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을 형성하는 몸의 조건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임신을 계기로 두통이 줄어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연이 아니라,
몸이 처음으로 안정되는 조건에 들어갔다는 신호입니다.
“이상하죠. 그렇게 아프던 머리가
임신하고부터는 안 아파졌어요.”
이상한 게 아니라, 아주 중요한 단서입니다.
만성두통을 오래 앓아온 분들 중에는
임신을 계기로 두통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임신은
두통을 만들어 오던 조건들을
여러 레벨에서 동시에 바꿔버리는 특수한 생리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들을 같이 살펴 보시죠.
만성두통, 특히 편두통은 호르몬의 부족이나 과잉보다 ‘오르내림’에 더 민감합니다.
생리 전, 배란기, 컨디션이 무너질 때마다 두통이 반복되던 이유도 사실은 이 급격한 변동 때문입니다.
임신하면 더 이상 매달 몸이 호르몬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습니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지만, 그만큼 안정을 찾게 되죠.
그래서 신경과 혈관이 과하게 자극받을 이유도 자연히 사라집니다.
임신은 몸에 큰 부담이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몸은 아픔을 그대로 느끼도록 두지 않습니다.
엔도르핀 같은 내인성 진통물질이 늘어나고, 뇌에는 통증억제회로가 더 적극적으로 작동합니다.
그 결과 같은 자극에도 뇌는 통증으로 인식하지 않거나, 훨씬 둔하게 느끼게 됩니다.
“아프긴 한데, 예전 같지는 않아요.”
대개 이렇게 표현하게 됩니다.
만성두통 환자분들의 몸은 평소에도 대개 긴장 상태입니다.
늘 깨어 있고, 늘 버티고, 늘 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신하면 몸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싸우거나 버티는 쪽이 아니라 유지하고 보호하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자율신경도 조금 더 부교감신경 쪽으로 기울어 혈관의 과한 수축과 이완이 줄어듭니다.
두통의 불씨가 자주 붙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의학 교과서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임상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임신하면 늘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무리하면 안 돼요.” “좀 쉬셔야죠.”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쉼을 허락합니다.
야근을 줄이고, 잠을 늘리고, 식사를 꼭꼭 챙기게 되죠.
이렇게 휴식 수면 식사의 리듬이 강제로 조정되게 됩니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게 되는 거죠.
그래서 누적된 피로 + 회복 실패라는
핵심적인 만성 두통의 구조가 임신기간 동안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임신이 두통을 치료한 것은 아닙니다.
임신은 두통을 만들어 오던 조건들을 동시에 잠시 치워준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출산 후, 수면이 무너지고 호르몬이 급변하고 체력이 다시 고갈되면 두통이 재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임신 중 두통이 줄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몸의 조건이 바뀌면 만성두통은 사라질 수 있다.” 는 것입니다.
두통을 없애려고 일부러 임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임신을 한다고 누구나 두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임신 중에 만들어졌던 안정된 조건들로 두통이 사라졌듯이
몸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면 두통은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통은 고쳐야 할 적이 아니라, 몸이 보내주는 아주 솔직한 신호이니까요.
임신 후 두통이 사라질 수 있지만
임신과 함께 처음으로 두통을 겪거나 두통이 심해지는 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요?
다음 글에서 임신으로 두통이 생기는 이유를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