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썩히지 마. 판매해 보는 것은 어때?"
"그냥 취미로만 즐기지 말고 생산적인 일로 발전시켜."
"좋아하는 것을 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봐."
나의 뜨개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쑥스럽고 어색했지만 나의 취미가 경제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되었다는 말로 기분 좋게 해석해서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내가 몰두하는 일의 가치를 누군가 알아주길 원했다. 그리고 뜨개가 그저 킬링타임을 위한 혼자만의 놀이가 아니라는 증명을 해 보이고, 동시에 인정을 받고 싶기도 했다. 나의 가슴을 두드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래, 바로 지금이 도전하기엔 최적의 타이밍이야.'
한참 나의 열정이 불타오르던 그때에 동네 맘카페에서 플리마켓을 연다는 소문을 들었다. 엄마들의 재능기부와 지역사회 내 교류를 활성화 하자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행사였다. 그 당시 나의 아이들이 어린 게 마음에 걸려서 참여를 망설였지만 기회는 왔을 때 주저하지 말고 잡아야 한다. 언제라도 내게 개인 사정이란 있을 것이고 지금 참여하지 않으면 계속 미루게 될 것 같았다. 어설퍼도 좋다, 몸이 고되어도 좋다,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다. 나에게 주문을 걸었고 첫 플리마켓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세미, 어린이용 동전지갑 또는 사탕 지갑, 머리핀, 파우치, 가방, 발매트 등. 작은 소품 위주로 준비했다. 이는 오가며 구경하다가 기분전환으로 구입해도 부담스럽지 않을 금액의 아기자기한 물건이 플리마켓 특성상 잘 팔릴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신청을 하고 마켓이 열리는 날까지 나는 쉴틈 없이 뜨개를 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혼자서 준비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다. 테이블 위가 휑해 보이면 안 되므로 정말 열심히 떴다. 어려운 것은 뜨개가 아니라 부족한 시간이었다. 잠을 줄였고 육아와 살림 중에 생기는 잠시의 틈을 이용해 뜨개를 했다. 뜨개는 기계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롯이 손으로만 완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이다.
나의 열정은 초인의 능력을 발휘했다. 꽤 많은 작품을 완성했고 나는 테이블을 가득 채울 상품들에 뿌듯했다. 어려운 상황에도 이렇게 해낼 수 있음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준비된 뜨개 상품 하나하나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작은 소품이지만 이렇게 모아놓으니 뜨개에 평생을 바친 어느 예술가의 전시회라 해도 될 것 같았다. 예술이 별건가, 영혼을 담으면 되지. 이 작품들에는 나의 영혼과 함께 손목과 시력을 갈아 넣었다.
문제는 가격을 책정하는 일이었다.
수세미 1개의 원가 1,000~1,500원, 뜨개 한 시간은 1시간.
머리핀 1개의 원가 1,000~1,500원, 뜨개 한 시간은 30분.
파우치 1개의 원가 8,000~10,000원, 뜨개 한 시간 2~3시간.
발매트 1개의 원가 15,000원, 뜨개 한 시간 2시간.
가방 1개의 원가 25000~30,000원, 뜨개 한 시간 2~3시간.
