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뜨개 옷

by 김범인

뜨개에 빠져 지내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옷을 뜨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그 이후 나의 뜨개 인생의 두 번째 장이 열렸다. 옷을 뜨는 것은 마치 기성복을 쇼핑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희열을 느끼게 했다. 뜨고 싶은 옷의 디자인을 고르고, 그 디자인에 어울리는 실과 바늘을 준비하고, 한동안 그 옷의 뜨개에 집중한다. 이는 마치 매장에서 옷을 쭉 훑어보고, 몇 가지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두고, 그 옷들을 입어보고, 내 몸에 잘 맞는 사이즈와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른 후 살까 말까 고심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마침내 완성된 옷을 세탁까지 마치고 내 몸에 착장하는 기쁨은 상점에서 돈을 지불하고 쇼핑백을 들쳐 메고 나올 때의 기쁨, 그것의 몇만 배에 가까웠다. 옷을 뜨는 것이야말로 내가 뜨개를 시작한 이유라고 여겨졌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한 목적의식이 확립된 순간 이 일을 하는 나의 모든 행위에 당위성이 부여된다. 옷을 뜰 실과 장비와 도안을 구입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 잠을 줄이고 뜨개를 해서 피곤한 것은 마땅히 치러야 할 희생이었다. 나의 열정은 지치지도 않았고 그 열정만으로 여러 벌의 옷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피땀눈물이 무색하게도 실과 바늘의 사용, 편물에 대한 지식이 없이 완성된 옷은 사이즈 미스이거나, 편물이 옷에 어울리지 않게 딱딱하거나 혹은 흐물흐물하거나,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은 얼토당토않은 모양새였다. 나는 내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그 당시 내가 살던 곳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뜨개방을 무작정 찾아갔다. 뜨개방에서 배운 것이 편물의 특성과 그에 따른 활용 방법이나 옷의 제도와 같은 깊이 있는 지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듯한 몇 벌의 옷을 완성할 수 있었고, 함께하는 뜨개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더 나은 옷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쌓게 되었다.

뜨개방에서는 옷을 뜨기 위해 도안은 필요하지 않았다. 사용할 실로 스와치(뜨개 편물의 느낌이나 게이지를 알기 위해 제작할 작품의 일부를 뜬 조각)를 떠서 게이지(스와치를 이용해 계산된, 일정한 넓이 안에 들어있는 콧수와 단수)를 내어보지도 않았다. 원하는 작품이 있으면 뜨개방 선생님에게 "이런 작품을 뜨고 싶어요"라고 요청을 한다. 그러면 적당한 실을 꺼내오신다. 선택된 실은 대부분 그 계절에 뜨개방에서 밀고 있는 실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대략적인 게이지와 편물의 느낌을 짐작하고 있다. 뜨개의 진행은 뜨개 선생님의 간략한 브리핑 이후 지시에 따라 진행된다. 사실 브리핑이라고 해야 "앞판 뜨고 뒤판 뜨고 소매 떠서 연결할 거예요." 또는 "이 옷은 단추 아니고 지퍼를 달 거예요."와 같은 초간략 정보만 받는 것이다. 그리고 "몇 코 잡아서, 몇 센티 고무단 뜨고, 몇 코로 무늬 올려서, 몇 센티 뜨세요."라고 말씀하신다. 수십 년의 경력으로 인한 노하우로 그 옷의 뜨개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가 머릿속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모든 진행과정은 구술로 진행된다. 나는 지시대로 뜨기만 하면 되었다. 모르는 것이 있거나 힘든 부분을 물어보면 바로 대답이 돌아오고 틀린 부분은 그 자리에서 수정이 가능했다. 재미있고 편하게 뜨개옷을 만들었으나 사실은 지식보다는 기술을 배운 것이고 혼자서 무언가를 뜨기에는 미숙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뜨개방에서 옷을 완성한 성취감을 느끼긴 했지만 만들었던 옷들은 선생님의 취향에 따른 디자인이거나 평범한 형태의 옷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뜨개방에서 쌓은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혼자서 옷을 뜨기로 했다. 일단 뜨고 싶은 디자인들을 추려보고 그와 비슷한 뜨개 도안 책들을 구입했다. 그때는 뜨개가 지금처럼 대중적 취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글판 도안은 거의 없었고 일본도안집이나 영문판 도안들이 대부분이었다. 언어의 벽을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웠지만 일본도안집은 도식화된 도안이라서 일어를 잘 알지 못해도 괜찮았고, 영문판 도안은 뜨개 약어로 이루어진 서술형 도안이기 때문에 뜨개 약어만 알고 있다면 해석을 굳이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뜨개 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도안을 구입할수록 내게 어울릴만한 것을 고르는 요령이 생겨갔는데 나와 취향이 비슷한 디자이너, 내가 좋아하는 핏의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를 픽해두고 그들의 도안을 선택한다던지, 그 옷을 떠 본 사람들의 후기를 유심히 보고 내가 입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먼저 머릿속으로 그려본 뒤 구입을 하게 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벌의 옷을 꾸준히 만들어가면서 도안을 그대로 뜨는 것이 아닌, 내 몸에 맞도록 수정하고 보완해갔다. 나의 뜨개 기술력은 나날이 상승했다. 그와 더불어 한 달에 한두 벌의 새 옷이 생기는 기쁨을 만끽했다. 늘어가는 편물을 보며 옷의 완성을 기다리는 설렘은 매일 쇼핑을 하는 기분과 같았다. 그 기쁨을 누리다 보니 문득 내가 옷을 떠서 입는 이유가 과연 이것뿐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뜨개의 매력에 빠진 이유 중에 하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입지 못할 만큼 엉망으로 만든 옷이 아니라면 조금 크면 크게 입어도 좋고 조금 작으면 작게 입어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살짝 대칭이 맞지 않아도 편물을 스팀으로 쐬어서 늘려주거나 만져주고, 무늬가 틀렸어도 핸드메이드의 맛이라는 재치로 넘길 수 있었다. 양재의 경우 완벽한 핏이 나오지 않으면 어딘지 어색해 보이지만 뜨개는 편물의 탄력과 포근한 느낌 때문인지 어떤 경우에도 나름의 멋이 살아났다. 이것은 긴장감을 느끼는 것에 힘들어하고 느긋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나의 성격과도 잘 맞는 특성이었다. 완벽하게 무언가를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시도 자체를 하지 않거나 쉬이 포기해버리는 나의 나약함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어서 뜨개를 하는 것이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뜨개를 하면서는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세심한 작업을 할 만큼 주의 깊은 사람이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뜨개를 할 때만큼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특히 내 옷을 내가 떠 입는다는 자신감, 나의 감성을 드러내는 옷을 입었다는 만족감, 뜨개라는 힘든 여정을 즐기고 있다는 뿌듯함은 나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감정들이었다.

지금 나는 뜨개 옷을 제도해서 만드는 과정을 등록해서 공부 중이다. 뜨개를 알아가는 길은 참 멀기도 하다. 알면 알수록 무궁무진한 그 세계를 내게 보여준다. 나는 더 깊은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탐구하고 시도하고 성취하고 싶다. 그것은 결국 나를 표현해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고 행복을 찾는 과정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뜨개를 한다. 아마도 보름쯤 후에는 내게 새 뜨개옷이 생길 것이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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