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1년 전에 뜯은 라면 봉지의 행방을 아는 이가 있을까.
분리수거 통으로 쏟아낸 이후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
그저 차곡차곡 모아서 내놓기만 하면 사라지는 이 신비한 도시의 재활용 시스템은 마치 마법 같다.
도저히 깨어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시스템 덕분에,
아무리 많은 빨대와 일회용 컵, 생수병을 쓰고 버리더라도 재활용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 아름답고 쾌적한 생활에 둘러싸여 우리는 고민할 기회를 잃어왔다.
재활용 만능주의
혹자는 우리나라의 재활용률이 OECD 국가 중 2위라서 더 노력할 게 없다며 자랑스러워한다. 분명 분리수거에 대한 높은 관심과 참여도는 자랑스러울만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감이 너무 과해서인지 아니면 배달문화가 발달해서인지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까지도 1~2위를 다퉈버린다.
최근 붉어지는 쓰레기 문제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들이 쏟아내는 쓰레기들과
그를 소비자들이 낮은 거부감으로 수용하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재활용 만능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다.
재활용 시스템의 균열
지난해 4월, 절대 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시스템에 균열이 일었다.
시작은 중국의 폐비닐·플라스틱 수입 거부였다. 국내 재활용 업체들도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의 가격이 폭락해 선별 인력의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되자 수거를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재활용함에 방치된 수익성 낮은 쓰레기들로 '쓰레기 대란'이 야기되었다.
지자체에서 보조하여(세금으로 돌려막기) 수거가 재개되긴 했지만,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문제로 남았고, 오갈 데가 없어진 폐기물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내 어딘가에 그대로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마법인 줄 알았던 이 시스템이 실은 마술이었고,
쓰레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 어딘가로 떠넘겨지는 것, 그뿐이었다.
쓰레기들의 종착지
경북 의성의 쓰레기산이 생겨난 시점이 2년 전, 중국의 쓰레기 수입 거부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중국의 수입 거부로 처치 곤란이 된 폐비닐과 폐플라스틱들이 싼 값에 처리해주겠다는 브로커들을 거쳐 저곳으로 모여들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오갈 데가 없어진 쓰레기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떠넘겨지고 어디엔가 쌓일 뿐이다.
해외 언론으로부터 사태의 심각성이 알려지자 정부는 이 17만 3천여 톤의 의성 쓰레기산을 올해까지 치우겠다고 나섰다. 예산은 300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는데 물론 큰돈을 들인다고 해서 마법처럼 사라지진 않는다. 연료로 쓸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해 소각시키고 나머지는 매립시킨다.
전국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120만 톤의 쓰레기산들 역시 쉽게 보이지 않도록 집 근처의 공기 중 내지는 땅 속으로 치워질 예정이다. 우리가 시스템에 떠넘겨 온 쓰레기들은 그동안은 다른 나라로 떠넘겨지다가 그게 잘 안되니까 이제 우리에게 다시 떠넘겨질 예정인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누구 하나만의 잘못이 아니다.
쓰레기를 생산해내는 기업들만 탓하기엔 소비자들이 쓰레기를 원하기에 그랬다며 억울할 수 있다.
아무리 기업이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도 사주는 소비자들만 탓하기에도 나름 분리수거를 신경 쓰기에 억울할 수 있다.
엄격한 폐기물 규제를 만들지 않았냐고 정부를 탓하기 조차 오로지 성장 만을 원하던 기업과 국민의 눈치를 본 것이라며 억울할 수 있다.
지금의 재활용 시스템은 결코 만능이 될 수 없음이 쓰레기산을 통해 드러났다.
최소한 한국에서 쓰레기산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고 본다.
이제 파티를 끝내고, 참담한 패배를 마주한 채 각자 해결을 위한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의 예 - 텀블러 쓰기, 일회용 빨대 안 쓰기, 포장재가 적은 상품 구매, 포장재 없이 사기, 기업에게 변화 요구, 분리수거 더 정확하게 하기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