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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나쁜 사람 벌줄까요, 돈 받아낼까요? (1)

다툼과 법 4. 형사 재판

by 크느네

철수는 영수에게 자기 회사에 천만 원을 내면 매달 백만 원의 이자를 준다고 약속하고 계약서를 쓴 뒤, 영수의 돈 천만 원을 받아갔습니다. 영수는 한 달 뒤에 백만 원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지만 그다음 달부턴 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영수는 철수에게 백만 원을 돌려줄 테니 자기 돈 천만 원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철수는 나중에 돌려주겠다고만 말하고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결국 영수는 900만 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보고 나서, 그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경찰서에 신고하지 않으면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가해자나 사회를 원망할 순 있겠지만, 그렇게 속을 끓이고 있다고 해서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떼인 영수는 불법이 아닌 모든 방법을 시도해서 철수에게 돈을 받아내야 합니다. 철수에게 계속 연락하고 직접 자주 찾아가기도 하면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온갖 방법을 써봤어도 결국 돈을 받지 못했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포기하거나,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뿐입니다.

자기 인생에 큰 피해를 주는 문제가 생겼다면 쉽게 포기해선 안 됩니다. 그렇다고 힘에 너무 부치는 일을 혼자서 전부 감당하려고 끙끙대는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도움을 요청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무언가를 시도해 본 것이 있다면 후회가 훨씬 덜하니까요.


영수는 경찰서에 가서 철수가 한 짓을 신고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찰에 신고만 하는 것으론 영수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수는 경찰을 찾아가 신고하기 전에, 자기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정해야 합니다. 철수를 경찰서에 신고하고 법의 처벌을 받게 할 건지, 아니면 법원을 통해 강제로 철수에게 돈을 받아낼 건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 할 건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영수가 철수에게 벌을 주기로 했다면 영수는 경찰서만 가면 됩니다. 영수가 돈을 받아내는 재판만 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경찰서에 갈 필요는 없으며 법원에만 가면 됩니다. 둘 다 하려면 두 곳을 다 가야겠죠.

그리고 영수가 변호사를 통해서 일 처리를 할 생각이라면, 경찰서나 법원에 갈 필요 없이 변호사 사무실만 가도 됩니다. 변호사가 경찰서든 법원이든 대신 가서 일을 해주니까요.



영수가 철수에게 돈을 받아내는 것보다 처벌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면, 영수가 할 일은 형사재판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수는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직접 경찰서에 가서 철수의 범죄를 신고하고 형사재판을 신청해야 합니다. 형사재판을 신청하는 것을 '고소'라고 합니다.

영수가 돈보다 철수의 처벌이 먼저라고 결정했다는 것은 정말로 영수가 화가 끝까지 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소는 “내가 화났으니까 철수 벌주세요”라는 이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법을 어기고 저에게 죄를 지었기에 벌주세요”라고 해야 할 수 있습니다.


영수가 철수를 사기죄로 고소한 뒤에, 경찰서에 몇 번 다녀오면 영수의 할 일은 사실 끝납니다. 시간이 지나면, 영수는 철수가 어떤 처벌을 받았다고 법원에서 연락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영수와 철수의 형사 사건은 끝나게 됩니다. 피해자의 처지에서만 보면 생각보다 고소의 전체 과정은 간단합니다.

재판이라고 하면 흔히 방청객이 있고, 가해자는 죄수복을 입고, 변호사가 서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법원을 생각하겠지만, 피해자의 처지에서 실제 형사재판은 경찰서만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끝입니다. 매우 심각한 사건이 아니라면 서류를 통해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고소부터 시작해서 재판 결과를 받는 것까지, 주로 서류로 시작해서 서류로 끝납니다.

대신 양쪽 중 한쪽이라도 재판 결과가 너무 마음에 안 들면 2번까지 재판을 더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때부턴 이제 우리가 흔히 아는, 판사를 두고 피해자 측(편)과 가해자 측(편)이 서로 다투는 법원 재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재판 비용과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나게 됩니다.


병을 고치는 일은 의사와 환자가 병을 대상으로 함께 싸우는 일이지만, 재판은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이 서로 대결하는 일입니다. 1대 1 스포츠 경기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재판에서 이기려면 자기 대신 잘 싸워줄 선수가 필요합니다. 보통 변호사를 구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형사 재판에서 피해자는 변호사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형사 재판은 검사가 자동으로 피해자의 선수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대신 가해자(피고인)는 자기 보호를 위해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가해자가 변호사 없이 검사와 대결하게 되면 어려운 법률 용어와 숙련된 재판 진행에 휘말려 하소연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재판이 끝날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변호사를 따로 구하지 못하면 법원은 국가 소속 변호사인 ‘국선 변호사’를 붙여줍니다.


