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세탁소

[쉼 수필]

by stamping ink

갓 세탁한 냄새가 나는 외투를 걸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무거운 외투가 어깨를 눌렀지만, 주머니 속에 만져지는 작은 종이의 바스락 거림에 맞추어 발걸음엔 힘이 생긴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버스가 도착했다. 멈춰진 버스에 올라 겨울 햇살이 데워둔 포근한 자리에 앉아 손끝에 닿는 종이를 꺼내 들었다.

잠시 펼쳐 둔 작은 종이를 다시 접어 주머니 속에 넣고 문자를 찍었다.

‘이번에 쓴 글을 귀사 메일로 보냈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글로 읽히길 바랍니다.’

보낸 편지함엔 상대방이 읽지 않은 나의 메일들이 많았지만 용기 내어 발송을 눌렀다.



한 달 전, 나의 모습은 패잔병이었다. 투고의 글을 읽고 잔재주로 운 좋게 받은 상이라는 날 선 서평에 움츠려있었다. 겨울이 뿜어내는 한기에 매달린 냉기는 여기저기 기침 소리를 만들었다. 유리창 밖의 하늘은 추위를 가늠하지 못하였지만, 이불속에서 빼꼼히 내밀어 본 발가락은 추위에 시려 얼른 이불속으로 숨어들었다. 무기력이 나의 마음도 얼어버렸다. 얼굴만 내밀어 방 안을 둘러보았다. 계절 바뀐 옷이 아직도 옷걸이에 서늘하게 걸려있었다. 긴 한숨을 섞어 몸을 일으켜 세탁물을 챙겼다. 365일 열려있는 무인 세탁소엔 세탁물을 작은 사물함에 넣고 결재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라 사람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외출을 위해 플라스틱 알이 끼워져 있는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코끝에 걸쳤다. 이리저리 나의 의지와 달리 움직여대는 왼쪽 눈을 앞머리 내려 숨겨두고 모자를 눌러썼다.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은 있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세탁소에 들어섰다. 따스한 온풍기가 빨개진 코에 닿자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목욕탕 비밀번호가 달린 작은 옷장처럼 열고 가져온 세탁물을 집어넣었다. 나의 모습처럼 비비 꼬인 옷을 그대로 처박듯 구겨 넣어버렸다. 옷을 담아온 커다란 쇼핑백을 뒤집어 바닥에 탈탈 털어버리다가 지난번 세탁 요청을 했던 옷이 떠올라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세탁이 완료되었습니다. 5번 캐비닛 비밀번호는 2319입니다. 오늘도 저희 무인 세탁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자가 도착한 지 오래되었지만 잊은 채 지냈었다. 캐비닛 안에는 단정하게 접혀있는 옷을 쇼핑백에 담았다. 조끼, 점퍼, 카디건... 붉은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카디건...


‘재수 없는 카디건.’

혼자 웅얼거렸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었다. 거리를 다니다가 옷가게 마네킹에 입혀있는 카디 건보였다. 발견했을 때 두근거렸고 매장에서 입어봤을 때 설레던 옷이었다. 작은 가게치곤 제법 신상과 하나뿐인 재고라며 영업하는 직원의 말에 지갑을 열었다. 다시 찾아와 줄 거라 믿는 중요한 날 입으리라 다짐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격표도 떼지 않고 좋은 기분에 카디건을 걸치고 컴퓨터를 켰다. 함께 글 쓰는 응원의 인터넷 글 창고에 나의 마음을 남겨두고 싶었다.

‘장애인이길래 대단하신 줄 알았는데. 6급이네? 외국에서는 6급은 장애로 등록도 못 하는 일반인인데 장애를 이용하는 거 아님?’

장애인의 삶에 대해 짧게 쓴 글 아래 비수 같은 댓글이 남겨져있었다. 일순간 손끝이 멈추었다. 머리도 멈추었다. 처음 보는 아이디의 비웃음이 마음을 난도질했다.

당황하니 잊었던 버릇이 나왔다. 빈 노트 위로 볼펜이 허공을 가르며 입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써 내려갔다.

‘장애인의 고통을 네가 알아? 매일 아침 물체 두 개가 떠다니고 어지러워서 매일 두통약을 영양제 먹듯이 먹어대고 피곤할 때 돌아가는 눈동자를 사람들이 걱정하는 척 신기하게 다가올 때의 기분을 네가 알아? 안 써, 안 쓰면 되잖아!!!.’


부들부들 떨던 손으로 잡은 볼펜은 작은 나뭇가지처럼 툭 부러졌다.

낙서된 종이를 찢듯 구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성급히 일어나려 하다가 테이블에 올려진 토마토 주스가 카디건에 튀었다. 토마토 주스 자국 위로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려졌다.



둘둘 말아 맡겨진 세탁물 사이에 그날의 카디건이 끼어있었다. 다시 상처의 단어들이 머리를 휘돌아 다녔다. 신경질적으로 카디건을 집어 드니 비닐봉지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봉지 안에는 작은 쪽지와 내가 구겨버린 종이, 부러진 볼펜이 담겨있었다.

‘얼룩을 깨끗이 지워드리려 노력했지만, 섬유에 노출이 심하여 옅은 자국이 남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한 얼룩도 점점 흐릿해지다가 사라집니다. 포기의 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용기 낼 수 있는 것은 당신입니다.’

쪽지를 통해 한참을 서서 읽고 또 읽었다. 한 글자마다 주저앉았던 나를 안아주려는 것만 같았다.

‘그것 때문에’라는 핑계를 버리고 나를 마주 보게 했다. 불편 접수를 위해 만든 작은 메모지에 글을 남겼다.

‘남의 시선에 저를 잃을뻔했습니다. 제가 바보 같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종이를 접어 불편 접수함에 넣고 세탁소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가슴 깊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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