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쉼 수필]

by stamping ink

나는 오른쪽 눈만 시력이 있다.

왼쪽 눈은 쓸모없이 잔상만 비쳐 오른눈을 괴롭힌다.

만취한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이 뱅글뱅글 돈다의 느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어린 시절 나의 별명이라곤 짓궂은 아이들이 배려 없이 불러대는 '사팔 띠기'였다.

혹은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란 시의 의미도 모른 채 '외눈박이'라 부르기도 했다.


무례한 호기심들을 피하려 나름 찾아낸 방법이 앞머리 기르기였다.

앞머리를 길게 길러 왼눈을 가리고 다녔다.

남들에게 숨기기 위해, 나 자신이 숨기 위해 앞머리를 내렸다.


계속되는 두통이 괴롭혀 두통약을 달고 살지만 마음은 아프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좌절하거나 슬픔을 덜어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꿈을 알게 나서야 세상이 빛났다.


좌절 속에서 마음먹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궁금증으로 영원히 남는 것도 있다.

경험한 적 없는 시각적 감정은 끝까지 알 수 없을 것 같다.



매직아이

90년대 초 매직아이가 유행이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은 이 신기한 현상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난 움츠려 든 나를 숨기느라 읽지 못하는 걸 읽는 척했다. 읽을 수 있다고 해야만 했다.

매직아이 속에 숨겨진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 취급을 했다.

그 대상이 되기 싫어했다.

낙서 같은 반복된 패턴 사이를 멍하니 보면 글자가 떠오른다고 했다.

사람들의 눈이 코 쪽으로 검은 눈동자가 몰린 이상한 표정을 지어댔다.

이것저것 보인다고 소리칠 때마다 조그맣게 "나도 보여"라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패턴 속의 암호 같은 그림들이 나에겐 한 번도 보인 적 없다.


3d 입체영화

시야 폭이 좁은 나는 극장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자리를 잡아도 제일 뒷자리를 잡아야 화면이 모두 눈에 담기기도 하거니와 자막을 보는 것도 곤욕스러울 때가 많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시절, 입체영화가 성행했다.

잦은 회식이 사회생활의 한 부분이고 불참은 용납하지 않는 선배들의 선택으로 영화관 회식을 추진하였다.

경증장애를 알리고 입사하기엔 장벽이 높아 일반전형으로 입사했던 회사였다.

같은 팀 사람들은 당시 인기 있던 영화를, 게다가 입체영화로 본다는 것에 흥분했고 난 그 분위기에서 비켜 나올 수 없었다.

어두운 상영관에서 야맹증을 티 내지 않고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에게는 두 개로 겹쳐 보이는 왼눈 같은 화면만 계속되었다.

극장 안의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하고, 웃을 때 난 그냥 멍하니 화면만 보았다.

울렁이는 화면에 귀를 열고 2시간가량 영화를 듣고 나왔다.



내가 못하는 일도 있지만 내가 즐거워하는 일도 많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한다.

노래 듣기도 좋아하고 운전도 한다.

하지 못하는 것에만 갇혀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다.

강한 햇살이 내리쬐면 모든 사람들은 인상을 쓰며 잘 보려 나처럼 한눈을 뜨고 세상을 본다.

반쪽으로 보는 세상이라고 별다른 것은 없다.

그걸 알고 여린 마음을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마음의 상처는 누구나 있고 그 상처를 낫게 덮을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나뿐이다.

오늘도 반쪽으로 보는 반짝이는 세상을 행복하게 바라보려 한다.

2021년 반짝이던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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