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집도 뜨겠다?"
남편이 말했다. 뜨개에 올인했던 한동안 나는 남편의 스웨터를 쇼핑할 때, 아이들의 방한소품들을 사야 할 때, 여러 가지 인테리어 소품들을 사야 할 때, 여행 가기 전 필요 물품을 사야 할 때... 무언가가 필요하고 사야 할 때, 아니… 그냥 숨을 쉴 때면, 언제나 “잠깐 기다려봐. 내가 떠줄게.” 라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뜨려고 했다.
전셋집에 살며 이사 걱정을 하던 때에는 진심으로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은 6개쯤 만들어서 침실과 아이들 방 외에 뜨개를 위한 방, 독서를 위한 방, 남편 취미방도 만들어야지. 거실은 책도 봐야 하고 T.V. 도 봐야 하고 차도, 술도 마셔야 하니 편안한 분위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거실의 색은 톤 다운된 베이지나 인디핑크 같은 따뜻한 색 실을 골라야겠지? 뜨개방은 빼곡히 쌓아둘 실이 이미 다양한 빛깔일 테니 흰색 벽으로 뜰 것이다. 눈 아픈 새하얀 색 말고 살짝 노란빛 도는 흰색의 실을 찾아봐야겠다. 주방은 물을 많이 쓰고 음식 냄새가 많이 날 테니 면사로 떠야 할 것 같다. 뜨개로 세운 주방 벽은 더러울 때는 벗겨내어 박박 빨아서 다시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나 청결하도록. 물을 많이 쓰는 욕실이 문제다. 요즘은 빨랫줄 같은 합성섬유 실도 있고, 비닐실도 있으니 그걸로 뜨면 되려나. 아, 뜨개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난 멋지게 떠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기꺼이 뜰 생각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이사를 준비할 때는 집안 모든 살림을 뜨개로 떠버리려는 진취적인 생각을 했다. 집을 못 뜬다면 집안 구석구석 뜨개 소품들을 떠서 놓아두어야겠다. 커튼은 거미줄처럼 얇은 면사로 하늘하늘하게 떠서 달고, 내 오랜 숙원이었던 뜨개 블랭킷을 크게 떠서 베드 스프레드로 써야겠다. 욕실문과 어울리는 색으로 발매트도 떠야지. 아이들 침대 가드에 달아줄 수납주머니도 떠야겠다. 아이들 자기 전까지 놀던 장난감이나 책을 거기에 넣어두면 깔끔하겠지? 소파를 사면 그 위에 내가 뜬 빈티지한 커버를 무심하게 툭 올려놔야지... 우리 집의 인테리어는 나의 미적 감각에 뜨개 특유의 따뜻함을 더한 아름다운 집이 될 것 같다. 후훗.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나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케아에 쇼핑하러 간 남편은 여러 가지 소품들을 카트에 넣는다. 실로 짜인 정리함, 수납 걸이,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소소한 도구들. 내 눈에는 다 내가 뜰 수 있는 제품들로 보였다.
"내가 떠줄게." "내가 뜨면 이것보다 더 예쁠 것 같아."
이처럼 남편의 소비를 말리고 있는 나는 카트 안의 물건들을 자꾸만 빼고 있었다.
뭐든지 뜨려는 욕망은 비단 집안 소품이나 인테리어 용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방한의류를 구입하기 위해 남편과 쇼핑을 가면 남편이 고르는 니트들은 모두 내가 뜰 수 있는 것들로 보여서, 남편이
"이거 어때?" 하고 물으면,
"내가 떠줄게." 답하고,
"이 니트 색 이쁘지 않아?" 하고 물으면,
"우리 집에 이것보다 더 예쁜 실이 있어. 내가 떠줄게." 이런 식이다.
옷을 구입하려는 남편과 그것을 말리는 나는 티키타카 끝에 작은 다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는 '에잇, 남편도 확 떠버릴까 보다.'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조용히 남편 옷을 뜰 실과 바늘을 잡는다.
아이들 옷이나 모자와 장갑 같은 방한용품들도 마찬가지다.
"엄마, 털모자 사주세요." 딸이 말하면,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핑크로 떠 줄게." 하고,
"엄마, 아이언맨 티셔츠 사주세요." 아들이 말하면,
"이제 넌 아기 아니야. 엄마가 캐릭터 옷 대신 형들이 입는 꽈배기 무늬 니트 떠줄게."라고 답한다. 활동량 많은 아이들에게 털실로 뜬 뜨개 옷보다는 면티셔츠가 더 실용적인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니트를 입히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설득한다.
이처럼 나에게는 뜨개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 '식'을 제외한 '의'와 '주'를 지배하고 있다. 뜨개실을 먹을 수 없으므로 '식'의 영역은 침범할 수 없겠지만 내 생활의 기본 요소 66.66666.....%를 뜨개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본 요소가 아닌 내 삶의 다양한 활동분야에서는 뜨개의 영향력이 어떠한가 살펴보자.
