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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아이
[쉼 수필]
by
stamping ink
Jul 11. 2021
언제부터 나의 겁쟁이 시절이 시작되었을까?
'철 좀 들어라.'라는 어른들의 농담 섞인 농을 너무 깊이 생각한 것이었을까?
아프면 아프다. 속이 상하면 속상하다고 소리쳐 본 적이 없었다.
마음속의 두려움은 아주 조용히 나의 모든 것에 관여했었다.
몇 해전,
큰아버지의 장례날이었다. 남은 남자 형제 중 마지막 형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는 알코올의 도움으로 슬픔을 잊으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저녁이 되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더 이상 지체를 했다간 대중교통이 끊어질 것에 먼저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 찰나 아버지는 나를 보고 외쳤다.
"막냇동생. 이제 왔냐? 다들 기다렸다."
아버지는 나를 붙잡고 아직 먼길이라 도착하지 않은 고모로 착각하고 나를 옆으로 끌어앉혔다.
막내 고모와 나는 외모가 많이도 닮았다. 막내 고모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보면 놀라곤 했다.
때마침 조문을 마치고 가족들이 모여있는 곳에 막내 고모가 도착했다.
작은 해프닝을 듣고 고모는 나를 붙잡고 웃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과 함께 있는 자리도 불편했고 피곤함에 눈도 안 좋아서 누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식탁 아래 모아 앉은 나의 발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모는 나에게 몸을 기대였다.
중년의 여인
이지만 특유의 애교 섞인 목소리를 냈다.
"나 아가씨 시절에 네 엄마인 줄 알고 오해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참 좋았어. 네가 나 많이 사랑한다고 매달렸거든. 내가 너희 집에 같이 살 때는 나 제일 좋아한다고 했
는데 기억 나?"
그 시절 '우리 집'이라는 단독주택이 생겼을 때 더부살이 가족들이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사촌오빠, 외사촌 오빠... 우리 집에 길고 짧게 함께 식구가 되었다가 떠나곤 했다.
아버지의 형제 중 막내 고모는 시집가기 전까지 우리와 가장 오랜 식구였다.
어린 개구쟁이 시절이 떠오르는지 막내 고모는 나를 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 더 꺼내었다.
참 개구쟁이였어.
어느 날, 집에 스님이 쌀을 시주받으러 동네를 돌아다녔거든 새언니는 기독교 신자였기도 했고 정말로 집에 먹을 쌀도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었지. 나도 엄마랑 오빠네 집에 더부살이했으니 일곱 명이 방 세 칸을 나눴으니 먹는 것인들 넉넉했겠니?
끼니 중에 국수는 많은 횟수를 차지했고 육수도 내지 못하고 멀겋게 끓여낸 국물에 말아서 먹던 국수가 퇴근하고 나오면 늘 단골 저녁식사였지만 아무도 불만을 갖진 않았어.
그냥 허기를 달래는 용도였고 배고픔을 지나가게 하는 한 끼였
지.
내가 그나마 직장생활을 하니 그래도 밖에서 먹는 음식을 조금 챙겨 오면 너희 형제들이 그리 새끼 새처럼 입 벌리고 좋아했지.
그중
네가 다섯 살쯤 될 때 본능적으로 가난을 알게 되었나 봐.
시주를 받기 위해 스님이 메고 다니던 쌀주머니를 대문 앞에 두고 다른 집을 돌아다닌 것을 보고 어린것이 작은 손바닥 가득 쌀을 담아 집 쌀독으로 옮겼나 봐.
작은 손 두어 번 퍼 나를 즈음에 스님이 다시 집 앞에 돌아왔고 바닥에 떨어진 쌀알 따라 범인을 찾아냈지.
엄마가 누구냐며 스님이 불같이 화를 냈어.
울먹이며 엄마가 혼내는 것이 무서워 울던
네가 때마침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발견했어.
너랑 나랑 외모가 많이 닮았잖아?
"엄마~"
나를 향해 엄마라 외치며 달려오는 거야. 스물 갓 넘은 아가씨가 대꾸할 용기도 없어서 얼굴은 벌게져갔지.
스님은 의심 없이 아가씨인 나에게 눈물이 빠지게 자식 교육에 대해 훈계를 어찌나 쩌렁쩌정 해대던지.
집에 돌아와 펑펑 우는데 요것이 나한테 그러더라?
"고모. 미안해. 고모가 나 미워해도 나 고모 사랑해"
옛이야기를 마친 고모가 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밝았었어. 네가 그리 참 밝았어. 좁지만 긴 골목길에 접어들면 네 웃음소리가 골목 가득 울렸었어."
고모는 체했을 때 내려가게 하려 등 두드려주듯 나의 아픔을 내려가라 등을 쓸어주었다.
고모의 손길 따라 전해지는 위로에 진심의 마음을 읽었다.
자라며 누구든 지나쳐가든 고통이 있지만 그것이 상처되지 않길 바랜다.
나의 아픔은 너무 깊고 주변에서 장난치듯 베어내고 들춰내어 분탕질된 마음이 잠잠해지지 못했더랬다.
스스로 한동안 마음을 숨기고 살았다. 빛이 존재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눈을 뜨게 된 것에 감사한다. 혼자 자라지 못하고 도움 준 모든 일들과 모든 이가 있어서 몸을 일으켰다.
나의 마음속 아이가 다시 밝게 웃으며 행복하게 꿈꾸며 자라나게 마음을
품
는다.
2021 비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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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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