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카레, 3분 짜장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서 일까. ‘3분’이라는 시간의 단위가 주는 신속함과 편리함에 가려 음식의 본질을 잊었던 것 같다. 한 그릇 음식은 빠르게 만들어 가볍게 먹는 음식이란 편견이 있었다. 한식에 익숙한 나는 각각의 재료와 조리법으로 한 접시, 한 접시 소담스럽게 담긴 밥상이야말로 정성이 가득하고 잘 차려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토마토 카레를 알고나서부터 이런 나의 편견이 깨졌다. 카레는 전광석화와도 같이 빨리 차려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각각의 재료를 잘 손질해야 하고 오랜 시간 끓여내야 드디어 모든 재료가 어우러진 농후한 느낌의 카레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카레가 접시에 담겨 내 앞에 놓이는 순간 그 복잡 미묘한 색감에 감탄하고 한 그릇 안에 담긴 여러 가지 맛의 세계에 빠져든다.
토마토 카레는 재료의 손질에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잘 익은 토마토는 데쳐서 껍질을 벗기고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놓고, 양파는 채치거나 다져 놓는다. 소고기는 버터에 살짝 구워놓고 카레에 넣을 다른 채소들은 깍둑썰기 하거나 작게 잘라놓는다. 나는 감자, 당근, 버섯, 브로콜리를 넣고 다른 채소가 있을 경우 첨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재료를 준비했으면 카레를 끓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시간뿐. 무쇠솥에 손질해둔 토마토와 양파를 먼저 넣는다. 맨 아래에 놓인 토마토와 양파는 오래 끓이면 형체가 사라지고 수분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 위에 당근과 감자, 버섯을 넣고, 그 위에는 구워둔 소고기를 잘라서 올린다. 그리고 카레를 넣고 30~40분 끓인다. 브로콜리는 아삭함을 위해 나중에 첨가하여 10분 정도 함께 익혀준다.
친구를 초대했을 때 종종 토마토 카레를 한다. 각자의 앞에 토마토 카레가 담긴 접시가 있고 식탁의 중앙에는 피클이나 김치가 담긴 소박한 접시만 놓여있다. 식탁 위에 여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은 토마토 카레의 색과 개성 있는 여러 재료들의 어우러짐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카레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K에게 나는 적극적이고 모험심 많은 사람이다. R에게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B에게 나는 낙천적이고 진지함이 부족한 사람이고 J에게 나는 배려심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이 모두를 포함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생각했던 모습과 다른 나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내가 토마토 카레를 좋아하는 이유는 들어간 재료들의 개성 때문이다. 토마토의 새콤달콤함, 양파의 달콤함, 소고기의 풍미와 부드러운 식감, 버섯의 독특한 향과 수분을 머금은 미끈하고 촉촉한 식감, 익힌 당근의 달콤한 맛, 입안에서 뭉그러지는 감자에서 느껴지는 카레의 진한 맛, 살짝 익힌 브로콜리의 아삭한 식감. 분명 매콤하고 알싸한 맛과 향이 강한 향신료를 만나 자신들의 개성을 잃어버릴 듯한데 오히려 카레 안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공고히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카레라는 향신료와 만난 재료들은 누구 하나 튀지 않고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나에 대해 생각한다. 카레 안에서 형체가 사라진 토마토와 양파처럼 친구 앞에서 나의 존재가 녹아들길 바란다. 하지만 토마토와 양파가 새콤하고 달콤한 맛을 잃지 않듯이 나 자신이 돋보이길 원하기도 한다. 고기와도 같이 무게감 있고 진지한 면을 갖고 있기도 하고 미끈한 버섯처럼 속을 보이지 않고 소심해지기도 한다. 익힌 당근의 무른 식감처럼 우유부단함도 갖고 있고 브로콜리의 아삭함처럼 적극적인 성격도 갖고 있다. 그리고 카레의 강렬한 향과 맛처럼 냉정한 면도 있지만 감자의 뭉그러지는 부드러움과 같은 포용력도 갖고 있다. 이런 모든 모습이 다 나다. 어느 한 특성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나의 조각조각의 모습들은 어쩌면 카레와도 닮았다.
카레는 오랜 시간 끓여내야 맛이 있다. 수분 없이 끓인 토마토 카레에서 토마토와 양파는 카레와 만나 농후한 맛과 향, 질감을 만들어낸다. 카레 안의 여러 채소와 고기는 뜨거운 온도에서 서로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자신만의 풍미를 더욱 깊어지게도 한다. 토마토 카레를 입안에 넣으면 카레 특유의 매콤하고 되직한 맛과 함께 새콤달콤한 맛과 향에 취한다. 그리고 고기와 채소들이 씹히는 순간 그 재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맛에 다시 한번 취하게 된다.
나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원하지 않지만 나를 이해해줄 몇 명의 친구만 있으면 된다. 그런 친구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다. 그 시간을 함께 하며 나의 여러 모습을 모두 보여주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좋고 나쁜 면이나 대견하거나 부끄러운 면을 한두 번의 만남으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그들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감정의 공유를 하고 싶다.
여러 접시에 담긴 음식보다 한 그릇에 모든 특성을 담은 카레가 그 시간에 딱 어울리는 요리이다. 나는 토마토 카레를 정성껏 만든다. 친구와 함께 토마토 카레를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