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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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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Nov 27. 2023

2024년 10월

어쩐지 이상했다. 내가 원래 촉이 좋은 사람은 아닌데 이번은 참 이상하게 뭔가 탁탁 맞아 들어가는 게 예감이 안 좋았다. 그래도 나는 세상이 나를 향해 팔 벌려 환영하는 그 시간을 즐겼다. 이후에 나쁜 일들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때 생각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면접 보러 가는 날 생리가 넘치게 흐르는 꿈을 꾸고 일어났다. 개운하지 않은 기분으로 집을 나서며 면접이 끝나면 꿈해몽을 찾아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면접은 정말 이상하게도 어려움 하나 없이 끝났다. 이미 그곳에서는 서류심사에서 나를 뽑기로 결정한 것 같았고 면접은 이 회사가 얼마나 탄탄한 곳인지, 어떤 복지들이 제공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나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고 나도 날 그렇게 봐주는 것이 기분 좋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며 아침부터 내내 마음이 찜찜했던 꿈해몽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이 꿈은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거나 직장을 옮길 꿈이라고 한다. 이렇게 딱딱 잘 맞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곳이고 또 충분히 안정적일 수 있는 곳이라 웬만하면 느낌이 좋은 이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에 면접을 더 보면서 몇 군데에서 와달라는 부탁을 듣기도 했는데 그 중 어떤 곳은 처음 제시한 것보다 월급을 올려준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면접 본 그곳의 분위기나 안정감을 믿고 모두 거절했다. 그곳 직원들의 표정과 말투가 편안해 보였었는데 이것이 그곳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였다. 쉬다가 다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해서 열정적으로 일하기보다는 물 흐르듯이 꾸준하고 잔잔하게 적응하고 싶었다.


그런데 결정하고 나서도 여전히 예감이 안 좋았다. 다시 사회로 나가는 것이 겁이 났던 내게 너무나 쉽게 세상이 문을 열어주었고 환호를 해준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거센 폭풍우나 장애물을 만날 거라고 예상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말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굳이 일을 한다는 것을 알리지도 않았다. 자리가 잡히고 내가 자신 있고 꼿꼿하게 나를 소개할 때가 되길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촉이 좋지 않다는 것은 착각이었나 보다.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영화 ‘기생충’에서 지하실에서 살던 가정부의 남편이 자꾸 생각났다. 대만카스텔라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망했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그 등장인물이 나 같았다. 상황은 계속해서 나를 배반했고 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수십, 수백 발의 화살을 맞았다. 나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피해자는 나였다. 집에서 은둔하는 나는 지하실에서 웅크리고 있는 영화 속 지하인과 닮은 것 같았다. 조금 울었고 내게 늘 조언을 해주는 친한 언니에게 신세한탄을 했다. 그리고 홧김에 또 여러 회사들에 이력서를 넣었다.


역시 세상은 그렇게 만만히 볼 데가 아니었다. 한 주일 동안을 은둔생활을 하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만큼 명확한 것은 세상은 예상가능한 결말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가려면 일단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 나는 호되게 신고식을 했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니 이 경험이 내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다시 힘이 났다. 나는 또 면접을 보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지금 나는 다시 한 발짝은 더 나아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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