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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길 Jan 10. 2022

[돈룩업] 웃다가 느끼는 기시감

근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스포가 있습니다.


일단 영화가 너무 훌륭하다.

엄청 웃기다. 인터넷상의 비유처럼 장편 SNL을 본 기분이 들 정도로 웃기다. 

미국 영화의 유머를 보면서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건지는 처음 알았다. 정말 터지는 포인트들이 꽤 자주 있다. 


그러면서도 정치계, 미디어, 기업, 대중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제대로 풍자해냈다. 

내용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마지막 토크쇼 장면에서 민디 박사의 분노와 '대체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라는 대사는 그냥 감독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내다 꽂는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룩업 콘서트에 나온 노래 가사조차 상징이라곤 없고 마냥 직설적이라 웃음이 난다. 

후반부 BEAD 발사 직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연설에서도 물질적인 것에 기도하자는 장면 역시, 풍자치고는 대단히 직설적인 수준이다. 그래서 은유의 미학이 없다는 혹평이 많기도 하지만 감독은 쉽게 만들려고 작정했는지, 여러 번 꼬지 않았다.

지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만한 쉬운 풍자로 가득했다. 


하지만, 실컷 웃고 난 뒤, 남는 씁쓸한 끝 맛은 여느 때보다 강렬했다. 

영화 속의 파멸을 향한 한 걸음 한걸음이 그리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첫 번째 기시감, 미디어.

종말을 앞둔 상황을 지켜만 보는 정부와 언론에 분노하는 두 사람.

이후, 각종 밈으로 가공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까지도 동일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나 과학적 근거보다 꼬투리 하나 잡아 조롱하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두 번째 기시감, 위기를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는 정치인과 그를 따르는 대중들.

미래의 위험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두 사람.

트럼프는 '환경문제는 허구다'라는 모토로 환경훼손의 의미를 담은 플라스틱 빨대를 한 주라는 짧은 시간에 5억 원어치나 팔아치웠다. 비단 트럼프만 겹쳐 보이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대선 메시지로 적극 활용한 바이든 행정부 역시, 영화 속 초반부의 '기다리면서 상황을 보자'는 수준이다.  


세 번째 기시감, But it's all math.  

좌:눈으로 볼수 있게 된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   우: 지구 기온변화(1850-2020)

기후 변화가 인간 활동에 인한 것이라고 보는 과학자가 99.9%에 달했다는 최근의 연구가 있다. 

인류에게는 다행히 수학과 과학이 있어서 다가오는 혜성을 미리 관측할 수 있고 기후 데이터를 통해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과학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분명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네 번째 기시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민디 박사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2016년 오스카 수상소감

디카프리오는 세계적인 배우인 동시에 2007년 환경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으로 진한 활동을 이어 온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2016년 한 영화제 수상식에서 수상한 디카프리오는 수상 소감으로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Climate change is real, it is happening right now. It is the most urgent threat facing our entire species, and we need to work collectively together and stop procrastinating.

멋진 소감이었지만, 셀럽들의 열애설 등 다른 가십거리에 묻혀 금방 잊힌 이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사람들은 불편한 이야기를 굳이 듣고 싶어하진 않으니까.


다섯 번째 기시감, 반지성주의.

요즘의 반지성주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과학적 사실조차 거부하는 특성 때문에 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스스로를 객관화 하는데에 훨씬 도움이 되지 싶다. 미국이란 초강대국의 대통령조차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고 반지성주의를 퍼뜨려 인기몰이를 했던 게 얼마 전이라 돈룩업의 다소 과장된 캐릭터들도 마치 살아있는 듯한 설득력을 가진다. 실제로 얼마든지 일어나고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라니..

과학자의 말을 듣기보다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는데만 바쁜 정치인과 기업, 미디어. 

과학보다 정치인을 믿고 연예인 사생활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

돈룩업의 세계와 이곳의 다른 점을 어떻게든 찾고 싶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과연 현실에서는 영화와 다른 결말을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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