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다툼 문제 해결
은우와 지수가 다정하게 길을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지수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고등학교 동창, 민규를 발견했습니다. 지수는 저도 모르게 은우의 손을 놓고 서둘러 달려갔습니다.
어머어머, 민규야? 나 지금 꿈인 줄 알았어. 와, 너 왜 이렇게 멀쩡하게 그대로야? 그동안 잘 지냈어?
어? 지수? 와, 이게 몇 년 만이야. 나야 잘 지냈지. 너야말로 더 예뻐졌네.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셔?
아… 어… 그냥, 그냥 아는 사람이야. 그보다 너 요즘 뭐 하고 지내? 여전히 농구 좋아해?
……
난 여전하지. 예전에 너랑 같이 농구부에서 활동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땐 정말 우리 재밌게 지냈었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에이, 또 괜히 그런 말한다. 그래도 듣기 좋네. 히히.
아쉽긴 한데 나 지금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해. 조만간 동창회 한다니까 그때 보자.
응, 연락 오면 꼭 갈게. 그날은 웬만해선 일정 비워놓을 테니까, 조심히 가~
민규가 멀어지자, 지수는 다시 은우에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은우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습니다.
방금 되게 기분 좋아 보이더라. 그 행복한 자리에서 난 겨우 ‘아는 사람’이었어?
아… 미안해. 나도 모르게 말이 그렇게 나왔어.
나 같은 사람이 남자친구라 부끄러워서 그런 거야? 아니면… 아직도 저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거야?
……
아무 말 안 할 거야?
사실 고등학교 때 민규를 좋아했어. 사귄 건 아니고… 갑자기 걔 얼굴을 보니까 그냥 그 기억이 떠오르더라고.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너를 남자친구라고 말을 못 했어.
아, 네가 당황하지 않을 땐 나는 남자친구가 되고, 당황할 땐 아는 사람이 되는 구나. 이건 그냥 적당히 넘길 일이 아니야. 지금은 솔직히 네가 나를 아니 우리 사이를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오늘은 나 그냥 집에 갈게.
이 일은 사랑싸움으로 넘길 만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은우는 지수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둘은 며칠 동안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두 사람은 무거운 공기 속에서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아직도 그 사람 좋아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 사람한테 가도 돼. 대신 우리 사이는 정리하고 가.
아니야. 맹세코 너랑 사귀면서 다른 사람 마음에 둔 적 없어. 그날은 진짜 말이 헛나온 거야. 널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없고, 민규랑 잘해 볼 마음은 더더욱 없어.
그래? 그런데 그때 너는 망설이지도 않고 나를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나도 억울해. 실수로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헤어지자는 말까지 들어야 해? 내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잖아.
네 말을 듣고 있으면 진짜 미안해하는 거 같지가 않네. ‘미안하다’는 말은 쏙 빼놓고 억울하다는 말만 하잖아. 내가 이런 문제까지 다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 울 거야.
네가 운다고 해서 지금 이 일을 적당히 넘어갈 순 없어. 사람은 자기 잘못이 분명해도 사과하기가 쉽지 않다는 건 알아. 그래서 네가 변명하고 이 상황을 피하려는 것도 알겠어
나 울 거라고.
하지만 이 일은 네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나도 넘어갈 수가 없어. 나도 자존심이 있고 상처를 크게 받았으니까. 사과도 제대로 안 했는데 내가 먼저 괜찮다고 용서할 순 없잖아?
사과가 어렵단 말이야… 특히 이번처럼 큰 잘못을 했을 땐, 네가 용서 안 해 줄까 무섭고, 네가 화가 나 있어서 말 꺼내기도 어렵고, 너무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딴 소리만 나와.
사람이 어려운 일은 못할 수도 있어. 근데 사과만큼은 어려워도 네가 직접 해야 해. 이건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나 울거야.
운다는 말만 계속 하지 말아 줄래? 만약에 네 친구 준호가 네 핸드폰을 망가뜨렸다고 해 보자. 준호가 아니라 준호 엄마가 와서 사과하면 그냥 용서해 줄거야?
아니, 그런 상황에서 준호 엄마가 사과하는 건 싫어. 준호가 직접 나한테 사과해야지.
그래. 사과는 부담돼도 잘못한 사람이 직접 해야만 해. 심부름 서비스 보면 이것저것 다 해 주지만, ‘사과해 주기’는 없잖아.
