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과 법 5. 민사 재판
법은 사회 질서 유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다음이 사람의 생명입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국가는 형사 재판을 통해 앞장서서 문제를 처리합니다. 국가가 사기꾼을 처벌하는 것은 사기당한 피해자를 돕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기꾼이 많아지면 사회질서가 무너져 국가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보다 국가가 진짜 피해자란 것이죠. 그래서 형사재판에 진 사람이 벌금을 낼 때 피해자가 아닌 국가에 돈을 냅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형사재판을 이겨도 사실 자기에게 큰 이득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는 벌을 받으면 피해자의 기분은 풀릴 수 있겠지만, 가해자가 벌 받는다고 해서 자기에게 잃어버린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법은 개인의 돈이나 재산 문제는 사회 질서나 사람의 생명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이 서로 돈 때문에 다투는 문제는 국가가 그리 자주 나서 주지 않습니다. 그 말은 개인의 다툼 문제는 국가가 세금을 들여서 해주는 형사 재판을 잘 안 해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개인의 다툼 문제로 형사 재판을 하는 것은 가해자가 다른 피해자를 더 만드는 것을 막는 이득 정도가 있을 뿐이며, 재판 허락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는 자기 돈을 들여 ‘민사 재판’을 해야 합니다. 민사 재판은 사회 질서가 아닌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재판이며, 국가가 아닌 자기가 비용을 내기에 신청만 하면 대부분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교통사고, 학교 폭력, 돈 문제 등등 수많은 범죄와 다툼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일부러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려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은 범죄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거나 사정이 좋지 못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범죄는 아닙니다. 이렇게 범죄가 아니면서 다툴 일이 있을 때, 결론을 서로 내리지 못했다면 민사재판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다툼은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그나마 낫고 서로가 편합니다. 특히 상대방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받은 것까지도 돈으로 계산해서 보상받기도 합니다. 이것을 '위자료'라고 하죠. 민사 재판은 주로 “OO 이유로 <얼마의 돈>을 상대로부터 받게 해 주세요”라는 돈에 대한 재판이 대부분입니다. 여기서 재판을 신청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받으려는 그 <얼마의 돈>에 해당하는 것을 ‘소송가’라고 합니다. 영수가 재판을 통해 철수로부터 900만 원을 받아내려고 한다면 <소송가 900만 원인 민사재판>을 신청하는 것이 됩니다. 민사재판은 얼마짜리 재판인가가 중요합니다.
영수가 민사 재판을 하려면 경찰서가 아닌 법원으로 가야 합니다. 주로 가까운 지방법원으로 가서 민사 재판을 신청합니다. 그런데 병에 걸리면 보통 약초를 직접 캐러 산에 가기보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는 것이 낫죠. 비슷하게 민사 재판을 하려면 법원에 직접 가기보다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게 됩니다.
환자가 병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가 시킨 대로 따르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민사 재판 또한 자기 변호사가 시킨 대로 하다가 재판 결과를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민사 재판도 형사 재판처럼 신문에 날 만한 큰 사건이 아니라면, 피해자(원고) 측과 가해자(피고) 측이 각자 서류를 준비해서 법원에 제출하고 나중에 판결을 받게 됩니다. 민사재판 역시 재판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재판을 2번까지 더 신청할 수 있고, 그때는 재판이 훨씬 복잡해집니다.
형사 재판은 ‘검사 vs 가해자 변호사’의 대결 경기라면, 민사 재판은 주로 ‘피해자 변호사 VS 가해자 변호사’의 대결입니다. 민사 재판은 변호사 도움을 받는 것이 의무는 아니라서 변호사 없이 혼자서 재판 준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질병에 대해 상식이 아무리 많더라도, 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사보다 병을 잘 다루긴 어렵습니다. 민사 재판을 마음먹었다면 변호사와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민사 재판은 검사나 국선 변호사 같은 국가의 도움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문제는 변호사 비용이 변호사마다 다르고 대부분 상당한 돈이 든다는 것입니다. 돈 문제를 해결하려고 돈을 상당히 써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 바로 민사 재판입니다. 그래도 병원비 아까워서 병원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재판을 신청하려면 일단 재판 신청비를 내야 합니다. 영수의 <소송가 900만 원인 민사재판>을 하려면 약 15만 원의 신청비가 듭니다. 900만 원을 상대에게 받아낼 수 있다면, 15만 원 정도는 낼만한 돈입니다.
그러나 변호사 비용은 영수가 어떤 변호사를 고용하느냐에 따라 100만 원이 될 수도 300만 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900만 원 받아내려고 300만 원을 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죠.
애당초 철수만 아니었다면, 재판 신청비나 변호사 비용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판에서 이긴 쪽은 “너 때문에 이런 돈이 들었으니 네가 책임져라”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대신 이긴 쪽이 진 쪽에게 자기 변호사 비용 전부를 받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일부분만 받을 수 있고, 그 비용은 법원에서 정해줍니다. 이 비용은 소송가가 높을수록 비싸집니다.
