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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기획자’는 실패를 먹고 자랍니다

교육 비즈니스 이야기 #1 브런치 완주반이 6개월만에 사라진 이유

by 제로베이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기획해 시장에 출시하는 ‘상품기획자’. 들어보셨나요?

MD, PM 등 상품기획자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가지이지만,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떤 분야에 있는 상품기획자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제품이 출시되기까지는 수개월, 혹은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시장 규모를 파악하고, 타겟을 설정하고, 경쟁사를 모니터링하고, 시제품을 제작하는 등 기획자, 연구진, 제품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무의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출시 이후에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 지속 판매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기획 단계의 기간이 길수록 실패할 때의 비용이 크다는 점은 간단한 계산으로도 알 수 있는데요. 출시까지의 기간이 짧으면 짧은 만큼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일반적인 기업의 상품기획자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스타트업’의 상품기획자입니다. 조직의 규모가 작고,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 ‘스타트업’ 상품 기획자의 일


교육 스타트업인 우리는 길면 한두 달, 빠르면 2주 이내에 교육 콘텐츠를 기획해 출시합니다. 놀라운 속도죠. 우리는 매일 기획 회의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시장성을 살펴보고 “시도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 빠르게 추진합니다. 출시 이후에는 상품기획자와 콘텐츠 마케터, 그로스 마케터가 모여 일 단위로 매출과 광고비를 추산해 숫자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그 중에서도 한 달 이내에 출시까지 이루어진 강의가 있었습니다. 첫 아이디어 회의부터 강사진 컨택, 세부 기획, 상세페이지 디자인이 한 달 안에 뚝딱 이루어졌죠. 바로 ‘책 한 권 출판하기’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브런치로 책 출판하기 온라인 완주반’이었습니다.



| 브런치로 책 출판 완주반, 그 시작은 화려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글쓰기’라는 니즈를 발견했습니다. 취미 시장에 분명히 존재하는 니즈를, 매주 듣는 습관을 만들어 확실한 결과물을 내는 ‘완주반’과 연결지어보기로 했죠. 글쓰기에 관심 있는 직장인을 타겟으로 브런치 작가 등록부터 책 한 권 내기를 목표로 강의를 기획했습니다. 강사 컨택, 커리큘럼 기획, 출시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죠.


브런치-보완.png 브런치로 책 출판 완주반 담당 기획자의 초기 기획문서


출시 초반 시장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한 달 단위의 기수제로 운영되던 브런치 완주반은 2020년 9월 출시해, 6개월 동안 총 457명의 수강생분들이 브런치 완주반을 선택했습니다. 매주 작가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글을 고치고, 한 권의 책으로 엮어주는 과정은 흔치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책 한권 내볼 테다”하는 분들에게 좋은 강의였던 거죠.


하지만 브런치 완주반은 얼마 뒤 사라졌습니다. 개강 초반에는 매달 목표 인원을 달성하면서 모집을 마감해 야심차게 매주 개강으로 전환했지만, 그 이후에는 점차 악화됐어요. 매주 30만원이 넘는 비용을 낼 수 있는 타겟의 규모도 크지 않았고, ‘강력한 동기부여로 확실한 결과물을 만든다’는 완주반이라는 포맷과도 맞지 않았던 거죠. 우리는 이를 판단한 바로 다음 주, 전면 폐강을 결정했습니다.


X-MNHcG60lmtXfZBGDiuC4nv4yAPVlO0sfY-7GRlaLlRWixDhWQhbGxlkXNFkGuvv8qwGsxnLo-pEKPX8SQLGQ09TGsGfWvCe7skY-7Dcm9Kzltr8XL2xkJhw-5gOHQ7b-SGmyCY=s0 역사속으로 사라진 ‘브런치로 책 출판 온라인 완주반’


| 그렇게 ‘브런치로 책 출판 완주반’은 매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브런치 완주반을 매주 개강으로 전환하고, 매일의 판매치를 트래킹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완주반의 포맷은 ‘글쓰기’라는 니즈와는 맞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조금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는 환경에서 관리를 받아 확실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취미 생활’보다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강의들에게 더 적합하다는 점을 알게 됐죠.


그리고 그 시점, 우리는 ‘취미 생활’에 가까웠던 모든 강의를 정리했습니다. 이모티콘 만들기 완주반, 카피라이팅 완주반, 잘나가는 사수의 보고서 훔치기 완주반.... 지금 완주반의 대표 강의인 데이터 사이언스 완주반, 프론트엔드 개발자되기 완주반보다는 조금 많이 말랑합니다.


우리는 1개월 안에 기획하고 출시해, 6개월 동안 판매하고, 1주만에 판매를 중지했습니다. 이는 매일 상품 기획자와 마케터가 숫자를 보며 논의하며 결정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특성 덕분이었습니다. 이 과감한 결정은 작은 조직규모, 자발적인 업무환경, 자유로운 의사결정 시스템이 뒷받침되는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상품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삶의 전환점이 되는 교육 콘텐츠’라는 우리의 모토도 조금 확고해졌습니다. 시행착오의 기간이 되었던 거죠. 우리는 이제 ‘취미’보다는 ‘취업, 이직’을 목표로 하는 강의. 강력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완주반’이라는 포맷에 맞는 강의만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 ‘스타트업 기획자’는 실패를 먹고 자랍니다


‘브런치로 책 출판하기 완주반’ 이외에도 사라진 강의는 무수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지난 7월에도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강의뿐만 아니라, 이러한 강의들이 모인 하나의 ‘상품군’을 철수했으니까요. 이렇듯 스타트업 상품 기획자는 ‘실패’를 밥 먹듯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이정표 삼아 맞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죠.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자주 마주하는 스타트업 상품 기획자의 일. 하지만 우리의 실패는 ‘이대로 끝’이 아니라,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곤 합니다.


매일 마주하는 실패가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 믿으며, 우리는 오늘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습니다. 늘 그래왔듯 말이죠.




*성장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제로베이스 미디어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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