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인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뜨태기라는 과정이 있다. 그렇다. 부부 사이에 있는 권태기, 친구 사이에 있는 권태기, 직장 생활에서 오는 권태기와 같이 뜨개 생활에도 가끔 권태기가 찾아오곤 한다. 이것은 나 자신과 너무나도 가까운 활동이라서, 뜨개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뜨개가 아무리 좋아도 가끔은 내 삶을 집어삼킬 듯해서 두려울 때도 있고, 뜨개 작품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배신감이 느껴질 때도 있고, 또 매번 같은 작업을 하거나 같은 재료를 사용해서 지루함이 몰려올 때가 있는데 뜨태기란 그럴 때 슬금슬금 다가온다.
뜨개인의 삶 속의 뜨개 생태계는 실과 바늘이라는 도구, 공간과 시간이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 단위, 뜨개를 하는 마음가짐이나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같은 추상적인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평화롭고 조화롭게 작동한다. 제아무리 각자의 기능들이 복잡하고 개성이 강하다고 해도 각각의 구성요소들은 촘촘한 구조속에서 상호작용하고 의존하면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새로운 종이 탄생하듯 신상 뜨개 도구가 등장하기도 하고, 생물들의 공생관계에서 그러듯이 뜨개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뜨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주하는 생물들처럼 뜨개 하는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뜨개 생태계를 구성하면서, 유지시키는 에너지원이 된다.
이 조화로운 생태계에 등장하는 천적 뜨태기. 뜨태기가 오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작업의 고단함에 비해 완성작이 초라해 보일 때 느껴지는 허무함, 뜨개를 좋아하지 않는 주변인(대부분 가족)의 만류, 건강상의 문제, 다른 취미와 상충되는 것에 대한 곤란함과 같은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으로도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유가 명확한 원인이 있는 반면 뜨개 하는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금까지 잘 사용하던 뜨개 장비가 갑자기 마음에 안 들어서, 뜨개 작업물 옆의 커피가 너무 향이 좋아서와 같은 다소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이유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분위기를 타는 취미이기도 해서 그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뜨태기가 오기도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소한 원인으로도 뜨태기가 찾아오면 뜨개인 삶 속의 활발하게 작동되던 생태계의 톱니바퀴가 멈추고 그에 대적할 에너지를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뜨개 하는 것을 멈추고 급기야는 뜨개에 대한 애정을 의심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소소한 여러 번의 뜨태기가 찾아왔었지만 별로 어렵지 않게 휘리릭 그 시기를 지나갔었다. 지난 10여 년간 내 뜨개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굳건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대형 뜨태기가 방문했고, 그로 인해 나도 별수 없이 한동안 뜨개를 접게 되었다. 뜨개 하는 삶이 내게는 뜨개라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도 행복하지만 뜨개인들과의 교류와 만남으로 인해 내 삶 속의 뜨개의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뜨개 작품을 직접 사용하고 활용하면서 느끼는 만족감도 중요하지만 뜨개인들과의 다정한 만남은 내 삶 속의 뜨개 생태계에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모든 모임을 내 일상에서 삭제시켜버렸다. 매주 월요일 만나는 지역 모임,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친목모임 두 개, 그 외에 친한 지인들과 비정기적으로 만나던 모임들도 모두 취소됐다. 처음 한, 두 달은 팬데믹으로 인한 긴장감으로 인해 모임이 취소되었어도 서운함이나 상실감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록 뜨개 친구들과의 교류가 어려워지자 모임을 못하는 것에 대한 상실감을 넘어 뜨개에 대한 애정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혼자 뜨개를 하려니 모임에서의 활발한 대화가 그리웠고, 내가 작업하는 편물만 보고 있으려니 모임에 나온 멤버들의 각양각색 다양한 편물들을 보고 만지고 느껴보고 싶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자 진행하고 있던 뜨개 편물들은 그저 천 쪼가리로 보이고 바늘은 나무젓가락, 실은 먼지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우당탕탕 시끄럽게 놀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뜨개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은, 많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혼자 땅을 파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물론 뜨개 네트워크는 sns상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긴 했으나 나는 뼛속까지 오프라인형 인간이라서 그것만으로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단체 톡방의 메시지들에 답할 순간을 여러 번 놓치자 그 대화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모두 스킵해버리는 식이었다. 뜨개 세상에서 고립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뜨개를 놓아버렸다.
