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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계는 차고 싶지 않아

창업 아이디어는 고객의 입에서 나온다

by 불편함사냥꾼

나는 항상 창업 아이디어에 목말라 있었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한 7가지 방법' 같은 글을 읽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혁신적인 제품을 떠올려 보려고도 했어. '헬스장 안 가도 되는 앱?', '식물한테 말 걸면 반응하는 화분?' 5분간 들떴다가 이내 원상복구.


"왜 나는 아이폰 같은 걸 생각해내지 못하는 걸까?"


그런데 어느 날, 한 시계 이야기가 나의 오랜 자괴감을 없애주었어. 처음엔 그냥 사회적 기업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창업의 핵심 통찰이 담긴 보물이었어. 그 이야기는 이랬어.


"이 시계, 차고 싶지 않아."

이야기의 주인공 김형수는 미국 유학시절 수업 시간 옆자리에 앉은 시각장애인 친구가 자꾸 시간을 물어보자 궁금해졌대.


"야, 너 시계 없어?"


친구가 머뭇거리더니 주머니를 뒤적이며 말했어.


"있긴 한데... 쓰기 싫어서..."


그리고는 음성시계를 꺼내 버튼을 누르자 "삐- 오후 3시 42분입니다" 기계음이 울렸다.


"수업 중에 이거 누르면 모두가 시각장애인이라고 수군댈 것 같아서... 그냥 안 차."


김형수의 뇌 속에서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대. 친구가 필요한 건 단순히 '시간을 아는 도구'가 아니라 '남들에게 티 내지 않고 시간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던 거지! 그래서 열심히 점자시계를 만들어서 시각장애인 단체에 가져갔대. 그런데 이게 웬걸? 첫 질문들이...


"어떻게 생겼어요? 디자인이 어때요? 인스타에 올릴 만큼 예뻐요?"

"무슨 색이에요? 전 블루 계열 좋아하거든요~"

"정장이랑 코디될까요? 회사 다니는데 패션 무너지면 안 되거든요."

“예쁘지 않으면 차라리 안 차는 게 나아요”


... 머~엉...


더 충격적인 건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읽지 못했다는 사실! 특히 나중에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손끝 감각이 안 발달해서 점자를 잘 못 읽는대. (알고 보니 점자 가능한 사람 50% 미만이라나...)


고객의 진짜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일어난 마법

김형수는 그제사 깨달았대. 지금까지 자기가 시각장애인을 '시각장애인'으로만 바라봤던 거지. 근데 그들은 그냥...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었던 거였어. 그들도

멋있게 보이고 싶고

힙한 음악 좋아하고

SNS에 자랑하고 싶고

데이트하고 직장 다니고

무엇보다... 존중받고 싶은!

그들이 원했던 건 '시각장애인용 시계'가 아니라, 그냥 '멋진 시계’였던 거야.


다시 처음부터! 이번엔 진짜 고객 니즈로 승부

김형수는 다시 시작했어. 더 이상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계'가 아니라, '모두가 갖고 싶어 할 시계'를 만들기로. 그리고 미국 패럴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인 브래들리 스나이퍼에게 이 시계의 이름이 되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대.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시력을 잃은 군인이었는데 흔쾌히 승낙했어.


마침내 '브래들리 타임피스' 탄생!


이 시계 작동법이 진짜 천재적인데, 시계판 위에 작은 금속 볼이 자석으로 붙어있어. 시간 알고 싶을 때? 그냥 손가락으로 볼 위치만 살짝 만져보면 됨. 시침은 여기, 분침은 여기... 이렇게! 소리 없이,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멋져. 디자인이!!!


비결은? 고객을 통째로 이해하기

김형수의 비결이 뭐였냐고? 대단한 기술? NO! 혁신적인 아이디어? NO! 그냥... 고객에게 다가가 진짜로 물어보고 ‘정말로’ 들은 것뿐이야. 그는 자기 멋대로 정한 가정(시각장애인=기능만 있으면 됨)을 던져버리고, 고객의 진짜 니즈(나도 멋있는 거 갖고 싶어!)를 이해했어.