근데… 나, 나름 너에게 사과하긴 했어.
네가 했던 말을 떠올려 봐. “내 말이 헛나왔어”, “나 억울해”, “나 울 거야” 이걸 사과라고 볼 순 없어. 다 네 이야기뿐이라고.
듣고 보니, 진짜 변명처럼 들리네. 그래도 그 안에 사과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걸로 봐주면 안 돼?
네가 사과하는 걸 많이 어렵게 느끼는 거 같네. 사실, 사과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굉장히 복잡한 일은 또 아니야. 일단 딱 한 가지만 기억하면 돼.
뭔데?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면 최소한 중간 이상의 사과는 할 수 있어. 사과할 때 말의 시작을 ‘내가’가 아니라 ‘네가’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거야. 자! 다시 해 봐.
그럼… “네 마음이 많이 아팠겠다”. “네가 받은 상처를 풀 수 있도록, 네가 갖고 싶다던 전기면도기를 사 줄게”. 뭐, 이렇게?
그래, 말의 시작만 바꾸니까 제대로 된 사과가 바로 되잖아. 생각보다 할 만하지? 그리고 사과할 땐 말만 하지 말고, 방금처럼 돈이나 선물을 함께 준비해서 정성을 들여야 해. 너무 가볍게 사과하면 비슷한 실수를 다시 하기도 쉽고, 상대도 진심으로 느끼기 어렵거든.
알겠어…
그리고 말이야. 자기 잘못 때문에 모르는 사람한테 전기면도기를 사 준다고 생각하면 많이 아까울거야. 근데 애인한테 사 주는 건 그렇게 아깝진 않잖아?
아까워…
크흠, 어쨌든 네가 진심으로 사과했으니까 이제는 내 차례겠지. 만약 건성으로 말만 하는 사과였으면 아마 용서하기 쉽지 않았을 거야. 그때 받은 충격이 지금도 남아 있으니까.
만약 용서 받지 못하면 난 어떻게 해야 해?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다시 사과해야지. 한 번 사과했다고 상대가 무조건 받아주는 법이란 없으니까. 그리고 상대가 정식으로 정성을 들여 사과할 때는 웬만하면 용서해 주는 게 좋아. 둘 다 그 괴로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으니까. 자! 우리 둘을 위해 네 잘못을 용서할게.
근데 이거, 연인 사이의 화해라기보다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느낌이야. 왜 이러지? 기분 탓인가?
나 아직 화 다 안 풀렸거든? 그리고 난 B회사 제품 좋아하니까 그건 꼭 잊지 말고.
알겠어…
참고로 말인데, 내 친구 한 명이 ‘민규’라는 사람을 안다고 해서 물어봤거든? 민규, 걔 애인 있다더라.
뭐라고? 그걸 알면서 나한테 “민규한테 가도 돼” 이런 말을 한 거야?
네가 잘생긴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잖아. 네 진짜 마음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그리고 만약에 나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행복해지는 거? 나 절대 못 봐. 나 그렇게 쿨한 사람 아니야, 질척거리는 사람이라고.
하아… 화해했는데 왜 자꾸 화가 나지?
혹시 전기면도기 대신 스마트폰으로 바꿀 수 있을까?
아잇!
두 사람이 괜찮게 화해했지만, 사실 은우는 그날 집에서 많이 울었답니다. 지수도 그날 자신을 바보처럼 여기며 많이 울었습니다.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 사소한 다툼은 적당히 넘어가거나 사랑으로 감싸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잘못으로 인한 다툼은 사과와 용서가 제대로 오가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무하게 그대로 사이가 깨질 수 있습니다.
사과와 용서, 사람 사이에서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입니다. 사소한 실수부터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상대 또한 완벽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고, 용서하는 일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는 큰 다툼으로 헤어질뻔한 상황에서 오히려 두 사람 사이를 전보다 훨씬 가깝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다만, 상대와 다른 사람을 동시에 사귀는 일, 상대에게 큰돈을 잃게 만드는 일, 아주 심한 거짓말이나 폭력 같은 치명적인 잘못은 사과해도 용서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잘못을 용서받았다면 그 기회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과 화해를 주고받으며 위기에 강한 연인이 되었어도, 연인은 이별과 결혼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만약 이별을 선택한다면 무엇을 주고받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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