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하는 이유, 김치찜

by 김범인

요리를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시기가 있었다. 냄비와 그릇, 조미료, 향신료들이 채워진 B와 나의 주방이 생겼던 우리의 처음. 외식이 대부분이던 혼자 살던 시간을 지나 결혼을 하고 나니 소박하더라도 우리 집 식탁에서 함께 편안한 식사를 하고 싶었다. 우리만의 공간에서 단둘이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는 시간. 어쩌면 이 사람과 공간과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어서 한 것이 결혼이니까. 이 시간을 위해 요리한 음식은 나의 사랑이고 우정이고 배려라고 생각했다. 식탁에서의 우리는 긴장이 풀리고 표정도 자연스러우며 대화는 즐거웠다. 나는 이 시간을 위해 요리가 하고 싶었다


요리가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하기 전 요리를 거의 해보지 않았던 나는 메뉴 선정부터 고민스러웠다. 우리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오랜 연애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식당을 다녔는데도 특별히 고집하는 음식취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맛집이라고 하면 궁금해서 갔고, 가까운 식당이면 가까워서 갔고, 시간이 없으면 패스트푸드를 먹으러 갔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흔한 단골집 조차 한 군데도 없었다.

한동안 나는 요리에 대해 도전정신으로 임했다.

다져넣는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요리가 되는 듯한 계란말이는 우리의 식탁에 한동안 올라왔던 요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랑하는 매운맛,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청양고추 계란말이에 도전했다. 생각 없이 맨손으로 다섯 개쯤 다진 청양고추 때문에 손이 퉁퉁 부은 이후로 계란말이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 몽골 여행 중 한인식당에서 참치 통조림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야심 차게 끓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치 기름을 빼지 않고 넣었더니 느끼하고 비릿한 맛에 몇 술 뜨지도 못하고 버리기도 했다. 시금치는 데치는 시간이 감이 안 와서 푹 삶아져서 뭉개져버렸고 그 이후로 한동안 나물 요리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솜씨도 없으면서 집에서 치킨을 튀긴다며 온 주방을 기름범벅으로 만들고 코끝에 맴도는 기름 냄새가 지워지지 않아서 고생하기도 했다. 이런 시행착오들을 겪다 보니 성취감 없는 요리에 대해 거부감이 생길 지경이었다. 완성된 음식들은 무언가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우리의 식탁은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TV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김치찜'이라는 메뉴가 나왔다. 먹어보지 않은 요리라서 생소했다. 김치를 찌다니 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맛은 알 것 같은데 김치의 질감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 김치찌개나 짜글이만 먹어본 나는 '찜'이라는 조리법에 채소로 만든 김치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신기했다. 식감에 대한 나의 의심에도 TV에 등장한 인물들이 김치찜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내 입에 침이 고이고 말았다. 평범한 김치가 테이블을 압도하는 근사한 요리가 되다니! 우리의 밥상에 올라가는 김치는 볶고, 끓이고, 찌고... 어떻게 해도 다 먹음직스럽구나.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불연듯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 어느 음식을 먹더라도 늘 김치가 테이블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B는 어떤 메뉴에도 김치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거다!!! 김치와 고기의 조합이라니 실패할 수가 없는 메뉴다. 김치찜을 끓여보기로 했다. 나는 초보 요리사의 실험정신으로 여러 가지 버전으로 김치찜을 끓여봤다. 고기는 삼겹살, 목살, 등갈비, 돼지갈비, 앞다리살을 사용해 보았다. 사실은 모두 맛있었지만, 삼겹살의 비계는 먹고 싶지 않았고 뼈가 있는 고기는 혹시 바로 요리하지 못할 경우 보관이 용이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살코기가 많은 앞다리살이 맛과 비용, 뒤처리(뼈가 없다는 점에서) 면에서 가장 효율적이었다. 육수도 여러 가지로 내보았다. 멸치, 다시마를 기본으로 양파, 파, 마늘 등 향신료들을 넣고 푹 끓여놓는다. 가끔은 건새우도 넣어보고 냉장고에 있던 여러 채소들도 넣어본다. 김치를 넣는 순서도 달리 해본다. 처음부터 고기와 같이 넣기도, 고기가 익은 후 넣기도, 고기와 따로 익히다가 마지막에 합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도전들을 해보고 나는 드디어 나만의 레시피를 찾아냈다.

앞다리살 덩어리에 칼집을 중간중간 내준다. 고기와 마늘, 후추, 된장, 간장, 설탕, 약간의 향신료, 고기의 잡내를 잡아 줄 약간의 술과 함께 무쇠솥에 끓여준다. 어느 정도 고기가 익었을 무렵 육수와 함께 김치 2분의 1포기를 넣고 푹 끓여준다. 30~40분쯤 약불로 무쇠솥 안의 김치찜을 익히고 나면 들기름을 아낌없이 휘휘 둘러준다. 그리고 송송 썬 파를 넣고 살짝만 더 익혀주면 완성.

사실 김치찜은 어떻게 요리해도 다 맛있었다. 고기의 부위가 어디든, 육수를 어떻게 내든(아니 육수 대신 물만 사용해도), 김치를 넣는 순서를 어떻게 하든 오랜 시간 끓이기만 하면 언제나 맛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고민과 애정이 첨가된다면 우리의 식사시간도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요리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김치찜은 뜨거운 무쇠솥째로 식탁에 올리는 게 더 좋다. 솥 안의 김치와 고기를 잘라서 흰 쌀 밥 위에 올려 먹는다. 김치를 길게 쭉 찢어서 고기를 올려 밥을 싸 먹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밥그릇에 김치와 고기를 올려 준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김치찜을 한 것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구나. 함께 밥을 먹는 이 순간, 김치와 고기를 잘라서 서로의 밥그릇에 올려주는 순간.

너무 먹는 것에만 집중했나 싶어서 머쓱해지면 한마디 툭 던진다

-맛있네.

이 말 한마디면 된다. 우리의 공간과 시간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편안함과 따뜻함이 가득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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