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하고 난 이후 지난 몇 년 동안은 글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그 결과로 현재의 모습이 된 나를 깊이 생각했다. 후회와 억울함이 남았던 과거는 이해의 옷을 입었고 좋았던 기억들은 ‘힘들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나의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만족감을 느끼며 글을 쓰는 행위를 마치 나 자신을 꿰뚫어 보는 의식이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를 잘 알기 때문에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할만해요?”
요즘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나에 대한 걱정인 것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내 눈동자는 흔들리곤 했다. 어쩌면 이런 말들 때문에 사람을 자연스럽게 상대하는 것도, 일을 능숙하게 해내려는 다짐도 마지막 순간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나의 태도가 조금은 조심스러워야 하나?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나? 하는 염려를 하면서.
이런 소심함은 어린 시절의 것과는 다른 나의 새로운 모습이다.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서 보이는 어설픔인데 결코 어리지 않은 나의 이런 면은 성숙한 어른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몰라도 당당하고 외로워도 꿋꿋했던 예전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이 대단한 일이었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말로 꺼내어보면 너무 사소한 일이라 부끄러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엑셀 파일의 수식을 엉키게 만들어놓고 수정을 못하는 것, PDF 파일을 어떻게 분할하는 것이었더라 기억이 안 나서 허둥 대는 것, 영타가 서툴러서 내 손가락을 못 보게 하고 싶은 것들이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어색함이나 기싸움 같은 것들이 뒤섞인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나열할 것들은 수도 없지만 쓸수록 내가 너무 작아 보여서 못하겠다. 이런 일들이 거듭될수록 나는 쓸모가 없는 사람인가라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인데...
그런데도 내가 왜 이런 일들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냐면 여전히 나는 어수룩하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나이를 먹었으면 어떤 사람 앞에서나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이틀 동안 다른 척점에 있는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첫 번째 날은 나를 지지하는 동료들이었고 둘째 날은 나와 애매한 관계를 맺는 동료였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도 술김에 진심을 내보이기도 했다. 답답한 속을 내보인 것 같아서 조금은 후련했고 나의 마음을 너무 내보인 것 같아서 조금은 후회했다.
집에 돌아오며 나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맞는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바뀌었는지. 여전히 나는 맞는데 이런 모습의 나도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다.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도 참 길고 쉽지 않은 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