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정은 이것으로, 전자레인지 군고구마

by 김범인

딸내미가 얼마 전부터 고구마를 먹고 싶다고 한다. 엉덩이 탐정 책에 한참 빠져서 엉덩이 탐정의 최애 음식인 고구마 파이를 만들어달라고 하고 고구마 카레도 만들어 달라고 한다. 아직 제과제빵 기술을 연마하지 못한 나는 고구마 파이는 사주겠다고 하고 고구마 카레는 해주기로 했다. 카레 정도야 뭐, 감자 대신 고구마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엉덩이 탐정에 나오는 카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하므로 나는 고기를 볶고 고구마를 포함한 채소들을 깍둑썰기 하여 볶아내고 끓여내어 카레를 식탁에 올린다. 카레를 먹어본 딸은 엄지척을 해준다. 엉덩이 탐정에 나온 황금고구마는 아니지만 달콤해서 너무 좋다고 한다. 나에게 살을 부비고 웃어주는 딸을 보며 괜히 흐뭇해진 나는 ‘엄마는 감자랑 고구마 중에 고르라면 당연히 고구마야~’ ‘고구마가 감자보다 살 안 찐대’ ‘난 찐 고구마보다 군고구마가 좋더라’ 이런 시덥잖은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엄마의 엄마도 고구마 구워줬었는데... 우리 내일은 군고구마 간식으로 먹자'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엄마랑 별로 친하지 않았다. 딸 많은 집의 장녀인 나는 늘 아들 노릇을 강요받았고 그래서인지 엄마와 소소한 정을 많이 나누지 못했다. 나를 향한 기대에 대한 반발심으로 난 점점 더 무뚝뚝해졌고, 내가 집에서 독립하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엄마와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엄마가 투병생활을 하실 때 고향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 잠시 서울 병원으로 옮기셨었다. 병원이 그 당시 내가 살던 곳이랑 가까워서 회사가 끝나고 엄마를 만나러 자주 갔었다. 그러나 갈 때마다 회사 일로 피곤한 나는 얼굴만 보고 곧 돌아오곤 했다. 늘 아쉬운 엄마의 얼굴을 마주했지만 사실 엄마랑 말없이 어두운 병원 복도를 걷는 것도, 병실에서 멀뚱히 있는 것도 내겐 피곤했었어서 "또 올게"라는 말을 던지고 돌아서곤 했다. 어느 날 엄마는 병원 앞의 시장에서 고구마를 사 왔다며 꺼내놓았다. 나는 저 생고구마를 어떻게 먹을 것인지 의아했다. 왜 이런 걸 사 왔냐며 물으니 엄마는 잠시 기다리라고만 한다. 그리고 어디서 난 건지 신문지를 꺼내서는 고구마를 둘둘 말아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시작 버튼.

-엄마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전자레인지 괜찮아?

-괜찮아, 나 자주 이렇게 먹어.

-이러다 신문지 타거나 고구마 터지면 어떡해. 나 안 먹어도 돼. 하지 마~

늦은 밤에 고구마를 먹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고구마를 익히는 과정이 너무 마음 불편했다. 그러나 엄마의 행동은 아주 익숙하다. 마침내 다 익은 고구마를 들고 나와 어두침침한 병원 복도의 대기의자 세 칸을 차지하고는 가운데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구마를 먹자 했던 엄마는 그저 껍질을 벗겨 내게 내어줄 뿐이었다. 왜 안 드시냐는 말에 자기는 밤에 많이 먹으면 안 된다며 내 손에만 쥐어주신다.

그때 그 고구마는 엄청나게 달고 맛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전자레인지에 들어갔던 고구마가 이런 맛을 냈다는 데에 놀랐던 것이 잊히지 않는다. 먹고 싶지 않다고 했던 나는 엄마가 건네 준 고구마를 다 먹었고 그 달고 퍽퍽했던 맛에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옆에 있다는 것이 든든한 건지 고구마를 먹어서 든든한 건지 아리송했다. 왜 엄마가 싫다던 내게 꼭 고구마를 주려고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나와 이런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겠지. 내게 고구마를 주려고 병원복에 카디건만을 걸치고 시장에 나가셨을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마음이 찡하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늦은 저녁에야 빈손으로 터덜터덜 병원을 들르기만 했던 나의 무심함에 미안했다. 고구마 하나에도 나는 이렇게 마음이 녹는데 엄마는 나의 지친 얼굴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날은 왠지 엄마 옆에서 자고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오늘은 자고 갈게.

엄마의 미소.

엄마는 굳이 보조침대에 누우려는 나를 불편하다며 본인의 침대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엄마의 침대에 누웠다. 물론 서로의 발을 보며 자는 형세. 아무리 고구마 매직이 있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마주하며 자기엔 엄마랑 아직 서먹하다. 그리고 나는 곧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마 코도 골았을 것이다. 병원에서 그렇게 편하게 자 본적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을 것이다. 새벽에 엄마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온 간호사가 '뭐지'하는 눈빛으로 어이없어하던 표정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음의 전달이라는 것이 큰 무언가를 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날 밤 새삼 느꼈다. 내 몸을 채워주는 고구마의 듬직함과 동시에, 내게 그것을 전해주는 엄마라는 존재의 안락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고구마의 달콤함과 퍽퍽함에 엄마의 마음을 전달받았듯이 가끔은 아무 기교도 부리지 않은 음식으로도 마음이 채워진다.

그 날이 생각난 나는 고구마를 들이밀며 자꾸 딸에게 질척대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용기 내어 고구마 매직 다음의 마법 같은 일을 만들지 못했던 무뚝뚝한 딸이었고 그것을 내내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딸에게는 마음을 아끼지 않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마음을 전달받은 딸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에게 안기고 매달리고 하루 종일 쫑알쫑알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딸을 내 품에 폭 안아줄 것이고 매달리면 그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해 줄 것이고 딸의 이야기에는 나의 인생 이야기를 보태어 대답해줄 것이다. 고구마를 먹으며 엄마를 기억하는 나는, 그때는 엄마와 함께여서 좋고 지금은 딸과 함께여서 좋다. 나의 엄마가 그날 전해준 그 마음을 나는 내 딸에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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