이 이야기는 내 일상을 바꿔놓았어. 창업 아이디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내 문제의 본질은? 책상 앞에만 앉아있었다는 거였어! 내가 정말 부족했던 건 '책상을 박차고 나가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이었어. 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관찰하는 '고객 덕후'가 되기로 결심!


1. 먼저 관찰:

친구가 배달앱 보면서 "아 진짜 짜증 나!" 할 때? 메모!

버스에서 할머니가 "어디서 내려야 하지..." 중얼거릴 때? 메모!

애기 엄마가 유모차 접다가 손가락 꼬집혀서 "악!" 할 때? 메모!

2. 그다음 대화:

"야, 아까 배달앱 보면서 뭐가 그렇게 짜증 났어?"

"할머니, 혹시 버스 타실 때 어떤 점이 가장 불편하세요?"

"유모차 접을 때 자주 손가락 다치세요? 어떤 부분이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처음엔 좀 의아해하지만, 곧 자기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해. 우리 모두는 자기 짜증에 대해 떠들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나 봐? (TMI 폭발주의 ㅋㅋ) 스마트폰에 '문제 캐치' 폴더 만들어서 관찰+인터뷰 내용을 수집하기 시작했지. 처음엔 하루 한 개? 이제는 하루 다섯 개!


일상 속 짜증이 창업 아이템으로!

놀라운 건? 이렇게 모인 문제들 중에는 정말 해결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 꽤 있다는 점!

예를 들어:

친구가 "애 데리고 주말마다 어디 가지?" 고민하는 거 보고? → "아이 놀이 큐레이션 앱" 아이디어!

룸메가 식물 키우다 다 죽여서 슬퍼할 때? → "식물 키우기 초보자용 알림 서비스" 아이디어!


이제 나는 창업 아이디어를 완전 다르게 접근해. 더 이상 빈 종이 앞에서 "대박 아이디어 제발..." 기도하지 않아. 대신 사람들 관찰하고 물어보는 데 집중하지.


사람들이 말하는 것 VS 진짜 원하는 것 (완전 다름!)

헨리 포드가 그랬잖아. "사람들한테 뭘 원하냐고 물었더라면 '더 빠른 말'이라고 했을 거라고." 시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였어. 표면적으로는 "시간 알고 싶어요"라고 했지만, 진짜 원한 건 "멋진 시계 차고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요"였던 거지. 그래서 내 질문은: "어떤 제품을 만들까?"가 아니라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뭘까?" 그들의 숨겨진 감정과 욕구를 찾는 것으로 바뀌었어.


이 답을 찾는 방법? 투 스텝이야:

(1) 관찰하기: 사람들의 행동, 표정, 말투 다 주목! (2) 대화하기: 그냥 "불편하세요?"가 아니라 "어떤 점이 왜 불편한지" 파고들기!

여기서 인터뷰 꿀팁 몇 개:

"왜요?"를 5번 연속으로 물어봐. 첫 번째 대답은 거의 항상 표면적인 거야.

"그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래요?" 이 질문이 마법이야. 맥락이 이해되면 문제가 선명해줘.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감정을 물어보면 진짜 문제가 툭 튀어나오기도 해.


오늘의 미션

주변 사람들 짜증 내는 거 3개만 메모해 봐.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감정과 욕구를 잠깐 생각해 봐

그중 한 명한테 "그거 왜 그렇게 불편해요?" 물어봐. 그리고 대답 듣고 또 "왜 그런 건데요?" 물어봐. 최소 3번은 "왜요?"를 반복해 봐. (초간단 고객 인터뷰)

그 대화에서 발견한 '진짜 문제'가 뭔지 생각해 봐. 완벽한 해결책은 생각 안 해도 됨! (어차피 잠잘 때 너의 무의식이 해결해 줄 거임 ㅋ)


대박 아이디어는 뭔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떠오르는 거 아니야. 그냥 관찰력 좋고 대화 잘하는 사람한테 떠오르는 거지.


PS.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킥스타터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시각장애인용 시계라는 틀을 완전 깨버렸대.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도 너도나도 사고 싶어 해서 결국 '모두를 위한 시계'가 되었다는 거! 멋지지 않니? (나도 하나 갖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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