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카페에서 뜨개를 했다. 도식화된 도안을 보며 뜨개를 하는 나와 달리 맞은편에 앉은 친구는 뜨개 방법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뜨개를 하고 있었다. 영상 속 뜨개 하는 사람의 손과 동작을 주의 깊게 보고, 뜨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음성으로 들으며 옷을 만들어가는 친구를 보니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내가 뜨개를 시작할 무렵에는 유튜브에 올라온 뜨개 영상은 거의 외국 콘텐츠였고, 자료도 많지 않아서 깊이 있는 독학이 어려웠었는데 말이다. 친구는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며 뜨개 기법을 익히고 뜨개가 진행되는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다. 나도 슬쩍 들여다보았다. 전문가의 솜씨로 제작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도록 영상이 감성적이고 보기 좋게 만들어져서 뜨개 하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도 있었다. 나는 그 영상미에 감탄하고는 '요즘은 뜨개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영상기술도 익혀야 하나보다.' '뜨개인은 말도 조리 있고 재치 있게 잘해야겠다'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영상을 제작한 뜨개인과는 상호교류를 하며 함께 뜨개를 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일었는데 그것은 마음속 빈 공간이 채워지지 못하는 느낌과도 같았다. 이런 나와는 상반되게 너무나 편안하게 영상을 시청하며 뜨개를 하는 친구를 보니 아날로그 감성을 중시하는 나는 이제 시대에 뒤처진 옛날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허탈해졌다.
내가 처음 뜨개를 시작한 10여 년 전에는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뜨개란 '어른들이 하는 고리타분한 취미'라는 취급을 받았다. 내가 뜨개를 한다고 말하면 "그런 따분한 걸 왜 하는 거야?" "뜨개는 할머니들이나 하는 일 아니야?" "돈 아끼려고 뜨개로 옷 해 입니?"라는 말을 듣곤 했다. 나도 뜨개를 시작하기 전에는 뜨개 하는 사람은 지루하고, 소심하고, '옷을 지어 입는다니 이런 수전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뜨개를 접하고 그 매력에 저항할 틈도 없이 깊이 빠져들고 나자 나는 이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정도로 뜨개가 좋았다. 그리고 뜨개는 절약을 위해 하는 노동이 아니라, 알면 알수록 감각이 풍부해지고 심신이 우아해지며, 또한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고급 취미라는 것을 알리고자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뜨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영상과 정보가 넘쳐나게 되었고 카페나 지하철에서 뜨개를 하는 사람이 간혹 보일 정도로 뜨개가 대중화되었다. 젊은 뜨개인들도 많아지니 감각적이고 세련된 작품들도 인터넷 세상에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런 요즘의 분위기에 더불어 가까운 친구가 유튜브를 보며 뜨개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문득 예전 뜨개방에 갔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뜨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호기롭게 스웨터를 뜨기로 마음먹었다. 책과 외국 유튜브 영상을 보며 독학을 했지만 곧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뜨는 것은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으나 디테일의 세심함이 부족하고 부자재 사용이나 마무리 과정 등은 서툴고 어설펐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살던 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뜨개방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뜨개방에서는 실의 강매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기존 뜨개 단골들의 텃세가 심하다는 소문 때문에 찾아가기가 꺼려졌었는데 그 당시에 나는 뜨개를 하며 부딪치는 난관들에 속을 끓이는 중이었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컸다.
뜨개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서 오세요."라는 음성을 들었지만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텃세란 이런 것인가? 잠시 당황했지만 곧 가게 안의 삼면을 메운 뜨개실들에 황홀해져서 열심히 그것들을 관찰했다. 모든 실이 나의 취향에 부합하지는 않았지만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실들이 차곡차곡 정갈하게 쌓여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실 정리장 위의 높은 벽면과 가게의 전면 창으로는 샘플로 떠 놓은 옷들과 소품들이 쪼르르 걸려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엔 다소 산만하고 올드한 감각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 시장을 걷다가 보았던 뜨개방의 풍경을 직접 들어가 감상한다는 것에 내 마음은 설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마치 강력한 세력을 지닌 뜨개 세상의 본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며 감탄만 하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가게의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을 보았다. 예닐곱 명의 여인들이 타원형의 긴 테이블에 자리 잡고 뜨개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40~50대의 여성이었고 30대 초반의 나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어린 사람이었다. 왠지 위축되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인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누가 주인일까를 가늠해보았다. 내가 우물쭈물 테이블만 바라보자 그 여인들 중 가장 고운 외모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늘씬한 분이 "뜨개 하러 오셨어요?"라고 말하며 일어나셨다. 뜨개를 직업으로 삼을 만큼의 고수라면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라고 생각했었던 터라 조금 놀랐다. 그러나 사실은 뜨개를 사랑한다는 나 역시 남들과 똑같이 뜨개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던 것 같다. 나는 옷을 뜨고 싶다고 말하고 가져간 뜨개 도안 책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실과 디자인에 대한 몇 마디의 이야기를 나눈 이후 타원형 테이블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게 되었다. 과연 내가 저 무리에 낄 수 있을 것인지 긴장되었던 처음의 마음이 무색하게도 나는 그날 이후 몇 달 동안 그 테이블에 자리잡은 일원이 되었다.