뜨태기가 오면 나는 일단 뜨개 하던 작업 물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린다. 물론 그저 옆에다 쌓아두고 바라만 보기도 하지만 그 기간이 오래될수록 '내가 할 일을 버려두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서 괴로워지기 마련이다. 뜨개를 치우고 나면 한동안 후련한 마음이 든다. '아, 나도 다른 일에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었어.' '나도 이렇게 늘어져 있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뜨개를 하지 않자 이런 느긋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미루었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추진하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시청에 몰입하기도 한다. 그동안 쉬지 못한 내 손의 관절과 근육들은 편안한 이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시간이 조금씩 흐르다 보면 손가락은 근질근질해지고, 괜히 뜨개용품 쇼핑몰에 새로 나온 신상 실이나 도안이 있는지 기웃기웃하게 되고, '늘어져 있던 두세 시간이면 풀오버의 꽈배기 무늬 하나는 올라갈 시간이었을 텐데', '며칠 게으름 피운 시간이면 숄 하나쯤 완성했을 수도 있겠네.'와 같은 뜨개에 대한 미련과도 같은 애틋한 감정이 솟아오르게 된다. 다른 뜨개인의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완성작을 보며 '아, 내게도 잘 어울릴만한 옷이네?' '내 재킷 위에 이런 숄을 두르면 더 세련되어 보일 텐데.'와 같은 뜨개를 위한 마음의 준비 비슷한 것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 저 옷을 입고 숄을 두르려면 뜨개를 해야 하나?'라는 뜨개를 해야 할 핑계를 만든다. 이 무슨 감정의 널뛰기인가. 넣어두었던 뜨개 작업 물들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꺼내게 된다.
뜨태기를 극복하는 법은 이처럼 특별한 것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소멸되곤 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뜨태기 극복을 위한 촉매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는데 소형 뜨태기는 실이나 바늘을 구입하는 기쁨으로 극복했고, 중형 뜨태기는 뜨개 친구들을 만나서 극복했다. 코로나19로 찾아온 대형 뜨태기는 내 안에 극복 불가한 치명타를 입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뜨개 글을 쓰며 극복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내 삶의 구석구석, 내면의 깊은 부분까지 뜨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었고 뜨개로 인해 일상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상처와 어려움들을 치유하고 있었다. 그것을 새삼스레 깨달았고 뜨개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고 뜨개력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지나다 보니 뜨태기를 극복하려고 괴로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근심이고, 혹시 그로 인해 뜨개용품을 단번에 정리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 뜨개인들 중에 나처럼 뜨태기가 방문하는 경우 뜨개를 잠시 쉬는 경우를 많이 봤지만 아예 놓아버린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기간이 짧던 길던 언젠가는 돌고 돌아 뜨개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뜨개가 주는 평화로움, 안정감, 안락함을 그리워하고 삶 속에 뜨개 생태계를 다시 건설한다. 오랜 시간 쉬었다고 해도 뜨개 방법을 잊힐 것이라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법을 몸으로 기억하듯 손이 뜨개를 기억하고 있다.
뜨태기가 뜨개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뜨개 생태계 보전을 위해 불편하지만 불가피한 구성요소일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천적이 있어야 일부의 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고 조화로운 생태계가 유지되듯이 뜨태기를 지나며 삶에 활력과 즐거움을 주는 뜨개의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되고 뜨개를 온전히 즐기는 내면의 평화로움을 되찾게 된다. 이 시기에는 실과 장비의 재정비도 할 수 있게 되는데 나의 경우는 실구입의 자제, 도안이나 뜨개 도서의 구입의 자제와 같은 긍정적인 작용도 해주니 간혹 뜨태기가 방문해주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이처럼 천적마저 반길수 있는 뜨개 생활이라니 참으로 뜨개는 행복한 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