내 또 다른 취미인 독서활동은 뜨개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당연히 받는다. 뜨개로 만든 책갈피를 사용하고, 뜨개 북커버도 꾸준히 제작 중이다. 전자책 리더기의 커버를 만들고 노트북 커버를 뜬다. 독서활동을 위해 여러 색깔의 펜을 넣을 필통을 뜨고 수첩과 각종 스티커를 넣을 파우치도 뜬다. 독서를 하며 책 옆에 놓인 뜨개 소품들의 다양한 색상을 보고,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을 느끼고, 소품들로 인해 정돈된 기분을 느끼다 보면 나의 독서생활의 감각적 영역을 뜨개가 고취시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책과 뜨개 소품은 참 잘 어울린다.
자전거를 타러 나갈 때는 어떠할까. 내 자전거는 빨간색 브롬톤이다. 도시적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접이식 자전거인 브롬톤은 라이딩 의류를 갖춰 입기엔 머쓱하고 평상복을 입기엔 불편하다. 나는 편안한 운동복에 뜨개 장갑을 끼고 뜨개 양말을 즐겨 신는다. 뜨개 장갑의 따뜻함과 우아함, 뜨개 양말의 포근함과 아름다움을 아는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는 순간 유럽의 귀족이 된 듯한 기분이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스피드나 운동효과보다 내가 걸친 뜨개 액세서리들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크다.
캠핑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의 캠핑장 풍경은 어떠한가. 떠야 할 소품들 천지다. 체력이 많이 필요한 활동임에도 캠핑 자체가 감성적 영역의 일이라서 그런지 감성 소품은 떠도 떠도 계속 뜨게 된다. 캠핑장에서 나는 뜨개 무릎담요를 덮고 책을 읽는다. 이소가스 워머를 입힌 버너 위에 커피를 끓일 주전자를 올린다. 부탄가스에도 옷을 입혀서 캠핑 램프를 켜기도 한다. 데이지 체인은 뜨개로 짱짱하게 여러 빛깔로, 휴지걸이와 가랜드는 알록달록 화려하게 떠서 걸어 둔다. 캠핑용 주방 소품도 뜰 것은 너무 많다. 수세미나 작은 손수건은 물론이고 조리도구 커버, 수저 커버, 도마 커버...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계절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바꿔 쓰기 위해서는 꾸준히 새로 제작해야 한다.
여행을 할 때는 어떨까.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 떠야 할 작품들이 머릿속에 촤르르 줄을 선다. 집 앞을 나가는 순간부터 뜨개 용품을 입고 담고 사용한다. 그러므로 필요한 각종 뜨개 소품들을 제작해야 한다.
삶의 구석구석 뜨개 생각, 여행을 계획할 때도 뜨개 생각, 미래를 설계할 때도 뜨개 생각. 나 괜찮은 걸까? 가끔은 한 곳만 보고 있는 내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뜨개가 아니면 내가 이렇게 행복한 일을 오랜 시간 지속한 적이 있던가? 그 질문의 답은 뜨개 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왜 나는 뜨개를 사랑하는가. 그것은 나의 삶과 뜨개가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쉴 집, 내가 사용할 도구, 내가 입을 옷,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의 여러 가지 연결고리. 더 넓게 생각하자면 뜨개가 내 과거의 감성과 현재의 만족과 미래의 지향점들과 맞닿아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뜨개 작품들을 꾸준히 생산해 내면 그것들을 과연 다 사용할까 궁금할 것이다. 뜨개는 완성이 되기 전에는 어떤 작품으로 탄생될지 완벽히 예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적인 작품 못지않게 그렇지 않은 작품도 많이 완성된다. 그것들은 버려지기도 하고 구석에 처박히기도 한다. 뜨면서 이게 과연 사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탄생할 것인가 의아해하며 뜨기를 멈춘 미완성작도 꽤 많다. 집을 포함하여 많은 작품들은 실행하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실망스러운 일들도 허다하지만 나는 뜨개를 멈추지 않는다. 버려지는 뜨개 작품들은 내게 실패 요인을 알려주었고, 미완성 뜨개작들은 뜨개 욕구에 응답한 나의 노력 중 일부였기 때문에 내게는 가치 있다. 언젠가 뜨기 위해 구상을 하고 있는 아이템들은 내 안의 창작발전소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원천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공간에 놓일 모든 것들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내 손으로 만들려는 욕구. 누군가에게는 물리적인 낭비가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그것은 내면을 가꾸고 발전시켜가는 원동력이다. 그것만으로도 뜨개는 내게 가치 있는 마음이자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