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실습이 시작되기 전, 강사는 교재로 실습 이론 강의가 시작된다.
교재 속 실습 메뉴라 적힌 육원전 그림이 낯익었다.
강사가 설명하는 육원전을 나는 동그랑땡이라 알고 지냈더랬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시절에 부모님의 경제사정은 모른 채 철없이 반찬투정을 했었다.
친구 도시락의 소시지 반찬이 부러웠다.
며칠을 투덜대도 도시락 반찬은 변하지 않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단골 메뉴인 콩자반과 볶음김치, 혹은 단무지무침이 보였다.
소리 나게 뚜껑을 덮어두고 집을 나왔다.
막상 두고 온 도시락 때문에 집에 돌아가 꾸중들을 생각에 학교의 가는 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배고픔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집안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조용했다.
평소처럼 난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변한 것은 다음날 도시락 반찬에 담겨있던 동그랑땡이었다.
시판용이 가격이 비쌌던 터라 두부와 고기를 으깨 계란으로 부쳐낸 소시지보다 맛있어 보였던 그것.
실기시험 출제문제에서 만난 육원전은 추억 속 도시락의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추억과 조우할 짧은 여운도 '치대기' 앞에서 사라졌다.
육원전을 배우느라 다짐육과 물기 뺀 두부를 열심히 쳐댔다.
"이 놈의 육원전~"
누군가 민속 노동요 가락을 개사해 웅얼거리는 통에 한바탕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시험 제출용 6개에 예비용으로 1개를 더 만들어 계란물을 입혀 열기 오른 프라이팬에 안착시켰다.
중불로 아주 뜨거운 프라이팬은 아니지만 강사의 합격 필살기를 알려주었다.
동그란 육원전의 옆면을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듯 프라이팬 위에서 굴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에선 앞 뒷면이 제법 익어 뜨거운 상태로 육원전을 잡아 굴려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실습생 중 절반은 30대 이전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 윗 나이 연령대였다.
"앗..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젊은 층의 실습생들이 프라이팬 위의 전을 집어 굴리기는커녕 전을 집어 세우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에 반하여 중년 이상의 실습생들은 중불로 뜨거워진 프라이팬 자체를 손가락을 누르며 전을 굴리는 기술을 보였다.
제출물은 역시 중년 실습생들의 완성품이 많은 칭찬을 받았다.
"뜨겁지 않으세요?"
실습복을 벗으며 제일 동그랗고 예쁘게 구워낸 중년 실습생에게 물었다.
"갱년기가 되고 이젠 몸이 고장 나니 수족 냉증이 찾아오더라고요. 나도 한때는 식당 공깃밥 뚜껑도 못 열었더랬죠."
"아. 몸이 안 좋아지셔서 뜨거운걸 못 느끼시는 거였어요?"
"아마 엄마들이 나이가 들면 모두 같을 거예요. 많이 아픈 나이지만 말은 안 할 뿐인 거지요."
"저희 엄마도 그러셨을까요? 워낙 아픈 데 없다고 하셔서..."
"엄마들은 자식을 걱정하지 자식한테 걱정시키지는 않으려 하지요."
학원에서 몇 정거장만 지나가면 친정집이었다.
수업을 마치니 더욱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나 놀러 왔어. 뭐해?"
친정집은 고소한 냄새가 한가득이었다.
"어쩐 일로 왔어? 전화나 하고 오지. 그럼 반찬이라도 해 놨을 텐데."
주방에서 분주한 엄마 옆에 서 보았다.
커다란 냄비 가득 참깨를 나무주걱으로 볶다가 알알이 잘 익으라고 손을 넣어 뒤적거리고 있었다.
"엄마. 안 뜨거워?"
"뜨겁긴. 뭐가 뜨거워. 이거 식으면 담아줄게. 가져가. 국산 참깨라서 엄청 고소하다?"
엄마의 손을 빤히 보는데 엄마의 거친 손이 나의 손을 잡아채었다.
"우리 예쁜 딸, 요리 배우느라 손이 엉망이 되었네? 바늘이랑 칼을 쥐어주면 시집가면 고생한다고 하는데 스스로 칼 잡는 일을 배워 어쩌누. 이거 봐. 물기 많이 닿았구나? 손톱 끝이 갈라졌네. 속상하게."
엄마의 둥글어서 끝이 없는 사랑에 목이 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