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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Oct 11. 2021

광안리에서 #1

-2021 08 16

 2년 만에 부산을 찾았어요. 아마 2년 전에도 혼자 왔었던가 하고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친구랑 왔던 기억이 피어오릅니다. 그때도 뙤약볕이 무섭게 내리쬐던 여름날이었고, 지금 이곳 광안리에 있었는데 말이에요. 3년 전, 혼자 부산을 왔을 적에도 여름이 막 끝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의 초입이었는데, 시간이 무섭게 흘러 3년이 지나갔습니다.


 최근 제 마음은 3년 전과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정확히는 어제까지 말이에요. 바다를 앞에 두고 3년 전의 슬픈 눈과 마음으로 바다를 보고 한참을 서 있었고, 가만히 서서 3년을 거슬러 저를 관통해 스쳐 지나간 서늘한 마음을 뜨거웠던 여름과 함께 멀리멀리 흘려보내 주었어요.


 무섭게 뜨거웠던 여름날도 끝을 보이기 시작하네요. 입추가 지나고 말복도 지났어요. 그리고 막연했던 사이에서 막역해진 사람도, 사랑도 지나갔습니다. 3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전의 저는 저를 흘려보냈고, 오늘의 저는 당신을 흘려보냈습니다.


 평생 막역한 사이고 싶었던 당신을 저 바다 너머로 흘리고 왔습니다. 당신이 파도에 밀려 다시 제게 흘러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미 당신에게 던질 구조장비들을 모두 던졌고, 그것들을 붙잡아주었기에 위태로웠던 우리의 파도타기가 그나마 이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서로의 파도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높았고, 또 거칠었지요. 우리 사이에도 적절한 방파제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방파제가 없던 관계는 중간이 없어서 무엇 하나 집어삼킬 정도로 큰 파도가 서로를 덮치고, 소란스럽게 요동을 치며 일렁이다가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해지고 잠잠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당신을 흘리고 있는 저는 이제야 비로소 적당한 일렁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할 일도, 초조할 일도, 슬퍼할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사무치는 감정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에 눈물은 또 왜 안 나는지. 바다를 보면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텅 빈 삭막한 마음에 물기 하나 없는 건조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당신이 미웠던 순간은 여전히 밉고, 사랑했던 순간은 여전히 사랑스럽습니다. 최대한 우리의 지난날을 미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워하려 해요. 당신의 뾰족하고 모난 모습은 모난 대로, 둥글게 사랑했던 순간을 유리구슬처럼 둥글게.


 당신과 나의 바다를 공유하던 보통의 나날이었다면 오늘 제게 있었던 이야기들을 병아리처럼 쉴 새 없이 이야기했겠지요. 영락없이 비를 쫄딱 맞은 일과 우산을 사려고 걸었는데 그 많은 편의점이 하나 없었다는 이야기. 광안리 해변에 우뚝 서있는 자이언트 펭수 조형물에 대한 이야기와 흐린 날씨에 흐린 바다를 보며 당신이 보고프다는 이야기. 아니 어쩌면 이곳에 당신과 함께 왔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전할 필요 없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는 어제를 보냈어요.


 당신은 오늘날의 저를 그리워하고 있나요. 아마 지금의 당신은 그럴 여력이 없겠지요. 언젠가 그럴 여력이 생긴다면 저를 그리워할지 조금은 궁금합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온전히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그날에 제가 이따금 떠올라 당신을 조금은 흔들어 놓았으면 좋겠어요.


 당신도 여느  어느 바다엔가 저를 열심히 흘려주세요.

 그 바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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