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수필]
오른쪽 눈 하나로 살아야 하는 나에겐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다래끼다.
형부가 10년 전쯤 주제원 자격으로 중국 칭다오 파견을 받아 친정언니 가족이 중국으로 잠시 이민을 나간 적이 있었다.
가족이 그리웠던 친정언니는 중국에 들어와 몇 달을 같이 보내보자 권유를 했다.
당시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을 때고 원어민에게 교육을 받는데 한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수업료로 배울 있다는 기회에 마음이 흔들렸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고민하던 마음을 결단하고 칭다오 한 달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중국의 화려함에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러 시내를 돌아다녔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과 신비한 향신료 베인 음식들
공원에 모여 춤추듯 기체조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
바지에 가랑이가 벌어져있어 어디서든 쉽게 용변을 보는 아기들
비닐봉지에 뜨거운 차를 받아 빨대로 마시는 사람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신기함은 끝이 없었다.
문제는 이주쯤 흐른 후 터져버렸다.
근처 석탄공장이 문제인지 까만 먼지가 집안 온 바닥에 훑어졌다.
물걸레질을 매일 해도 아침마다 반복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의 오른눈에 난생처음 다래끼가 생겨버렸다.
간지럽던 눈앞에 붉고 볼록한 고름주머니가 올라왔다.
중국에 살고 있는 주변 한국인들의 근거 없는 무서운 괴담이 들려왔다
'중국 병원에 갔더니 마취 없이 수술을 하더라'
'발목을 접질려 갔는데 복부 개복수술을 시켰다'
'마취제가 비싸서 물을 희석해 마취는 백발백중 중간에 깨어난다'
근거 없는 부풀어진 루머처럼 다래끼는 점점 부풀어 올랐고 언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약국을 찾아주었다.
과거의 한국처럼 약국에서 약을 처방하고 조제해주는 곳이었다.
중국 택시를 타고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한인 약국의 약사는 나의 눈을 보자마자 진단을 했다.
"지금 가라앉는 약을 먹기는 늦었고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서 한국에서 째는 수술받으세요."
바로 알아본 가장 빠른 귀국 비행기는 성수기라 닷새는 기다려야 할 상황인데 통증과 두려움이 쉴 새 없이 밀려왔다.
두려움이 겹치니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은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엄마였다.
전화기 넘어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는 마음이 메이는지 훌쩍였다.
"내가 죽을 때 너한테 눈 하나는 주고 가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엄마가 계속 기도해볼게"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괜한 걱정을 시킨 것만 같아 되려 달래고 안심시켜 전화를 급히 끊었다.
순간 민간치료방법이 떠올랐다. 속눈썹을 뽑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의 티 안 내려 낮은 음성이 생각나서 흐르는 눈물인지 속눈썹이 뽑혀 나오며 따가워 나오는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손가락이 떨렸다. 눈물이 자꾸 고여 속눈썹이 잡히지 않았다.
엄마의 기도 때문인지 속눈썹 뽑은 곳을 따라 고름이 흘러내렸다.
두려움과 안도의 마음이 같이 흘러내렸다.
고름이 터져 나와 식염수로 흘려내며 '감사합니다'가 쉬지 않고 입에서 나왔다.
작은 다래끼 하나인데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소중히 해야 할 것에 대해 뒤늦게 소중함을 알 때가 있다.
다 갖지는 못하더라도 가진 것만큼은 감사함을 잊으면 안 된다.
다래끼는 지금도 주의 대상 1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