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뜨라는 단어를 아는가? 이 단어는 '우리 함(한번) 뜨거운 시간을 보내보자.' 또는 '(우리 오늘 바다로) 함 뜨자.'라는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뜨개인이라면 흔하게 접하는 활동인 '함께 뜨기'를 지칭하는 약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뜨개인들에게는 '함뜨'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함께 뜬다는 것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여러 사람의 손길이 들어간다는 말은 아니다. 정해진 작품을 정해진 기한 안에 함께 뜨기로 약속하고 각자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함뜨를 설명하려면 이 문장 속 '약속'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겠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당신은 의문을 갖을지도 모른다. '거대 작품을 다 같이 힘을 합해 완성하는 작업도 아니고 각자 하는 작업이라면 원래 평소에 하던 뜨개랑 무엇이 다른가?' 이제부터 나는 함뜨가 뜨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설명해 보겠다.
“아 이 뜨개 풀오버 너무 예쁘다. 그런데 구조가 복잡해서 뜨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섬세한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네. 피곤할 것 같은데 뜰까? 말까?”
뜨개 모임에서 핸드폰으로 뜨개 도안 사이트를 보며 고민하던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뜨개 친구가 말한다.
“함께 뜰까?”
그러자 그 옆자리와 그 옆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말한다.
“나도 함께 뜨자.”
순식간에 뜨개 모임에서는 그 풀오버를 함께 뜨기로 결정하고 각자 도안을 구입하고 각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일정과 작업능률을 고려하여 함뜨 마감일을 정한다. 이제 함뜨의 기본 틀이 잡혔으니 사용할 실과 바늘을 고르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뜨개 테크닉 조언을 구하고, 점심메뉴 고르는 것 다음으로 고르기 힘들다는 옷의 분위기에 딱 맞을 색상과 질감을 고려한 실을 고르며 의견을 주고받는다. 어렵고 힘든 여정이 될 것 같아 뜨개 작업을 시작하기를 주저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 테이블의 뜨개 열정은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고 있다. 느꼈는가? 탐나지만 지루하고 지난한 뜨개 작품이라 뜨기를 망설였던 풀오버를 함께 뜨기로 결정하자 열정적으로 뜰 준비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을. 그리고 그 이후 어려운 테크닉들은 스터디하듯 함께 해결하고, 지루해서 뜨개를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순간에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서로의 진행속도를 비교하며 작업능률을 올린다. 이 뿐인가. 같은 디자인의 풀오버를 떴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실과 바늘, 서로 다른 장력으로 인해 제각각 다른 분위기와 특징들을 담은 풀오버가 탄생하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본다. 완성된 후 다 함께 그 착용 완성샷을 남기는 기쁨은 마치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쓰고 졸업사진을 찍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려운 과정을 함께 한 뜨개 친구와의 끈끈한 동기애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뜨개 모임 또는 뜨개 친구들과 함께 같은 작품을 뜨는 함뜨도 있지만 요즘은 뜨개 디자이너가 함뜨를 여는 경우도 있다. 뜨개가 예전에 비해 훨씬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취미활동이 된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디자이너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수준 높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새로운 도안을 출시했을 때 디자이너는 파티원을 모집해서 그 도안의 함뜨를 진행하게 된다. 온라인으로 함뜨 참여자를 모집해서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파티원 모집이나 상호교류에 어려움은 없다. 이런 함뜨는 뜨개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뜨고 sns에 완성작을 올림으로써 광고의 효과를 노릴 수 있고 또한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에러나 도안의 오타를 발견하는 이점이 있다. 함뜨 파티원들은 누구보다 먼저 그 작품을 떠서 사용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얼리어답터가 된 듯한 느낌과도 같다.) 작품의 원작자와 상호작용하면서 뜨개를 할 수 있다는 특별한 기쁨을(가끔은 마치 과외쌤과 공부하는 것과도 같다. 칭찬받으면 모범생이 된 것 같아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느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주제로 다른 작품을 뜨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참여하던 M님과의 양말 뜨기 함뜨는 매 회차 다른 주제로 양말을 함께 뜬다. 