많은 사람이 다툼이 생기면, “너 고소”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로는 고소를 쉽게 하진 못합니다. 재판이라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판 비용 특히 변호사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입니다.

형사 재판을 한번 하려면, 경찰 법원 직원 검사 국선 변호사 판사 등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합니다. 다시 말해 돈이 상당히 들게 됩니다. 그 비용의 많은 부분을 국가 세금으로 보충하긴 하지만, 개인 사건이기에 개인 또한 어느 정도 돈을 내야 합니다. 개인 사건을 재판할 때 드는 기본적인 비용을 ‘소송비용’이라고 합니다. 참가비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참가비에 해당하는 소송비용은 사실 그렇게 큰 부담이 되진 않습니다.

문제는 변호사 비용입니다. 변호사와 계약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을 ‘변호사 고용’이라고 합니다. 변호사 고용 비용은 변호사마다 다릅니다. 유명하고 성과가 좋은 변호사와 계약하려면 수억 원이 들기도 합니다.

변호사 비용은 ‘착수금’과 ‘성공보수’가 있습니다. ‘착수금’은 일을 시작할 때 내는 돈으로써, 그 돈으로 변호사는 사건을 조사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재판은 이기고 짐에 따라 그 결과가 엄청난 차이가 있기에, 변호사를 통해 재판을 이기게 되면 변호사에게 성공한 보상을 추가로 주기로 약속한 것이 ‘성공보수’입니다.

그런데 형사소송에서 피해자는 검사가 있기에 변호사가 필요 없고, 가해자는 국선 변호사를 이용하면 되므로 양쪽 모두 변호사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참가비인 소송비용만 내면 재판을 할 수 있죠. 그리고 재판 비용은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의 비용을 합친 뒤에 판결할 때, 각각 얼마씩 비용을 나눠 내라고 정해줍니다. 주로 판결에서 이긴 쪽이 적게 내며 양쪽 모두 변호사를 따로 구하지 않았다면 그 비용은 상당히 적습니다.


이처럼 형사 재판은 국가가 재판을 많이 도와주기에 다른 재판에 비해 돈이 덜 듭니다. 그에 반해 재판 결과에 따라 사람이 범죄자(전과자)가 되기도 하고 심하면 감옥까지 가게 되어 인생이 굉장히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형사 재판은 신청하기 쉬우면서 상대방에게 큰 압박을 줄 수 있는 재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형사 재판에 대해 적당히 아는 사람은 형사 재판을 신청하는 ‘고소’라는 말을 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죠.

그런데 형사 재판에는 ‘일사부재리’라는 규칙이 있습니다. 한번 판결이 나면 그 사건은 다시 고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수가 철수를 사기죄로 고소하고 재판 결과를 받았는데, 그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나중에 철수를 사기죄로 또다시 고소할 순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재판 결과가 무죄가 나왔다면, 영수는 철수를 모함한 셈이 되므로, 철수가 오히려 영수를 무고죄(거짓 고소한 죄)로 고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형사 재판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너 고소’라는 말을 생활에서 쉽게 하지 않습니다. 심각한 사건이 아니라면 고소하는 것을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고소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증거를 충분히 모으면서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이유로 형사 재판에서 피해자가 변호사를 고용하기도 합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는 고소장을 쓰는 일부터 피해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모으는 일, 경찰 조사 때 피해자와 함께 가는 일 등 피해자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많은 도움을 줍니다. 대신 그로 인해 드는 변호사 비용은 피해자가 감당해야 합니다.



영수는 철수를 사기죄로 고소하였습니다. 영수는 경찰서에 가서 고소장을 쓰고 그 뒤로 연락을 받아 경찰서에 몇 번 다니면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보통 이런 돈문제 사건은 상대방이 처음부터 남의 돈을 뺏을 생각으로 접근했다면 사기죄가 인정되지만, 잘 대해주려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것뿐이거나 돈을 갚을 생각이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돈을 못 갚는 상황이라면 사기죄가 되지 않습니다.

6개월 뒤에 영수는 법원으로부터 철수가 벌금 500만 원을 국가에게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수는 철수가 벌을 받은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따진다면, 영수도 철수도 손해 보는 일만 생긴 셈입니다.

이제 영수는 천만 원을 버린 셈 치고 잊어버릴지, 민사소송을 통해 사기당한 돈을 받아낼지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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