자, 얼마를 받고 판매해야 합리적인 것일까 고민을 했다. 원재료비+최저시급? 원재료비+약소한 수고료? 아니면 그저 원재료비? 이전에는 뜨개를 하며 수공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판매를 위해 뜨개를 하고 최저시급을 대입해보니 밤낮없이 뜨개에 매진한 무수한 시간들과 나의 노고에 서글퍼졌다. 매일 밤 불 켜고 뜨개 하는 날 보며 남편이 혀를 끌끌 찼던 것도 생각나고, 보란 듯이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 기대했던 것도 떠올랐다. 열심히 뜰 때는 생각해보지 못한 현실적인 고뇌였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남편에게 의견을 물으며 점점 상품 가격은 내려갔다. 열정은 가끔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포장을 벗기자 경제논리와 자존감이 싸우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렴하고 독특한 제품을 쇼핑하기 위해 플리마켓을 찾을 것이다. 핸드메이드 페어와 같은 예술적 수공예 제품의 전시와 홍보를 위한 장이 아니고서야 누가 동네 플리마켓에서 몇만 원을 주고 뜨개 작품을 구입하겠는가. 작정하고 입 발린 소리하며 판매하지 못할 소심한 성격의 나는 마음속으로 타협을 한다. '그래, 누가 이 노력을 알아줘,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장에서 뚝딱 찍어내는 상품과 다름없을 거야.' '내게 좋은 경험이고 이벤트였어.' '최저시급은 무슨, 원가만 받고 판매해도 팔릴까 말까인데.' 내 시간과 노동력이 하찮아지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팔아야 했다. '그래 박리다매로 가보자. 1점당 500원만 남아도 남는 거야.' '판매 수익보다 판매수량으로 승부를 걸어보자.' 고민을 하다가 수세미는 3,000원, 머리핀 3,000원, 파우치는 8,000~10,000원, 발매트 15,000원, 가방은 20,000~30,000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저렴하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나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피땀눈물이 어린, 자식 같은 제품을 헐값에 넘기는 마음이었다.
이처럼 뜨개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플리마켓에서 인정받으려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플리마켓에 나가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의 기준은 판매량에 달려 있다. 즉 돈이 많이 벌려야 한다는 것이다. 판매를 위한 장에 나가려면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물건을 적정한 가격표를 붙여서 들고나가야 하고 많이 팔아야 한다. 그렇다면 핸드메이드 제품 판매자는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하는가. 수공예의 가치일까? 판매 수익일까? 애석하지만 그날의 결론은 판매 수익이었다.
판매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성공의 요인은 지인판매였다. 동네 플리마켓이라서 지인들이 많이 들러주었고 나의 노력을 칭찬하고는 한두 개씩 구입해서 돌아갔다. 물론 나는 가격을 할인해주기도 하고 구입한 물건에 덤을 얹어서 주기도 하였다. 친한 지인들을 많이 만나서 즐거웠고 하루 종일 웃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플리마켓을 준비하며 줄인 잠의 양, 뜨개 하는 데에 쏟은 나의 노동력, 작품의 소소한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인 나의 세심함들 때문이었다. 나의 열정에 정확한 가격을 메긴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지만 그 가치를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서운했다. 또한 나의 자부심의 테이블이 만남의 장을 열기 위한 매개로 더 큰 역할을 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플리마켓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던 뜨개 작품들에 대한 자부심과 자괴감의 양가감정에서 자괴감의 무게가 더해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내가 뜨개를 즐기는 것 이상을 취하기엔 아직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뜨개의 바다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할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뜨개 모임 지인들과 함께 다시 플리마켓을 나가게 되었다. 여러 명이 같이 참여하는 행사라서 혼자 준비하는 부담감도 없었고, 뜨개와 관련한 교류와 활동이 코로나 19로 지친 일상에 활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역시나 한 달의 시간 동안 뜨개를 하느라 고생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인 찬스를 쓰지 않아서 플리마켓의 판매는 미진했다. 그날 벌었던 나의 수익은 마켓에서 사 먹은 점심식사와 저녁에 가족들과 먹은 치킨값으로 탕진했다. 그러나 나는 복잡한 마음이었던 이전과는 달리 ‘아, 좋은 경험이었다.’ 하고 웃으며 마무리 지었다. 첫 플리마켓과는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는 내 노력에 대한 가치를 판매에 두지 않으려 했고, 가격 책정에서 핸드메이드 제품의 가치를 폄하하지 말자는 나의 소신을 지켰다. 뜨는데 고생했지만 이전의 플리마켓에서처럼 판매를 위한 뜨개가 아닌, 뜨개 자체를 위한 뜨개를 했다.
뜨개를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플리마켓이 참여한 경험은 뜨개로 인한 매운맛을 본 몇 안 되는 기억 중의 하나이다. 이런 경험은 취미를 강력한 애정으로 유지하는 내게 가르침을 준다. 플리마켓에 나가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느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공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작업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것에서부터 뜨개를 향한 애정과 노력에 대한 자부심이 비롯되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뜨개에 대한 가치는 뜨개인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