영수는 변호사비로 착수금 100만 원과 성공보수 100만 원을 주기로 계약했습니다. 200만 원이라는 변호사비가 부담되지만 재판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수의 <900만 원 민사 소송>에서 재판에 이겼을 때 상대방에게 받을 수 있는 변호사비는 90만 원으로 법원에서 정해주었습니다. 재판을 영수가 완전히 이겼다면, 철수로부터 90만 원을 변호비로 받아낼 수 있습니다. 90만 원을 거저 얻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영수는 철수에게 받은 90만 원과 자기 돈 110만 원을 합쳐서 자기 변호사에게 약속했던 200만 원을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영수가 재판에 완전히 지면, 반대로 철수에게 90만 원을 줘야 합니다. 그러면 영수는 재판에 졌으므로 자기 변호사에게 성공보수를 제외한 돈인 100만 원이 들고, 상대편 변호사에게 90만 원을 진 대가로 주어야 합니다. 결국, 영수는 190만 원의 변호사 비용이 들게 됩니다. 결국 철수는 재판에서 이기면 변호사비를 110만 원 준비해야 하고, 지면 변호사비를 190만 원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수가 재판에 지면, 철수에게 못 받은 900만 원까지 더해야 하므로, 영수는 1,090만 원의 손해가 생겨 이전보다 더 큰 손해가 생깁니다.
게다가 영수가 재판을 이긴다고 해서 문제가 무조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영수가 재판을 이겨도 철수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추가 재판(2심)을 요구하면, 영수는 재판에서 이긴 것이 취소되고 다음 재판(2심)에서 새롭게 대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수가 처음 재판에서 이겼어도 다음 재판에서 이길 때까지 돈을 받지 못합니다. 대신 영수가 첫 번째 재판에서 이길 때 ‘가집행’을 허락받으면, 두 번째 재판 결과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첫 번째 재판에서 이기자마자 바로 상대에게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신 두 번째 재판에서 판결이 뒤집히면 그동안 받았던 돈을 다시 내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 재판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세 번째 재판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두 번째 재판이 끝이라고 보면 됩니다. 세 번째 재판은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법이나 판사가 잘못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단순한 다툼 문제는 3번째 재판을 하는 의미가 딱히 없습니다. 게다가 재판을 계속하게 되면 양쪽 다 재판 비용만 늘어나게 됩니다.
영수가 첫 번째 재판을 이기고 철수가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문제가 무조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원에서 철수에게 영수의 돈 900만 원을 갚으라고 명령했더라도, 철수가 그 말을 안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법원은 ‘강제 집행’을 합니다. 법원이 철수의 물건, 재산이나 집을 강제로 팔고(경매) 그 돈을 영수에게 주는 것입니다.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갑자기 자기 집에 여러 사람이 와서 ‘빨간딱지’를 붙이고 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빨간딱지는 조만간 법원에서 딱지 붙은 물건을 강제로 가져가서 판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철수가 정말로 돈이나 재산이 없어 영수에게 돈을 못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강제로 빼앗아서 팔 물건이 없기에, 법원도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습니다. 철수가 은행 이용하는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민사 재판을 하게 되면, 재판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고, 재판에 이기더라도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애당초 사람 사이에 투자든 돈을 빌려주는 일이든, 돈거래를 할 때는 미리 조심해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재판이 일어날 만한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사람이 조심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일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거래를 할 땐, 자기 전 재산을 맡기거나 급하게 큰돈을 빌려주는 일 같은 무모한 일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돈에 대해 지나치게 욕심부리거나, 돈으로 일 처리 하는 것을 너무 서두르면 큰 다툼이나 사고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영수가 철수에게 맡긴 돈 900만 원이 영수가 잃어버려도 될만한 돈이라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돈이 영수의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이라면 철수가 영수에게 사기 친 것은 나쁜 일이지만 영수의 행동 또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큰돈을 급하게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자판기처럼 적은 돈을 넣고 물건이 바로 나오는 일이나 급하게 돈과 물건을 주고받을 뿐입니다. 그리 지금 세상에서 무조건 이자를 매달 10% 주는 금융상품, 재테크 상품은 없습니다. 이런 내용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본 상식입니다.
기본 상식이 부족하면서 욕심을 부리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급하게 일 처리를 하려고 하면, 큰 문제가 생기고, 마음고생과 돈의 손해를 보면서 민사 재판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돈거래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가정, 학교, 직장 생활에서도 민사 재판에서 다툴만한 문제는 수두룩합니다. 자기가 어디에 있든 몰상식한 일을 줄이고, 지나치게 욕심부리다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고, 급하거나 대충 일 처리 하는 습관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법원의 도움을 받기보다 심각한 문제로 커지기 전에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낫습니다.
소송가 2,000만 원 이하의 비교적 적은 금액을 다루는 민사 재판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재판을 많이 도와줍니다. 그곳에서 상담하면 변호사 비용이 비싸지도 않고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재판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줍니다. 대신 그곳에서 도움을 받더라도 민사 재판을 준비하는 일이기에, 증거 자료를 모으거나 상대방의 정보(이름, 전화번호, 주소)를 확인하는 정도는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정보가 있어야 법원에서 그 사람에게 재판을 받으러 나오라고 연락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정보를 모르면 아무래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겠죠.
그리고 형사재판은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도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재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고발'이라고 합니다. 'PD수첩' 같은 TV 고발 프로그램이 남의 일을 조사하고 알리고 가해자를 경찰서에 고발하는 것은 정부에서 허락을 받아서가 아니라 국민이면 누구나 범죄자를 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민사 재판은 자기 이익을 다투는 일이므로,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에 대해 자기가 재판을 대신 신청해줄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