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기

[쉼 수필]

by stamping ink

'이게 글이라고? 이건 나도 쓰겠다.'


라떼~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하교시간은 교문까지 장사치가 늘어져있었다.

달고나 좌판이 깔리고 노란 병아리를 한 박스 가득 싣고 온 좌판도 열렸다.

퐁퐁이라 불리던 이동식 트램펄린이 설치되는 날이면 매서운 감시하에 입장 시간을 적은 후 주인아저씨의 허락이 떨어져셔야 맘껏 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엄마에게 허락받은 몇 백 원을 손에 쥐어야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대부분의 날은 퐁퐁 위를 뛰어노는 친구들을 안전그물 밖에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뽑기에서 대왕 잉어 사탕을 뽑을 운 좋은 이를 구경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5월이 어느 날, 새로운 작은 좌판이 펼쳐졌다. 가끔 오는 학습지 홍보는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 귀한 연필 몇 자루씩 쥐어주며 신청서를 쓰고 가라 했다.

'전국 소년소녀 글짓기 대회'

연필이 탐이 났지만 고민에 빠졌다.

문제는 장소가 인천 공설운동장이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를 둔 친구가 언니 따라 제물포나 동인천도 제법 다녀보았다며 자신이 버스를 탈 줄 아니 함께 가자했다.

많은 아이들이 연필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쓰러 몰려왔고 이름을 쓰면 꼭 와야 한다는 접수자의 말에 안 가면 혼이 날 것 같아 친구를 따라가기로 했다.


토요일의 공설운동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진행요원들이 입구에서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참가 선물 몇 가지와 원고지가 담겨 있었다.

가족과 나들이 삼아 온 아이들은 여기저기 그늘진 곳에 돗자리를 펼쳐두고 소풍처럼 즐겼지만 나와 친구는 겨우 시멘트 바닥에 만족했다.

운동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간단한 식전행사가 열렸고 주제가 던져졌다.

세 가지쯤의 주제가 던져졌는데 그중 제일 마음에 드는 주제가 '우리 동네'였다.

글쓰기에 푹 빠져 쭉쭉 써 내려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붐비기 전에 급히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갑자기 아이들이 나를 찾아댔다. 방송국에서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한 반에 육십 명은 족히 넘는 숫자가 있었으니 한 명씩만 내 이름을 불러도 온 교실에 함성 같은 소리가 들렸다.

며칠 후 나는 우수상을 받았다.

신문사 주최라 신문 한 귀퉁이에 수상자 이름도 올라왔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신문에 이름이 난 사람이 있다고 집안 어르신들도 부모님께 전화를 하셨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이 맞았다.

마음에 용기라는 게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꿈이라는 씨앗을 품으려 했다.


과시하거나 거만해지지도 않았는데 제일 가까이 있던 이가 내게 말했다.

"이게 글이라고? 이건 나도 쓰겠다."

간단히 아주 쉽게 제일 약한 부분을 건드려 싹튼 꿈을 꺾었다.

장애라는 굴레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나에게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몰랐다.


장애와 그 말이 족쇄 되어 나는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갔다.

그저 잔재주라고 치부하고 타인의 글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했다.


마흔이 돼서야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 시작하고 늦었다 생각한 도전을 했다.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있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꿈을 꺾은 이에게 물었다.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냐고.

"여려 터져서... 오기로 살라고 하는 말이었지. 다 너를 위해 한 말이었어"

"오기가 아닌 포기하게 만든 말이었어. 그 말을 극복해 내는데 난 오랜 시간이 걸렸어."

의도와 다르게 어린 살에 낸 생채기 같은 상처에서 이제야 나를 지켰다.


좋은 사람이, 따스한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나 스스로 나를 조심하고 경계하려 한다.

모두에게까지는 아니라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어디서든 나도 모를 상처를 주고 후회하지 않길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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