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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쉽고 편한 인터넷 범죄

다툼과 법 6. 합의와 사이버 범죄

by 크느네
인터넷에 악플(나쁜 글)을 썼던 영수는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악플로 고소되었으니 조사받으러 OO 경찰서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수는 연락받은 경찰서에 가서 묻는 대로 대답을 하고 나왔습니다. 영수가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지 않으면, 경찰은 영수를 직접 잡으러 가는데 이것을 ‘지명 수배’라고 합니다. 영수이가 학생이나 직장인이라면, 학교나 직장에서 자신이 경찰에 붙잡혀 가는 모습을 여러 사람이 보게 될 것입니다. 좋지 않은 일로 소문나느니 그냥 경찰 조사받는 것이 낫습니다. 영수는 경찰서에 가서 경찰이 묻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대답을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영수는 벌금 50만 원을 내라는 편지를 법원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영수는 범죄자(전과자)가 되었고 치킨 20마리 값을 벌금으로 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몸이나 행동을 비방하는 인신공격을 하거나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다툼 좀 했다고 범죄자가 된다면, 아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될 것입니다. 사람끼리 말다툼한 것이 사회 질서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기에, 말다툼으로 형사 재판을 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말다툼으로 인해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 수 있겠지만, 기분 나쁜 정도를 돈으로 따져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말다툼은 상대방에게 돈으로 보상을 요구하는 민사 재판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처럼 말다툼이 둘만 서로 싸우는 일이라면, 그것은 사람이 살면서 어쩌다 겪는 경험일 뿐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서로 말다툼을 할 때입니다.

어느 날 학교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였습니다. 한솔이가 영철이가 앞에 있는 무대로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솔이는 요즘 몸무게가 조금 늘어난 영철이를 보며, “돼지처럼 뚱뚱하네”, “도둑질을 했네”, “씨 xx”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서로 다투는 일은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다투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며,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거나, 거짓말로 누명을 쓰거나, 욕을 먹는 일은 피해자의 인생에 큰 피해를 줍니다.


영철이에게 뚱뚱하다고 말한 것은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무슨 말이든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자기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많은 사람 앞에서 상대방의 약점이나 비밀을 말하면서 망신을 주게 되면,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어렵게 되거나 사람이 모여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장애를 얻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거짓말로 누명을 씌우는 일은 더욱 심한 범죄입니다. 한솔이가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도둑은 영철이다”라고 거짓말을 했기에, 거짓말이 빠르게 전파됩니다. 게다가 한번 널리 퍼진 거짓말은 바로잡기가 힘들고 오래 걸립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영철이는 도둑이라는 누명을 오랫동안 쓰고 생활해야 합니다. 놀림당하고 수치스러운 것보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 훨씬 더 괴로운 일입니다. 세상에는 거짓말로 가게나 회사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내서, 가게나 회사를 망하게 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실이나 거짓말로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와 피해를 주는 것을 ‘명예훼손죄’라고 합니다.

비슷하게 많은 사람 앞에서 욕을 하는 일 또한 피해자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이런 것은 ‘모욕죄’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명예훼손죄, 모욕죄는 피해자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 주고, 이런 일이 많아지면 사회 질서에도 큰 문제가 됩니다. 사회 질서와 사람 생명은 한 번 망가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가 매우 어렵기에, 법은 사회 질서와 사람 생명을 해치는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예훼손죄, 모욕죄는 형사 재판이 가능합니다. 고소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터넷 비방이나 악플(인터넷 범죄)로 개인의 사업이나 직장 생활에 피해를 주는 것은 피해자의 재산에도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기에 민사 재판 또한 가능합니다. 피해자가 오랫동안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면 재판을 통해 위자료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https://www.legal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549


그런데 많은 사람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현실에선 그리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모일 장소가 있어야 하고, 특정 시간에 사람이 모여야 하고, 많은 사람 앞에 나설 기회를 받아야 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남에게 수치를 주는 행동을 할 만한 담력 또한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만 가능한,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이하게도 인터넷은 이런 조건을 아주 쉽게 만들어 줍니다. 인터넷의 편리함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것까지 도와줍니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누구나 글을 공짜로 쓸 수 있고, 담력이 없어도 남을 쉽게 모함할 수 있으니까요. 대신 현실보다 더 빠르고 크게 피해가 퍼집니다. 현실보다 범죄를 더 쉽게 저지를 수 있으며, 현실보다 더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 글'로 저지르는 '인터넷 범죄'입니다.

