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내어주기

[쉼 수필]

by stamping ink

생각보다 나처럼 새를 겁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새에 홀로 놀라 가능한 멀찍이 돌아가려 애쓴다.

어떤 위협도 주지 않는 것을 알지만 언제부터 마음 깊이 두려움이 생겼을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외갓집 앞마당을 뛰놀던 암탉을 외지 손님맞이한다고 서슴없이 낚아 저녁상에 올라온 이후였을지, 아니면 주말의 명화를 통해 흑백 화면의 공포영화 '새'를 본 이후부터였을지 공포의 시작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극복해 내지 못한 건 확실하다.


그런 내가 아이러니하게 새를 키운 경험이 있다.

외동딸의 애원에 우리 집엔 하나 둘 작고 귀여운 식구들이 늘어났다.

장수풍뎅이, 구피, 햄스터, 달팽이...

여러 종류의 가족이 하나 둘 늘어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의 최종 목표는 강아지였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 개를 키워 본 경험을 떠올리니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기에 강아지만 아니면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이에게 어려운 일이 주어졌을 때 아이는 그것을 해내고 초롱이는 눈빛으로 소원을 말했다.

"새를 키우고 싶어."

약속은 어길 수 없어 설득을 해보았지만 결국 아이의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조류원을 찾았다

벽에 바짝 붙어서 직원이 소개해주는 고급 새와 화려한 앵무새를 보여주었지만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픈 마음뿐이었다.

"처음 새를 키우시는 것이라면 모란앵무를 추천드려요."

어린 시절 문구점 앞에서 노란 솜뭉치 같은 병아리가 떠올랐다. 손바닥에 품을 정도로 작았다.


"윙컷해드릴게요. 창문 열면 날아갈 수도 있고 잘못 날다가 아파트 거실 유리창에 부딪쳐서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 안전을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요."

조련사는 능숙하게 작은 새의 날개를 쭉 펼쳐 몇 가닥의 날개를 잘라주었다. 새장에 옮겨져 그렇게 거실 한편에 가족이 생겼다.


"이름은 모노야. 모란앵무 노란색이니까 모노."

아이의 작명으로 병아리처럼 생긴 새는 우리의 모노가 되었다.


아이가 등교 후 자리를 비우면 거실을 활기 치며 걸어 다니던 녀석은 꼼짝없이 새장 신세였다. 낮동안 나와 단둘이 대치하고 있으려니 눈빛만 오갈 뿐 꺼내 줄 용기가 내겐 없었다.

청소기를 돌기고 걸레질을 하는 동안 내내 모노는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나를 보았다.

몇 시간 내내 빤히 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두꺼운 주방장갑을 손에 껴고 새장을 용기 내어 열었다.

날개가 잘려있어 좁은 거리만 날아 내가 가는 길을 뒤뚱이며 따라다녔다.

한참을 좁은 보폭으로 걸어 다니느라 피곤했는지 따스한 햇살 내리는 창가에서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도 남기려 옆에 조용히 앉았더니 모노가 나의 치마를 입으로 한번 물고 발로 번갈아 잡아 무릎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아 잠에 삐졌다.

몸통을 살살 만지니 쌔근쌔근 아이 잠들듯 몸을 들썩이는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가을이 다가오는데 모노의 털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새를 치료해 줄 병원은 흔치 않았고 집 근처 제법 큰 동물 병원에서도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아줄 수 없었다. 다른 동물에 투여하는 영양제를 받아 조류원을 찾았지만 아이를 보내 줄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겨우 6개월 된 아이인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조류사는 덤덤히 말했다. 약한 아이가 있고 얌전할수록 아픈 아이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자라며 견디기도 떠나기도 한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 다독였다.


두어 달 모노는 머리를 돌려 등 뒤에 묻고 동그랗게 잠에 들 때가 점점 많아졌다. 털은 점점 색이 누렇게 바래졌고 어떤 영양제도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조류도 봐준다는 동물병원에서도 도움이 되진 못했다.

새를 키우는 카페에서도 사진을 올려보았지만 한결같았다. 떠나기 전의 모습이라 했다.


송년회 시즌이 되었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의 모임인데 오늘따라 나가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가족끼리 모두 모이는 모임이라 빠질 수 없어 새장 앞에 모노가 좋아하는 간식을 쌓아주었다.

"엄마. 모노가 오늘 횟대에 안 올라가고 자꾸 바닥에 앉아있어."

상태가 심상치 않았지만 손가락으로 모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눈을 반짝이며 뒤뚱거리며 무릎 위에 올라와주었다.


두어 시간 모임을 마치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려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아이는 먼저 달려 모노를 둔 방의 문을 열고 소리쳤다.

"엄마. 모노가 누워있어."

일 년도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마음과 눈 녹는 사계절을 함께하지 못한 마음이 미어져 며칠을 울었다.


아직도 난 새를 무서워한다. 길을 가다가 비둘기를 보면 돌아가거나 동행인 옆으로 몸을 숨기기도 한다.

성인이 된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나 어릴 때 우리 새 키우지 않았어? 그땐 예뻐했던 기억이 나는데?"

"모노? 모노는 천사였지."


지금은 모노 대신 그리 고민하던 강아지 한 마리가 모노의 빈자리를 오랜 시간 동안 채워주고 있다. 벌써 10살이 넘어버려 노견이라 불리지만 건강하나는 청년 같다며 동물병원 원장이 칭찬을 해준다.

"강아지 공포증은 없어?"

장난치듯 놀리는 사람들이 묻는다.

"얜 천사 같은 가족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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