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했다 네 마음, 빵다발

by 김범인

조금 전 너랑 통화를 급히 끊은 게 아쉬워서 편지를 쓴다. 아이 셋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직접 교육하는 너. 전화하면 항상 분주한 상태인 너를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걸 행복해하는 널 항상 응원하고 있어. 그리고 그런 모습, 참 너다워.

어제 너의 생일이었는데 전화하는 것을 깜빡 잊어서 미안했어. 바쁜 일상에 통화를 미루다가 하루가 지나버렸네. 네 생일은 20여 년 동안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오래전이지만 너에게 그런 달달한 선물을 받았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일 년에 두 번은 꼭 그 선물을 생각한다. 너의 생일, 그리고 내 생일.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의 첫 짝꿍이었던 너. 이름순으로 번호가 정해져서 이름 세 글자 중 마지막 한 글자만 다른 너는 11번 나는 12번이었지. 낯가림을 하는 나와 달리 너는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하는 인기 많은 친구였어. 모범생이면서 오락 담당인 넌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많이 마음을 나누어줬다고 생각해. 비슷한 이름, 비슷한 체격,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우리는 똑같은 붉은색 교복을 입고 있으니 자매 같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던 거 기억나? 하하핫. 왠지 제일 가까운 친구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아서 참 기분이 좋았어. 고등학생 시절엔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었거든.


우리에게 쉬는 시간 10분이란, 50분의 수업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에너지가 비로소 폭발하는 시간이었지. 우리는 매점으로 달렸어! 그냥 매점에 달려가는 것이 재미있었잖아.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뒷문을 통해 나가면 붉은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한 방향으로 뛰는 거야. 우당탕탕 쿵쿵쿵. 우리는 가끔은 한없이 달고 부드러운, 가끔은 목이 메도록 뻑뻑한 빵을 나눠 먹으며 즐거웠었잖아. 탄수화물과 당의 충전은 그 당시 우리에게 수혈과도 같았지.

빵이란 말 자체도 귀엽지 않니. 한 음절의 단어인데도 그것을 말하는 순간 나의 주변이 가득 찬 느낌, 마치 황금물결의 밀밭에 서 있는 듯한 풍요로운 기분이야. 우리가 쉬는 시간에 함께 빵을 나눠 먹으며 느꼈던 기분이지. 입을 빵빵하게 채워서 그 달고 부드러운 빵의 속살을 우물우물 씹으면 모든 고민과 짜증은 '빵' 터져버릴 것 같고 보기 싫은 사람을 '빵' 차 버리 것 같았어. 그때 우린 고민도 많고 생각이 끊이지 않는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이었으니까. 빵을 입 안에 넣고 씹는 동시에 우리의 모든 고민과 스트레스의 입자도 셀 수없이 작은 단위로 나뉘고 나뉘어 무의 상태가 되는 그 순간을 즐겼잖아.

2학년이 되고 나는 문과로 너는 이과로 진학하며 다른 반이 되어서 참 서운했어. 길고 긴 복도의 양 끝으로 헤어진 우리는 자주 만나기 어려웠고 그 당시에는 추억의 '삐삐'로 연락을 하며 지냈지. 그것도 참 애틋한 추억이다. 아, 감성이 넘치는 사춘기!

그리고 내 생일이 되었을 때 너는 두 손이 가득차도록 큰 선물상자를 들고 우리 반으로 왔지. 상자의 형태와 느낌 때문에 아마 꽃다발을 넣는 상자일거라고 짐작했던 나는 '먹지도 못하는 꽃을?'이라고 생각했어. 오해하지 마. 꽃을 사랑하지만 그때는 내가 가로로, 세로로 한참 성장하던 시기였잖아. 그런데 상자의 윗면, 투명 창문 모양의 내부를 들여다 보고 너에게 사랑스러운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지. 역시 넌 내 친구가 맞구나.

상자 안에 가득 차 있는 빵들.

초코빵, 패스츄리, 단팥빵, 소보루빵, 크림빵...

꽃다발보다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날 생각하는 너의 마음이 느껴지는 빵다발. 내가 받은 어떤 생일 선물보다도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했어. 물론 나의 입과 나의 몸 구석구석 채워주는 만족감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빵을 내게 다발로 선물해 준 너는 정말 진정한 친구야.

그런데 간직할 수 있는 선물이 아니라 참 아쉬웠어. 아침부터 야자시간까지 하나씩 하나씩 꺼내 먹다 보니 빈 상자만 남더라. 그 날 저녁이 되자 이미 남은 빵은 없었지만 내 기억 속 그 빵다발과 그걸 전해주던 너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건 누구에게 받은 사랑고백보다 달콤했어.

오늘은 너에게 케이크를 보낸다. 오늘 내가 보내는 케이크를 아이들과 나눠먹으며 그날의 내 기분을 느껴줘. 오늘 소모한 너의 에너지를 이 달콤함이 채워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 조만간 빵 한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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