대신 빠르고 넓게 퍼지는 특징이 있어 피해자가 증거를 확보하는 일 또한 쉬우므로, 인터넷 범죄는 재판에 가기 쉬운 범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재판에는 ‘합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애당초 다툼이 재판까지 가게 된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하고 사과하지 않거나 자기 잘못을 바로잡지 않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 결정이 나기 전에, 서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약속한 것을 ‘합의’라고 합니다. 반성하는 모습을 통해 사과하고, 돈을 통해 문제 해결 방법을 찾게 되면 합의가 됩니다. 우리나라는 형사 재판을 할 때,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합의하면 원래 받을 처벌을 상당히 줄여줍니다.

형사 재판을 하는 이유는 가해자가 피해자 개인에게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나랏법을 어겨 국가에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 그보다 훨씬 더 큰 이유가 됩니다. 형사 재판에서 주된 피해자는 국가가 됩니다. 그렇다면 형사 재판에서 가해자는 국가와 합의를 해야 하는데, 현실은 피해자 개인과 합의를 합니다.


우리나라 법원은 범죄는 사회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반대로 사과와 화해는 망가진 사회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으로 봅니다. 다툼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하는 ‘합의’를 법원은 당연한 일이 아닌 상당이 대단한 일로 평가하는 것이죠. 사실 법원에 재판받으러 온 사람 절반은 잘못하고 사과하지 않는 뻔뻔한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트에서 물건 가격 특별히 할인하듯이, 합의하면 정해진 처벌을 상당히 줄여주는 것입니다. 대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는 모습과 정성을 들여 피해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진정한 사과는 말로만 하는 사과가 아닙니다. 진심 어린 반성문과 사과하는 말로 진심을 보여 주어야 하고, 돈을 통해 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런 돈을 ‘합의금’이라고 합니다.

간혹 가해자가 너무 싫어서 피해자 개인이 합의를 해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상대방이 반성문과 돈을 받아주지 않아 합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사과를 해야 합니다. 반성문과 돈을 법원에라도 내면서 정성을 보여야 합니다. 이렇게 법원에 낸 돈을 ‘공탁’이라고 하며, 공탁하면 법원에서 가해자가 사과하려고 노력했다고 봐주기도 합니다.

합의는 형사 재판에서 처벌을 줄여주는 일을 하지만, 민사재판에선 더 큰 일을 합니다. 민사 재판은 개인의 다툼을 다루는 재판이기에, 서로 합의하는 것은 다툼이 해결되었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재판이 바로 끝나게 됩니다.

이런 합의는 우리나라 법원의 특징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합의 제도가 거의 없습니다. 합의가 화해와 피해 보상을 이끌어내는 장점이 있지만, 합의는 처벌을 약하게 만들기에 처벌을 받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할 때, 자기 기분이 불편한 것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자기 행동을 자기가 쉽게 허락해 주고, ‘이렇게 하는 것은 당연해’라고 자연스럽게 남을 비방하게 되면, 비방글이나 악플로 상대방에게 폭력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기분이 그렇게나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자신의 잘못을 자기 멋대로 허락하고 자기 멋대로 용서까지 해버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며 나쁜 짓입니다. 마치 강도가 사람을 때리고 물건을 뺏으면서 피해자에게,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은 작은 싫은 소리라도 들으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힘듭니다. 한 사람에게 꾸준히 비방 받는 것은 그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에게 비방과 욕을 듣는 악플은 그 심한 정도가 얼마나 될까요? 감히 상상하기 힘든 폭력일 것입니다. 폭력은 아무리 자주 접해도 익숙해지긴커녕 점점 더 두려워지는 일이기에, 인터넷 비방과 악플에 오래 당할수록 그 스트레스는 무한히 커집니다. 인터넷 범죄는 사람의 생명을 충분히 위협하고도 남는 일입니다.

가해자에게 인터넷 범죄는 저지르고 경찰 조사 몇 번 받고 벌금 내면 그만인 일이 아닙니다. 정도가 심각하면 굉장히 큰돈을 내야 하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터넷 범죄는 피해자 가해자 둘 다 손해 보는 일이기에 서로 피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하루에 인터넷에서 수많은 인터넷 범죄가 생깁니다. 그런데 명예훼손, 모욕죄에 해당하는 인터넷 범죄는 고소하면 대부분 재판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남을 비방하고 악플을 달았는데도 고소당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상대방이 지금 당장 고소를 하지 않은 것일 뿐이거나 나중에 고소하려고 자료를 모으는 중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중에 큰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면서 후회한들 그때는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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