길을 가다 보면 또 다른 길들이 보인다. 선택을 한다. 그러면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그 길을 가면 된다. 그렇게 'My Way'를 이어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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