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숙 완숙

[한식조리사] 제6장 수란

by stamping ink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내리쬐는 햇살에 모두 땀에 흠뻑 젖어 실습실로 들어왔다.

마른하늘은 바닥에 떨군 물기 하나 용서치 않고 날려버릴 듯한 날이었다.


"찜통더위네요."

나이가 지긋하게 든 중년의 수강생이 선캡을 벗으며 실습실로 들어섰다.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머니들이 운동을 할 때 얼굴이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려 쓰는 검은 선캡에 화려한 옷을 입은 그녀는 젊은 시절 인싸라 불리고도 남아 보였다.

그녀의 패션은 화려함의 극강이었다.

진짜 금이라면 어두운 밤 골목길이 두려울 정도로 두껍고 굵은 순금 목걸이와 팔찌로 휘감겨 있었고,

티셔츠엔 재물복을 상징한다는 부엉이가 그녀의 속옷과 비슷한 위치에 그려져 있다 보니 몇 안 되는 남자들은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 시선을 떼기 바빴다.

여성스러움을 한껏 뽐낸 핑크 바지의 엉덩이에도 반짝이는 보석이 한아름 박혀 실습실 형광등 조명에도 그녀는 번쩍거렸다.


수업이 시작되고 수란을 만들기 위해 실습 재료로 계란이 각자 한 개씩 쥐어졌다.

국자에 기름을 둘러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에 살살 열을 올리고 계란을 국자 위에 올렸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물속에 잠시 담그면 겉 흰자만 알맞게 익고 노른자는 반숙으로 익혀 터지지 않게 그릇에 내어내는 과정이었다.


"으.. 터졌어."

"악. 어떡해."

흡사 게임을 하듯 여기저기 실패자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호들갑스럽게 패션여왕이 소리 질렀다.

"와. 된다. 된다."

그녀의 수란은 예쁜 모양으로 속이 터지지 않고 그릇에 무사히 안착해있었다.

이미 실패한 이들이 그녀의 마지막 과정을 함께하러 그녀 곁에 둘러섰다.


고명을 뽐내며 올리며 그녀는 손을 휘저었다. 순간 팔찌 줄이 젓가락에 닿아 노른자를 찔렀고 수란은 무참히 노른자를 터트리며 장렬히 퍼져버렸다.

첫 번째 성공자로 시선을 모았던 한순간이 사라졌다.

모두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돌아갔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그릇을 밀어버렸다.


시험시간 배분상 짧은 시간에 끝을 내는 수란이지만 성공자는 희박했다.

다들 집에서 연습하라는 강사의 지시에 따라 실수 한 부분을 되뇌며 수업이 마쳐졌다.

패션여왕 옆자리의 차분한 비슷한 연배의 짝꿍이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시작할 때 분명 패션여왕이 화려하게 앞서 나갔는데 결과는 중년 짝꿍의 승리였다.

"수란이란 참 별로지 않아요? 속에 무슨 색이 들었는지 안 보여주고 살짝 흰자로 가리고 말이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보여주라고 있는 건데 참 음흉해요."

성공한 사람에게 축하해 주기보단 비꼬아가며 중년 짝꿍을 흰자 취급했다.

그녀의 의도적으로 흔들어대는 팔찌가 요란히 반짝였다.


학원을 모두 나서고 작은 승용차에 선캡을 쓴 패션여왕이 차에 올라 먼저 자리를 떠났다.

뒤이어 중년 짝꿍이 외제차를 몰고 우리 앞을 지나치다 창문을 내렸다.

"오늘 너무 덥지요? 지하철역 방향으로 갈 건데. 같은 길이면 태워드릴까요?"

"어? 정말요? 감사합니다."

너무 뜨거워 한걸음도 버겁던 차라 그녀의 제안에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수란 성공하신 거 축하드려요. 언제나 차분하게 잘 만드시는 것 같아요. 부러워요."

"뭘요. 오늘은 운이 좋았나 봐요."

"옆자리 분은 아마 부러워서 그런 걸 거예요. 저라면 아마 한판 했을 거 같은데 기분 나쁘지 않으셔요?"

"뜨겁다고 같이 뜨거워지면 안 되지요. 적당히 속 익은 노른자의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힘이 있어요. 저는 노른자를 좋아해요."


그렇게 뜨거운 물속에서도 적당히 유지하는 그녀의 반숙 노른자 내공에 반해버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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