양말이라는 동일한 카테고리 내에서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여름에는 '바다'를 테마로 삼기도 하고, '스트라이프', '아란 무늬'와 같은 형태를 주제로 삼기도 하고, '초록', '파랑'과 같은 색상을 주제로 삼기도 한다. 참여자는 그 주제에 부합하는 양말을 주어진 기한 안에 완성해야 한다. 참여자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제각각 다른 느낌과 형태를 갖춘 작품들이 완성되는데 그것을 한데 모아 보게 되면 뜨개인들의 감성과 기술력과 예술성에 경이로움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같은 주제로 이렇게나 다른 해석을 담은 작품을 뜰 수 있다니! M님은 함뜨가 종료된 후 완성 사진을 갈무리하여 하나의 사진으로 만들어 블로그에 게시물로 올려준다. (너무나 아름다운 작품이 많은) 갤러리 컷에 나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예술가가 된 것처럼 자부심이 차오른다.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M님의 양말 뜨기 함뜨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함뜨 참여자들의 실력이 더더욱 올라가고 참여자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예술성이 높아져서 점점 실험적이고도 풍부한 감성을 담아내는 양말이 탄생되고 있다.
자 함뜨의 진행방식을 알았으니 이제 함께 뜨는 장소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뜨개를 하는 당신이 가장 편한 자리다. 함께 뜨자는 약속을 한 것이지 함께 한 장소에 모여서 뜨개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한마디 할지도 모른다. "그럴 거면 그냥 혼자 뜨고 싶은 거 편하게 뜨면 되잖아!" 뜨개인은 그 의견에 수긍할 수 없다. 위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았는가. 함뜨는 기한을 정해놓고 뜨기 때문에 작업능률을 향상할 수 있고, 서로를 향한 격려가 뜨개 의욕을 고취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함뜨에 참여하는 것은 뜨개 테크닉이나 소소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지원자를 곁에 두는 것이고, 나의 뜨개 실력과 예술성을 고취시킬 동반자와 함께 하는 일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뜨개 연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찬양하듯 함뜨의 이로운 점을 써왔으나 사실은 함뜨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핫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다른 뜨개인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그와 동시에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함뜨 참여를 하게 되는데, 신청하고 싶은 탐나는 함뜨는 어찌나 많은지! 대부분의 뜨개인은 뜨개 작품을 여러 개 진행하는, 소위 문어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함뜨도 마찬가지다. 욕심을 내다보면 여러 그룹에서 진행하는 함뜨를 동시에 신청해서 작업하는 문어발 함뜨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곳저곳 참여 의사를 밝히고 뜨개 의지를 다지고 함뜨 완료일 안에 혼신의 힘을 다해 진도를 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기한을 맞추기 위해 건강을 해칠 수도 있고, 노력했지만 결국 미완성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완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벌을 받는 일은 없겠지만 뜨개인들과의 신뢰가 걸린 일이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뜨개를 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인내심을 기르며 뜨개물과 물아일치를 이루어 득도까지 할 수 있을 뜨개인이라면 마음의 문제인 서로 간의 신뢰를 깨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물론 가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안 한 것이 아닌 못한 경우는 제외다.) 그러므로 뜨개인은 자신의 작업능력과 뜨개 가능 시간, 체력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함뜨를 신청해야 한다. 물론 선택은 어렵겠지만.
뜨개를 하나의 세계라고 보면 나는 그 세계를 만든 조물주이고 뜨개 작품은 피조물이다. 뜨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나 그것들의 조화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물주도 외롭다. 나의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나의 세계를 이해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 역시 그 누군가의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싶다. 또한 피조물들을 더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더 능률적으로 창조할 수 있도록 다른 세계를 접해야 한다. 이것이 뜨개가 혼자 하는 작업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혼자 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