뜨개방은 뜨고자 하는 작품의 뜨개 기법을 가르쳐주고 그곳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완성될 때까지 머물며 뜨개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뜨개 기술을 가르쳐주는 비용을 받지 않는 대신 뜨개에 사용할 실은 그곳에서 구입해야 했다. 사용해보고 싶은 실이 많은 뜨개 초보인 나는 실 선택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뜨개방에서는 그곳의 룰을 따라야 했다. 애석하지만 그것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다. 타원형 테이블에 앉은 대부분의 뜨개인들이 잡고 있는 실은 비슷했고 뜨고 있는 작품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무늬를 조금 바꿨네? 이게 더 날씬해 보이겠는데?” “ 목을 이렇게나 많이 팠어? 고개 숙이면 가슴 다 보이겠네.” “너는 말라서 실도 적게 들어가서 좋겠다야.”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며 각자의 작품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뜨개 합평회가 열리는 듯 했다.
테이블에 모여 앉아있는 여인들은 상주 뜨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아침 집안일을 마치고 뜨개방에 와서는 저녁까지 머무는 것이다. 점심식사는 함께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각자가 바리바리 싸온 주전부리들로 해결한다. 직장을 다니던 나는 회사가 끝나 달려가는 이른 저녁마다 만나는 언니들을(거기에서의 호칭은 누구나 언니이다.) 연차를 쓰고 찾아간 아침에도 만났다. 언니들은 '그곳에 원래 있는 언니들'이다. 뜨개방에는 실도 있고 바늘도 있고 뜨개를 할 테이블과 의자도 있고 언니들도 있는 것이다. 언니들과 함께하는 뜨개 자리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일상 이야기, 가족과 시댁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부터 화제가 되는 뉴스나 각종 생활의 지혜와 정보들을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 웃었다. 참 신기한 것은 눈은 각자의 뜨개 편물을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말을 많이 하고 누군가는 침묵하고 있지만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니들 사이에 끼어있던 나는 그저 듣고만 있어도 그 테이블에서는 빈틈없이 소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안하고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뜨개를 하고 있어서 이런 안정된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이 언니들의 쉬지 않고 들려오는 말들이 뜨개 하는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어주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저녁 6~7시쯤이 되면 언니들은 "아이코, 나는 밥하러 가야겠다."라며 한 명, 두 명 뜨개방을 나서기 시작한다. 이제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헤어지는 인사도 "안녕"이나 "안녕히 계세요"가 아니라 "내일 봐." "내일 몇 시에 올게" "내일은 완성한 이 옷을 입고 올게." "내일 올 때는 맛있는 무언가를 가져올게."와 같이 대부분 '내일' 올 것이라고 예고를 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 인사가 나는 너무 정겨웠다. 내일 다시 만나서 함께 대화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웃는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뜨개라는 행위로 인해 단단히 결속되어 있음을 의식하게 만드는 '내일 만나'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나는 그때의 언니들을 기억하며 뜨개가 삶 속에 이미 녹아있는, 그리고 뜨개인들과 어우러져 사는 일상이 다른 이유들로 지쳐있는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언니들과 엄청나게 가까운 사이가 된 것도 아니고 나의 속이야기를 모두 꺼내보인 것도 아니지만 그저 타원형의 테이블에 앉아 함께 뜨개를 하며 말을 나누고 있다는 자체로 나는 내면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고 닳아서 얇아진 부분은 감싸 쥐게 되었다. 즐거움과 편안함이라는 감정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나의 손끝과 귀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내가 영상을 보며 뜨개를 하는 친구를 보며 뜨개방을 생각한 이유는 그 언니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많은 뜨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고 누구나 그것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뜨개 문화가 활성화되고 대중화가 되는 참 좋은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 뜨개방에서 내가 느꼈던 안락한 분위기, 뜨개라는 매개로 사람들과의 허물없는 교류의 장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뜨개방에서 배운 테크닉들은 요즘의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찾는 정보들에 비해 보잘것없을 것 같다. 전문적인 지식을 세심하게 정확하게 알려준 것도 아니고 잘못한다고 해서 나무라거나 타박을 주는 것도 아니라서 작품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해내지도 못했다. 그래도 그곳에서는 그것이 괜찮았다. 또 뜨면 되니까. 그리고 언니들이 다~ 괜찮다고 말해주니까.
그렇게 몇 달 동안 뜨개방을 드나들다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하게 되어 뜨개방을 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운 지식과 인터넷 세상에서 찾은 정보들을 이용해 혼자서 뜨개를 해나갔다. 사실은 혼자서 공부하고 뜨개 하면서 나의 실력은 더 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뼛속까지 아날로그형 인간이라서 사람들과 마주 앉아 뜨개를 하는 뜨개방에 대한 추억이 애틋하다. 지금의 내가 뜨개 모임들을 찾아가고, 모임 멤버들과의 교류와 친목 도모가 뜨개 활동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있는 것은 그때의 그 언니들과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뜨개 하는 사람의 마음은 늘 사람을 향해 있다고 느낀다. 이런 마음을 지금 시작하는 뜨개인들도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