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무생각

내게 쓰는 일이란

by 김범인

가끔 나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곤 한다. 지난주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겨서 이른 저녁 2~3시간 동안 온갖 부끄럽고, 상식에 어긋나고, 과한 표정과 행동으로 그날의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느 정도의 예의를 갖춰야 하고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보여야 하는 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가볍고 단정치 못한, 한낱 새털과도 같은 사소하고 하찮은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깊은 밤도 아니고 이제 막 낮이라는 단어를 저녁이라는 단어로 갈아 끼울 그 무렵에 혼자 알코올에 절여져 미쳐 날뛰는 수상한 인물. 그래, 나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뇌 속 장기 기억 저장소에 그렇게 선명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날의 일을 함께 있던 사람들이야 괜찮았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 나는 여기저기 주워들은 그날 나의 행적과 내뱉은 말들의 조각을 끼워 맞추며 아직도 수치심에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쓰는 의미'라는 주제의 글을 쓰기 위해 가만히 노트북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날의 일이 생각났다. 아마도 ‘의미’라는 말에 꽂혀서, 평범한 일상을 가르는 이런 일들에서 내가 존재하는 그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자 했나 보다. 까놓고 얘기하자면 부끄러운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반성의 시간이었겠지만 그것을 점잖게 표현하자면 내 존재에 대한 고찰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될까, 도대체 나는 무엇일까.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를 좀 알아보자. 나는 그날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열심히 열심히 굴을 파고 들어가며 지금,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다.


나 자신을 고요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최초의 순간을 되짚어보자면 나는 늘 글을 쓰는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삶은 한심하고 소심하고 후회로만 가득하다고 생각했을 무렵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가만히 과거를 되짚어보고 있자면 늘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고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이 있고 그날의 시간과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늘 삶의 핵심이 아닌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편안한 나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내 삶의 중앙에는 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걸 왜 미처 깨닫지 못했을까,라며 글을 쓰면서, 그리고 써 두었던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을 읽어가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고 처음 쓴 글은 엄마의 김치찌개에 대한 글이었다.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엄마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무뚝뚝한 나에 대한 아쉬움이, 먹고살기 바빠서 우리들에게 소홀했다고 오해했던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오랜 시간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했다는 후회와 나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한 놀라움이... 엄마의 김치찌개에 대한 맛과 냄새의 기억과 함께 벅차게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우면서도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후 한동안 열심히 글을 썼다.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 대한 부담과 내가 나를 바라보는 편협함을 조금씩 조금씩 벗어던지는 감정들이 글을 쓸 때마다 나의 피부로, 호흡으로 느껴지던 순간들이었다. 평소의 나는 늘 부족함과 실수를 연발하는 부끄러움으로 빈자리를 채우는 사람이다. 비움을 채우는 사람인데 글을 쓸 때만큼은 무게와 부피가 있는 무언가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오늘의 반성과 나를 찾아가는 이 글의 끝을 내보자면... 나는 고민이 있고 무언가를 찾고자 할 때마다 생각을 거듭하고 음성으로 그것을 토해냈지만 그럴 때에는 늘 결말에 이르지 못하곤 했다. 매듭짓지 못하는 그 생각의 날실들을 늘 움켜쥐고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 가슴만 쥐어뜯으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끝이 드러날 것이라는 착각으로.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쓸 때마다 나는 내가 알던 나의 모습, 내가 확신하던 생각들이 모두 흩어지고 다시 단단한 무언가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분명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글을 쓰며 나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있었고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유와 의미를 찾고 있었다. 글을 쓸 때만큼은 늘 끝맺음을 했으므로.


쓰는 의미를 찾고자 노트북을 바라보며 지난주의 일들을 돌아보는 나는 이번에도 그 시간 역시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되돌아보고 싶었나 보다. 다시 돌아보자니 그날은 지난해의 성과를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자리였고, 나는 팀장이었으므로 그 자리에 무겁게 흐르던 공기를 조금은 바꾸어보고자 했고, 컨디션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표님과 팀원들과 술을 한잔씩은 마시고자 했고, 기분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 한마디라도 건네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마음을 갖고 그 자리에 있던 나인데, 왜, 도대체, 주량은 그렇게도 형편없는 것인가. 자, 다시 반성을 해보자. 노트북을 째려보며.....

생각을 거듭하자니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생각을 멈추게 하는 이 글의 끝맺음은 분명 있으므로 나는 오늘도 그 끝에서 내가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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