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와 공간

by 김범인

벽면에 위치한 벽난로, 다채로운 색상의 실이 담긴 바구니와 그 옆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흔들의자에 앉아 온화한 표정으로 뜨개를 하고 있는 모습. 클리셰라고 생각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뜨개의 이미지를 그려본다면 이런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뜨개라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느슨해지는 기분과 평화로운 분위기가 그 장면을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말이 아닐까. 나 역시 뜨개를 하는 공간이라면 다른 것이 침범할 수 없는 아늑하고 순수한 뜨개 공간을 생각한다. 아마도 뜨개는 공간이 주는 영향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자, 나는 다른 의미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뜨개를 하는 연차가 많아질수록 그런 이상적인 모습의 공간은 유지할 수가 없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누군가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범인이라면 뜨개를 위해 허용된 공간의 면적은 늘 부족하다. 뜨개를 10여 년간 꾸준히 지속해 온 나의 공간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여기 있는 분들 집에 실 값 계산해보면 1000~2000만 원은 우습지 않나요?"

뜨개 모임에서 각자가 소장하고 있는 실의 양에 대해 가늠하던 중 멤버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내가 설마~'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 쌓인 실은 그 이상이 될 것 같아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뜨개를 시작하고 1-2년 사이에는 저렴한 실 위주로 매달 20~30만 원씩은 주문했고 본격적으로 뜨개옷을 뜨기 시작했던 3~4년 사이에는 국내 사이트에서 고가의 의류용 실을 수시로 구입했다. 그리고 4년 이후부터는 고급 브랜드의 실을 직구로 자주 구입했다. 구입한 실을 모두 사용했다면 좋겠지만 뜨개 속도가 실을 사는 속도에 한참 못 미치므로 집에는 결국 많은 실이 쌓이게 되었다. 나는 쌓인 실의 금액을 따져보려다 가슴이 철렁해서 계산을 그만두었다.


물론 실을 구입할 때는 늘 나를 합리화하곤 한다. 내가 하는 뜨개의 대부분은 '손뜨개 옷'인데 니트 옷 한 벌을 구입하려면 구입하는 실 값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실을 구입한 나는 의복 구입과 취미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이다. 다른 취미생활에 비해 얼마나 생산적인 일이고 예술적인 일인가.

그러나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있다. 공간의 문제이다. 뜨개를 할 공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실과 바늘을 사용하여 뜨개라는 행위를 할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과 바늘을 비롯한 온갖 뜨개용품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처음에는 옷장 옆 남은 공간에 작은 상자를 두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주방에 위치한 트롤리의 하단, 이곳은 실과 어울리지 않지만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이곳에 보관을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커다란 캐비닛을 구매해서 실을 쌓았다. 캐비닛을 가득 채운 이후부터는 쌓이기만 하는 실을 더 구입하는 데에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실은 타인, 특히 남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한팩 한팩 숨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숨기는 데에 한계가 느껴지고 소장실의 적당한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자 그 당시 아이가 어려서 쓰지 않던 방 하나에 실을 보관했다. 방에는 실과 뜨개 도구들, 그리고 뜨개를 할 수 있는 의자 하나를 두었다. 그곳은 나의 뜨개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소장품의 수가 방대했고 각각의 물품은 기능적, 심미적 측면에서 다양성을 갖고 있었다. 방이 점점 좁아져도 마음속 만족감의 면적은 넓어졌다. 그러나 나의 실 수집에 브레이크가 걸린 이유는 이사였다. 뜨개를 시작하고 한 첫 이사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난 나의 재고들에 남편이 한마디 했다.

"요즘 왜 이렇게 쪼들리나 했더니 돈이 다 실 사는 데 들어갔구나?"

나 역시 이삿짐을 싸기 위해 드러난 실의 실제 부피감을 눈으로 체감하고 30평대 아파트에서 더 이상 실을 늘려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을 실은 벼룩으로 내놓기도 하고 드림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뜨개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실에 대한 집착도 버리기 어려운 법이다. 실 총량을 축소시킨 나는 다시 실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나는 이사를 하며 축소된 실의 부피를 한탄하며 또다시 실을 채우고 있었다.


이사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각자의 방을 차지했기 때문에 실을 위한 방을 마련하지 못하고 여러 곳으로 나누어 보관했다. 이렇게 나누어 보관한 장점을 꼽자면 내 실의 양이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온 집안이 뜨개 창고가 되어 가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안방의 장롱과 벽 사이에 남은 좁은 공간, 아이들 공부방에 둔 캐비닛과 붙박이장, 주방 냉장고 옆의 틈, 거실 소파와 책장 사이.... 집안 구석구석 채워지는 실들은 나의 뜨개 공간과 우리 가족의 생활공간을 점점 축소시켜 갔다. 아,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쓰기 위한 자기만의 방이 있었던 것처럼 나도 뜨개를 하기 위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이렇게 또다시 공간의 확대를 향한 욕망이 일어나게 되면 실 더미 들을 벼룩과 드림으로 축소시킨다. 그러나 공간이 마련되면 다시 실에 대한 욕망은 되살아나는 것이 불변의 이치이거늘. 실을 또 채운다.


뜨개인들은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에 통장 비밀번호와 숨겨둔 재산에 대한 유언을 남기겠지만 다수의 뜨개인은 유언으로 숨겨둔 실의 위치를 보물지도처럼 그려서 남겨둘지도 모르겠다고. 유언장을 받은 가족은 끊임없이 나오는 실꾸러미를 보며 고인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떠올릴 정도로 뜨개를 지속하는 한, 실을 구입하는 것은 그만둘 수 없다. 감정의 기복이나 주변의 만류 때문에 잠시 멈출 수는 있으나 예술을 향한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도구인 실을 포기할 수 없다. 9년 차 뜨개인인 나는 어차피 물리적 공간을 늘릴 수 없다면 오래 앉아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뜨개용 의자 하나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실로 채운 좁은 공간 속에서 뜨개 하는 사람의 마음의 공간은 실제 공간이 협소해지는 것에 반비례하여 확장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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